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친구 있으니 인생이 즐겁지 아니한가
[양형석 기자]
특정 감독이나 영화사에서는 같은 주인공이나 세계관을 담은 3부작 시리즈를 제작할 때가 많다. 파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와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멧 데이먼의 <제이슨 본> 트릴로지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영화 중에는 강우석 감독과 김상진 감독이 이어서 만들었던 <투캅스> 트릴로지가 있다.
하지만 굳이 주인공이나 세계관이 겹치지 않더라도 감독이 추구하는 이야기의 주제나 색깔이 같은 영화들도 'XXX 감독의 XX 3부작'이라고 부르곤 한다. 대표적인 시리즈가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 <강남1970>으로 이어지는 유하 감독의 '거리3부작(또는 폭력3부작)' 역시 대표적인 한국영화의 3부작으로 불린다.
▲ <즐거운 인생>은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 중에서 가장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
ⓒ CJ 엔터테인먼트 |
관객들 가슴 뛰게 만드는 밴드영화의 매력
대중가수의 공연을 보러 갈 때는 미리 녹음된 MR에 맞춰 노래를 하는 공연인지 실제 라이브 밴드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대부분 실력이 뛰어난 뮤지션들은 밴드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공연을 할 때가 많다. 물론 미리 녹음된 MR이 음질은 더 좋을 수 있지만 '현장감'에서는 라이브 연주에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밴드가 등장하는 음악영화들은 특유의 역동성을 무기로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대배우 톰 행크스가 감독으로 나서며 크게 화제가 됐던 <댓 씽 유 두>는 90년대 중반 펜실베니아주의 가상밴드 '더 원더스'의 성공과 실패스토리를 다룬 작품이다. 사실 영화 자체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지만 리브 타일러와 샤를리즈 테론 같은 인기배우들의 풋풋하던 신인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영화의 제목과 같은 삽입곡 <댓 씽 유 두>는 국내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비포> 3부작으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만들고 잭 블랙이라는 배우를 일약 흥행배우로 도약시킨 <스쿨 오브 락> 역시 매우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밴드영화다. <스쿨 오브 락>은 초등학교 임시교사가 된 실패한 로커가 학생들과 록밴드를 결성하며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003년에 개봉한 <스쿨 오브 락>은 세계적으로 1억31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우에노 주리 주연의 일본영화 <스윙걸즈>는 13명의 낙제여고생들이 우연히 재즈밴드부를 결성하면서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청춘물이다. 우에노 주리를 비롯한 배우들이 3개월 동안 합숙을 하면서 직접 악기를 배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악들을 실제로 연주했다. 국내에서는 2006년에 개봉해 5만5000관객에 그쳤지만 일본에서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밴드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은 역시 2018년에 개봉해 세계적으로 9억1100만 달러, 국내에서도 무려 990만 관객을 모은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퀸의 히트넘버를 대거 들을 수 있고 그 유명한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재현하며 음악팬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했다. 특히 '싱어롱'으로 불리는 응원상영관이 국내에서 대중화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 <즐거운 인생>은 폭발적이진 않았지만 잔잔한 흥행으로 간신히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
ⓒ CJ 엔터테인먼트 |
<즐거운 인생>은 2006년 가을 <라디오스타>로 1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황산벌> <왕의 남자>에 이어 3연속 히트를 기록한 이준익 감독이 휴식기 없이 곧바로 만든 작품이다. <라디오스타>에서 가수왕 출신 최곤(박중훈 분)이 밴드에서 독립해 솔로로 데뷔했다는 이야기가 스치듯 지나가는 것에 비해 <즐거운 인생>은 대학생 밴드였던 세 주인공이 중년의 나이에 밴드를 재결성해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는다는 내용의 영화다.
