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조된 문인간첩단사건 변론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김삼웅 2022. 11. 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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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24] 군사독재자와 그 부역자들은 국민의 정당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았다

[김삼웅 기자]

 한승헌 변호사
ⓒ 연합뉴스
 
군사독재자와 그 부역자들은 국민의 정당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았다.

다중이 참여하는 불완전한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는 견제와 비판을 전제로 건강성을 유지한다. 절대군주제와 다름이다. 1974년 1월 7일 (긴조발동 하루 전) 문인 61명이 〈개헌지지 문인성명〉을 발표하여 유신체제를 정면 비판하였다. 

그로부터 20일 만인 1월 26이 서울지검 공안부 정명대 부장검사는 '서울을 거점으로 한 문인간첩단'을 적발했다며, 이호철ㆍ임헌영ㆍ김우종ㆍ정을병ㆍ장병화 등 5명을 반공법위반 및 간첩혐의로 구속하고, 언론인 천관우 등에 대해 계속 수사중이라고 발표했다. 

구속된 5명의 문인은 북한노동당 대남사업단 담당비서 직계인 재일 공작지도원 김기심에 포섭되어 문단ㆍ언론계ㆍ학원 등의 동태를 보고하는 한편, 반정부 활동을 선동하는 작품 활동과 북한 지령 사항을 실천키 위해 문인개헌서명에 가담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 문인들에게 지령을 내린 재일 공작지도원 김기삼은 1949년 북한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1962년 민단에 위장 입적하고, 그해 2월 한양사를 창설하여 도일하는 문인ㆍ교수ㆍ학자 등을 포섭하는 활동을 해 왔다는 혐의를 받았다. (주석 7)

검찰은 피고인들이 일본 도쿄에서 발행하는 <한양>이라는 잡지를 매개로 일본을 왕래하여 북한공작지도원에게 포섭되어 반정부 활동을 해왔다고 발표하고, 언론은 대대적으로 이를 보도했다.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의 줄거리는 피고인들이 국제회의나 세미나 등에 참석하고자 일본에 갔을 때 한양사의 김기심 씨나 김인재 씨를 만나 그들로부터 향응과 돈을 받고 그때를 전후하여 <한양>지에 기고를 함으로써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의 두 김씨가 일본에서 발행하는 <한양>이라는 월간지는 국문(한글) 종합지로서 피고인들뿐 아니라 국내의 이름난 문인 논객들이 전부터 많이 기고를 해온 터였다.

그 잡지는 조국의 당면문제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다루어왔는가 하면 창간기념호마다 국내의 이름난 학자ㆍ문인들이 대거 축사를 보내기도 했다. (주석 8)

한승헌은 이호철ㆍ임헌영ㆍ정을병의 변론을 맡았다. 이들과는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기에 변론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수사 당국은 처음부터 날조한 정치사건이어서 진실규명보다 폭력으로 피고인들을 괴롭히고 억지로 자백을 받고자 했다.

밀실에서 고문과 신문을 번갈아 받으면서도 인간이란 묘해서 증오와 정이 함께 드는 것일까. 잠은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강 전무라는 자가 우리 사건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는 낌새를 잡았고, 실제로 그로부터 육체적인 고통도 당했다. (주석 9)

유신정권이 긴급조치라는 폭력수단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권력을 유지하면서 무고한 시민들을 용공좌경으로 엮어 사회에서 격리시켰다.

"일단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고 나면 긴급조치나 다른 정치범과는 달리 '색깔' 보유자로 찍혀 민주화운동권에서조차도 편견을 씻어내기가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70년대는 더욱 그랬다." (주석 10)

이 사건을 두고 문단 안팎에서는 문학관이나 시국관의 차이를 떠나서 들고 나섰다. 서정주, 최정희, 황순원, 김소운 씨 등 중진급을 비롯한 많은 문인ㆍ지식인들이 당국에 진정서를 냈다. 국제앰네스티와 일본ㆍ서독ㆍ미국ㆍ노르웨이 등 해외에서도 구명운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판결은 정을병 씨만 무죄였고 나머지 네 사람이 유죄였다. 이호철 씨는 징역 1년 6월, 장백일 씨는 징역 1년의 실형이었고, 임헌영 씨와 김우종 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나왔다.  

이 사건은 문인들에게 겁을 주는 단기적인 효과를 거두었을지는 모르나, 박 정권의 탄압본색을 드러내는 정치적 자충수가 되기도 하였다. (주석 11)

이 사건 피의자들은 뒷날 민주정부가 수립되면서 재심을 청구하여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에게 들씌워진 '간첩이미지'는 쉽게 씻기지 않았다. 

주석
7>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259쪽.
8> 한승헌, <문인 개헌성명 후에 나온 '간첩단' 발표>, <실록(2)>, 163쪽
9> 임헌영, <허황된 '문인간첩단' 사건의 누명>, <실록(2)>, 170쪽.
10> 앞의 책, 179쪽.
11> <자서전>,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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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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