엄마니까 괜찮아?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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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희 기자]
'난 왜 항상 '괜찮다'고 (말/생각)할까?'
아이가 9개월에서 10개월로 넘어갈 무렵, 일기장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쓰기 시작한 육아일기였다. 날짜별로 하루 한 페이지씩 쓰게 되어 있는 노트는 아이가 태어난 지 오십 일 무렵에서 멈춰 있었다. 그러다 아이의 '생후 291일'에 이 한 문장을 적었다(그리고는 다시 빈 페이지들이 이어졌다).
당시 나는 이미 육아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워낙 뭐 하나에 꽂히면 영혼을 담아 최선을 다하는 성격인데, 하물며 내 새끼 키우는 일에는 어땠으랴. 열심히 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아기연구소장' 이었다. 우리 집에 온 아기 엄마들은 처음 보는 육아템들에 눈을 빛내며 구매처를 물었고 이유식 노하우를 배워 갔다.
육아가 재미있었다. 그러니 더 열심히 했다. 하지만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쉬어 가며 해야 했는데, 완급 조절을 하지 못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밀린 집안일을 하고 분유쿠키를 구웠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육아책을 읽고 육아 유튜브를 봤다. 24시간이 육아 관련된 활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치지 않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엄마라면 으레 그러는 건 줄 알았다. 엄마니까,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식도 절반 정도는 사서 먹이고 있고 어린이집도 일찌감치 보내는데! 남들은 독박육아도 하고 연년생도 키우는데 이 정도 쯤이야 해내야지!
내가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힘들다는 것을 부정했다. 아니, 진짜로 괜찮은 줄 알았다. 왠지 화가 늘고, 남편과의 다툼이 잦아지고, 관계가 극단에 치달아 부부 상담을 받게 되어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번아웃이 왔다는 사실을.
▲ 무기력과 우울에 허우적대며, 물에 빠져 죽어가는 기분이었다. |
ⓒ nikko macaspac, Unsplash |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 집안일을 하는 대신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혼자 여유롭게 브런치도 즐기고 숲길도 걸으러 가면서 내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확실히 몸과 마음이 환기됐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올 여름 전국적으로 대유행한 수족구병에서부터 장염, 기관지염까지 아이는 계속 아팠고, 어린이집에 간 날보다 못 간 날이 더 많았다. 마지막에는 온 가족이 릴레이 코로나까지 겪으면서 나는 완전히 방전이 돼버렸다.
결국 심각한 무기력과 우울증에 빠져 죽네 사네 하다가 입원까지 하는 지경이 되어서야 나는 조금 후회했다. 그 때 '괜찮다'고 하지 말걸 그랬나. 나 안 괜찮아, 힘들어, 아파, 죽겠어. 진작 그랬으면, 번아웃이 오기 전에 미리미리 스스로를 돌보고 에너지를 충전해두었으면 좀 나았으려나.
'힘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꾸 '괜찮다'고 생각했던 건 '객관적으로' 내 상황이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은 내가 임신하기 전부터 운영하던 작은 사업체가 잘 굴러가 시간적·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물론 창업 초기에는 돈도 못 벌고 고생을 많이 했지만, 임신한 뒤 직원들을 구하고 합을 잘 맞춰놓아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나는 거의 출근할 필요 없이 틈틈이 이런저런 관리 업무만 하고, 남편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게다가 남편은 아기를 아주 좋아하고 아기와 놀아주는 것에도 능숙했다. 남편이 아이를 보는 동안 나는 운동을 하고 산후 마사지도 받으러 다녔다. 하루 종일 아이와 둘이서 집에 갇혀 남편이 퇴근해 오기만을 기다리며 제대로 된 대화도 못 하고, 밥도 못 먹고 지내는 엄마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나 같은 상황에서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건 양심이 없는 것 같았다.
▲ 남편과의 갈등은 최악으로 치닫았다. |
ⓒ Charl Folscher, Unsplash |
시간도 많고 돈도 부족하지 않은데, 왜 우리는 자꾸 싸우고 불행할까? 퇴근도 늦고 월급도 빠듯하지만 다정한 아빠들이 좋아 보였다. 퇴근 후의 짧은 시간이나 주말을 온통 육아와 집안일에 쏟으며 오롯이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슈퍼맨' 아빠들이 이상적으로 여겨졌다.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만큼 나의 기대치도 올라갔고, 그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고 서운해 했다.
가장 나빴던 건, 내가 나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억눌렀다는 점이다. 뭔가 좀 힘든 감정이 올라와도, 화가 나거나 우울해도 나는 스스로 '괜찮다'고 세뇌하며 몰아붙였다. 아니, 내가 왜? 이 정도로? 이렇게 상황이 좋은데? 누가 들으면 욕해! 마치 나는 힘들 자격도, 우울할 자격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결국은 몸이 파업을 하고 나서야 내가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처음에는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한 무기력증이려니, 금방 지나가려니 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약을 타다 먹으면서 몸도 기분도 정상 범위로 회복됐다.
감정은 100% 주관적이다
더 이상 자학을 하지 않게 된 건 정신과 의사 정우열 선생님의 유튜브를 만나면서였다. 그는 '감정은 100% 주관적'이라고 말한다. 객관적인 조건들이 나아 보여도 본인은 얼마든지 고통스러울 수 있는 거라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우울증에 더 쉽게 빠지기도 한다고. 힘들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괜히 말 꺼냈다가 배부른 소리라고 욕먹고 공감도 못 받고 더 고립되고... 전부 내 얘기였다.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건 꼴찌가 아니라 2등이다.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전부 마르게 보이는 패션모델들은 스스로 살쪘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거식증을 앓는다. 우리가 아무리 헬조선을 운운해도 세계적인 선진국이고 부유하고 안전한 국가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인은 전쟁에 신음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보다 불행한가?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기근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대륙의 아이들보다 불행한가?
질문이 틀렸다! 행복과 불행은 비교급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와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이유로 힘들고, 한국인들은 우리 나름의 이유로 힘들다. 그들도 힘들고 우리도 힘든 것 뿐. 내가 더 힘드니까 너는 힘든 것도 아니야! 라고 말할 이유는 전혀 없다.
사람의 감정조차 비교하고 줄 세우는 한국 사회에서 30여 년을 살면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나도 참 오래 걸렸다. 힘들면 그냥 힘든 거다. 힘들다고 말하는 데 자격 같은 건 필요 없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며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자.
'불행 올림픽'이라는 말이 있다. 불행도 경쟁하는 한국 사회. 내가 더 힘들다, 네가 더 힘들다 따지고 누가 누가 더 불행한지 재어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너는 그래서 힘들구나. 나는 이런 게 힘든데. 우리 같이 좀 덜 힘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까? 그것이 진정한 공감이고 위로고 또한 연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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