<즐거운 인생>은 같은 '밴드영화'라는 점에서 일주일 먼저 개봉한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비교되며 유사성을 지적 받기도 했다. 하지만 퇴직을 앞둔 장년들이 밴드를 결성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달리 <즐거운 인생>은 권고사직과 퇴직, 기러기 아빠 등 다양한 사정에 놓인 40대 중년 남성 세 친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흥행에서도 126만 관객을 동원한 <즐거운 인생>이 7만3000 관객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10배 이상 앞섰다.
오랜 기간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 2006년 최동훈 감독의 <타짜>에서 아귀 역을 맡아 관객들을 놀라게 했던 배우 김윤석은 불과 1년 후 낮에는 퀵서비스,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성욱을 연기했다. 밴드 내에서도 본인이 돋보이기 보다는 음악의 기본을 잡아주는 베이스기타를 맡았다. 하지만 김윤석은 불과 4개월 후에 개봉한 <추격자>에서 '4885' 지영민(하정우 분)을 쫓으며 또 다시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었다.
이준익 감독의 두 번째 음악영화이자 밴드활동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게 영화의 주요내용이자 주제인 만큼 <즐거운 인생>은 음악이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활화산의 대학가요제 출전곡이었던 <터질거야>는 기영(정진영 분)과 현준(장근석 분), 그리고 활화산 첫 단독공연의 초대가수 트랜스픽션도 부를 만큼 영화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이 밖에 '옥슨80'의 히트곡 <불놀이야>도 할화산 멤버들에 의해 불려지며 영화에 삽입됐다.
하지만 멤버들이 노래를 하며 신나게 마무리되는 <즐거운 인생>의 엔딩과 달리 주인공 각자의 미래는 영화의 엔딩 만큼 마냥 희망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새로 오픈한 혁수(김상호 분)의 조개구이 집에서 일하기로 한 기영과 성욱은 직장인 시절 만큼의 월급을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특히 자신의 전재산이었던 중고차를 팔아 아내의 위자료로 준 혁수는 졸지에 직장에서 쫓겨난 두 친구의 가정까지 책임져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 장근석이 보컬로 합류하면서 '아저씨 밴드' 활화산은 영화 속에서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
ⓒ CJ 엔터테인먼트 |
사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 <즐거운 인생>은 아저씨들의 유별난 취미생활 정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대를 막론하고 갓 스무살이 넘은 '00년대 얼굴천재' 장근석의 매력에 반하지 않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장근석은 활화산 해체 후 자연스럽게 생활에 뛰어들며 음악을 잊고 살았던 세 친구들과 달리 밤무대를 전전하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을 하다 세상을 떠난 활화산 리더 상우의 아들 현준을 연기했다.
현준은 활화산의 리드기타 기영을 가뿐히 능가하는 뛰어난 기타연주는 물론 깔끔한 보컬실력까지 뽐내며 단숨에 활화산의 메인보컬에 낙점됐다. 활화산이 홍대 클럽에서 공연할 때 트랜스픽션, 노브레인 멤버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것으로 보아 현준은 예전부터 밴드활동 경험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준을 연기한 장근석은 실제로 일본에서 정규 5집까지 발표하며 가수활동을 겸하고 있다.
2006년 영화 데뷔작 <괴물>을 통해 일찌감치 천만 배우가 된 고아성은 <즐거운 인생>에서는 기영의 사춘기 딸 주희 역으로 출연했다. 평소엔 실직한 아빠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한 딸로 나왔지만 후반부에는 공연 전날 밤까지 설레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빠에게 격려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주희는 공연 당일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공연장을 찾아 함께 공연을 즐기며 아빠의 꿈을 응원한다.
배우 신정근은 이준익 감독의 전작 <라디오 스타>에서 다혈질의 성격으로 번번이 손님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최곤을 해고했다가 최곤에게 구타 당하고 그를 고소하는 미사리 카페의 사장으로 출연했다. 신정근은 <즐거운 인생>에서도 죽은 상우가 생전에 일하던 나이트클럽의 사장으로 출연해 활화산의 오디션을 본다. 나이트클럽 사장은 현준이 보컬로 합류한 활화산의 노래를 들은 후 현준에게만 따로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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