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휴스턴, WS 정상 밟았다…노장 베이커는 생애 첫 영예

고봉준 2022. 11. 6.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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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선수들이 6일(한국시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최근 몇 년간 월드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은 구단이다. 야구를 못해서도, 투자가 없어서도 아니다. 5년 전 월드시리즈(WS)에서 하지 말아야 할 범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2017년 WS에서 휴스턴은 LA 다저스를 4승3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62년 구단 창단 후 처음으로 터트린 축하 샴페인이었다.

휴스턴은 이 우승을 발판삼아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메이저리그 최강팀으로 우뚝 섰다. 2018년과 2019년 연달아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정상을 밟았고, 2019년에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과거 휴스턴에서 뛰었던 우완투수 마이크 파이어스가 2019년 11월 휴스턴의 WS 사인 훔치기 사실을 폭로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파이어스는 “구단이 야구장 곳곳 불법적으로 설치한 카메라를 통해 상대 포수의 사인을 훔쳤고, 이를 벤치의 쓰레기통을 일정 리듬으로 두드리는 방식으로 서로 공유했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그간 사인 훔치기 의혹을 수차례 받았지만, 마땅한 증거가 없어 의심만 샀던 휴스턴을 궁지로 모는 양심선언이었다.

메이저리그는 발칵 뒤집혔다. 사태가 확산하자 사무국 차원에서 대대적인 진상 조사를 벌였고, 이는 곧 사실로 드러났다. 결국 가담자로 찍힌 당시 A.J. 힌치 감독과 제프 르나우 단장이 경질됐고, 휴스턴 구단은 사무국으로부터 벌금 500만 달러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렇게 법적인 처벌은 마무리됐지만, 야구팬들의 마음까지는 치유되지 못했다. 배신감을 느낀 이들은 휴스턴 경기가 있을 때마다 몰려가 야유와 손가락질을 퍼부었다. 몇몇 상대 선수들도 빈볼과 무시 등의 형태로 범법자 휴스턴의 과거를 들췄다.

휴스턴 더스티 베이커 감독. EPA=연합뉴스

이처럼 몇 년간 ‘공공의 적’처럼 여겨진 휴스턴이 6일(한국시간) 홈구장 미닛메이드파크에서 열린 WS 6차전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4-1로 꺾고 4승2패로 정상을 밟았다. 그간의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설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이날 0-1로 끌려가던 휴스턴은 6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선두타자 마틴 말도나도의 몸 맞는 볼과 제레미페냐의 중전안타로 만든 1사 1, 3루 찬스에서 요르단 알바레스가 바뀐 투수 호세 알바라도로부터 중월 3점홈런을 뽑아냈다. 이어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의 1타점 좌전 쐐기타가 터지면서 승기를 굳혔다.

WS MVP는 휴스턴 유격수 페냐가 차지했다. 올 시즌 데뷔한 25살의 페냐는 WS 6경기에서 타율 0.400(25타수 10안타) 1홈런 3타점 5득점 맹타를 휘둘렀다.

그러나 미국 현지에선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공로를 빼놓지 않고 있다. 베이커 감독은 1949년생으로 올해 나이가 73세다. 남들은 이미 은퇴했을 나이지만, 난파선 휴스턴을 맡아달라는 특명을 안고 2020년 새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앞서 구단만 4곳을 거친 베테랑 감독은 특유의 할아버지 리더십을 앞세워 실의에 빠진 선수단을 다독였다. 또, 사인 훔치기와 관련된 질문이 나올 때면, 너털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하면서 더는 휴스턴이 곤란해지지 않도록 했다.

사람은 좋지만, 가을야구에선 유독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노장은 이번 우승으로 30년 사령탑 생활 중 처음으로 WS 정상 공기를 맛봤다. 또, 역대 최고령 WS 우승 감독이라는 영예도 가져갔다. 북미 4대 프로스포츠 역사상 가장 늦은 나이로 우승을 차지한 사령탑 역시 베이커 감독이 됐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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