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번째, 수천억 걸작만 노린다…선 넘은 오물 테러범 정체

서유진 2022. 11.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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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훼손하려던 기후활동가 3명이 지난달 27일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급습해 자신의 머리를 그림에 갖다 대더니 접착제를 짜서 붙여버렸다. 이어 깡통에 든 붉은 토마토 스프를 머리 위로 들이부으며 그림에 문지르려고 시도했다.

10월 27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을 훼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환경운동가들. 사진 트위터 캡처


관람객과 미술관 관계자들이 저지하면서 소동은 일단락됐다. 유리 액자 안에 들어있던 원본 그림은 다행히 손상되지 않았다.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을 가진 이 명화의 가격은 판별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들 모두는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저스트 스톱 오일은 영국 기반의 환경단체다. 이들은 석유가 기후 위기를 초래하고 큰 비용을 소비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일자리를 파괴하고 우리를 죽이는 행위"이기 때문에 "정부가 더 이상 새로운 석유·가스 생산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5일(현지시간)에는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이 타깃이 됐다. AFP통신에 따르면 기후단체 소속 두 여성이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고야의 '옷 벗은 마야'와 '옷 입은 마야' 액자에 접착제를 바른 손을 붙였다. 이들은 작품 사이의 벽에 '1.5℃'라고 썼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 협정에서 채택한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 이내로 하자"는 약속을 지키기 어려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11월 5일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옷 입은 마야'와 '옷 벗은 마야' 사이에 환경운동가들이 '1.5℃'라고 적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 이내로 제한하자는 약속을 지키기 어려웠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AFP=연합뉴스


4일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이 표적이 됐다. 이탈리아 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치오네'(Ultima Generazione·마지막 세대라는 뜻) 소속 활동가들이 로마의 보나파르테 궁전 미술관에 전시된 반 고흐의 작품에 접근해 야채 수프를 끼얹었다. 이들은 그림 아래 벽에 자신들의 손을 접착제로 고정한 뒤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화석 연료 사용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11월 4일(현지시간) 로마 보나파르테 궁전 미술관에 전시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 접근해 야채수프를 끼얹은 환경단체 회원들. AFP=연합뉴스


이로써 기후활동가들이 벌인 이른바 '명화 테러'는 6개월 간 10차례가 넘었다.

지난 5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가 첫 타깃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 남성이 모나리자가 담긴 진열장을 파괴하려다 방탄 유리가 깨지지 않자 그림을 향해 케이크를 집어 던지고 전시장에는 장미꽃을 뿌렸다. 그는 보안 요원에 붙잡힌 채 끌려 나가며 "누군가 지구를 파괴하려 한다. 지구를 생각하라"고 외쳐 화제가 됐다.

5월 29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케이크 테러'를 당한 뒤 직원이 보호 유리를 닦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명화 파괴처럼 지구 파괴 고통스럽다"


모나리자는 개인이 벌인 소동이었지만 이후 6월부터 특정 단체에 소속된 기후활동가들이 명화를 타깃으로 한 시위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작품 액자나 혹은 주변에 손바닥을 붙이는 형태였다.

'저스트 스톱 오일'은 영국 코돌트 갤러리에 전시된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핀 복숭아 나무',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복제본, 존 컨스터블의 '건초 마차' 그림의 액자 테두리에 접착제로 손바닥을 붙였다. 이탈리아 '울티마 제네라치오네'소속 활동가들도 피렌체의 우피치 갤러리에 있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을 상대로 '손바닥 접착 시위'를 벌였다. 영국의 환경단체 '멸종저항' 회원들은 지난 10월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 전시된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에 순간접착제를 바른 자신들의 손을 붙였다.

이어서 '오물 투척' 시위가 등장했다.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 ‘해바라기’에 토마토 스프를 끼얹었고, 런던의 마담투소 박물관에서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밀랍인형 얼굴에 초콜릿 케이크를 던졌다. 독일 바르베리니 미술관에 있는 클로드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에는 으깬 감자를 집어 던졌다. 다행히 모두 액자와 유리·아크릴 수지 등으로 보호해놓은 덕분에 작품엔 직접 피해가 가지 않았다.

10월 14일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중인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뿌린 환경운동가들. '해바라기'는 8420만 달러(약 1200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AP=연합뉴스


이들 타깃들은 모두 값을 헤아리기 어려운 미술사의 걸작들이다. 예컨대 모네의 건초더미는 독일의 억만장자인 하소 플래트너의 소장품 중 하나인데, 지난 2019년 경매에서 당시 모네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높은 금액이었던 1억1100만 달러(약 1596억원)에 낙찰된 바 있다. 실제로 활동가들도 이 같은 시위로 인해 작품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예술복원 전문가와 상의했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왜 이들은 이런 방식을 취한 걸까. 보티첼리의 '봄'을 공격했던 울티마 제네라치오네의 성명은 이렇다. "오늘날 이(작품)처럼 아름다운 봄을 볼 수 있을까. 화재와 식량 위기, 가뭄은 이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예술을 이용해 경종을 울리기로 결정했다." 말하자면 아름답고 가치 있는 대상(명화)이 파괴되는 걸 볼 때 느끼는 고통을 통해, 지구 파괴의 의미를 깨달으라는 게 이들의 취지다.

유명한 작품들이라 관심을 집중시키는 효과도 있다. 한 기후단체 활동가는 "평범한 방식으로는 경각심을 일깨우기 어렵다"며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에 토마토수프를 끼얹는 시위는 뉴욕타임스 1면을 장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명화 테러는 폭력일 뿐" 반감 커져


색다른 시위 방식이 화제를 불렀지만, 반감도 커지고 있다. 독일 DW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491명 중 56%가 명화 테러는 환경운동에 해가 된다고 응답했다. 명분(환경 보호)과 행동(명화 테러) 사이에 논리적 연결이 없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를 줄이자면 차라리 육류 소비를 줄이자거나 비행기를 적게 타자는 캠페인을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명화 테러는 폭력 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책임 있는 방식으로 싸워 달라"는 의견도 있었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의 오스카 버그룬드 강사는 "명화 테러 시위대로 인해 환경운동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 대중들은 오히려 이들을 억압하는 법안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투적 성향의 사회운동단체인 액트 업(ACT UP)에서 활동했던 브라이언 자빅은 "목표와 분명한 연관성이 있을 때 시위가 강력해진다"고 조언했다. 최근 가디언은 영국 내무장관이 경찰에 환경단체 시위에 대해 선제적인 접근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의 발표를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10월 24일 독일 미술관에서 모네의 작품에 으깬 감자를 뿌린 행동가들. 이 작품은 2019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1070만 달러(1600억원)에 낙찰됐다. AP=연합뉴스


여론 악화 속에 기후활동가들에게 실형이 선고되기도 한다.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2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훼손하려 했던 활동가 3명 중 2명에게 각각 징역 2개월을 선고하고, 1개월은 집행을 유예했다. 나머지 한 명은 재판을 앞두고 있다. 죄명은 '그림 훼손과 공공장소에서의 폭력행위'다.

검찰 측은 "이들의 행위는 용인되는 선을 넘었다"면서 "(환경 운동이라는) 목적이 얼마나 숭고하든,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순 없다"고 했다. 이어 "명화는 감상 대상이지 훼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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