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Voice] 선우정아의 허를 찌르는 가사들

전혜진 2022. 11. 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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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아의 '웃픈' 노래들은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수밖에 없다.

선우정아

Q :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A : 창작자들에게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 반갑다. 결코 참을 수 없을 것이다.

Q : 가장 나다운 가사로 신곡 ‘black coffee(feat. 우원재)’의 ‘쓰고 검은 커피를 마시게 됐는데 어른이 된 나는 쓰고 검은 하루를 삼키지 못해 어제 같은 지금’을 꼽은 이유는

A : 가사의 의미는 씁쓸한데 멜로디에 실으면 꽤 덤덤하게 얘기하는 것처럼 들리는 아이러니한 구간이다. 선우정아 식의 위트가 나름대로 잘 드러난 것 같다.

Q : ‘black coffee’의 전체 가사 또한 말 그대로 ‘웃프’다

A : 도시에 거주하는 현대인들의 과로와 피로, 불면을 다룬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부정적이고 피곤한 노래일 것 같겠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최대한 즐겁게 잘 살아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Q : 가사를 쓴 최초의 기억

A : 여덟 살 무렵에 피아노로 새로운 곡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일을 즐겼다. 특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음악에 미쳐 있었다. 동네 문방구에서 악보를 구해 연주해 보니 가사가 영어라 부르기 어렵더라. 어떻게든 부르고 싶어서 멜로디에 맞게 한글 노랫말을 새로 붙였다. 애니메이션의 서사 구조는 잘 알고 있으니 노래가 나오는 상황에 맞게 말이다. 일종의 리메이크 형태로 볼 수 있다(웃음).

Q : 성인이 된 이후 가사의 힘을 실감한 개인적 경험을 공유한다면

A : 사춘기 때는 가사의 힘으로 살았다. 특히 자우림, 이소라 선배의 음악에서 큰 위로를 얻었다. 전혀 위로하는 가사가 아님에도 ‘다 괜찮다’고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특히 이소라 선배의 곡 ‘바람이 분다’의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가사를 읽고 멜로디와 함께 들었을 때의 소름 돋는 감각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Q : 가사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던 걸까

A : 주인공이 된 기분이라기보단 내가 살던 세계가 가사 한 줄로 새롭게 확장되는 느낌이랄까.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일은 한계가 분명하다. 타인의 문장들은 벽을 날카롭게 뚫어버리는 창처럼 나를 찌르고, 그때 억눌렀던 무언가가 ‘팡’ 하고 터져 나온다. 그들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나를 키웠다.

Q : 요즘 당신의 노래 속 화자는 누구인가

A : 나는 내 얘기를 주로 하는 사람이라 일단 내가 먼저 떠오른다. 그걸 제외하면 남편에게 영감을 많이 얻는다. 사랑하는 존재가 생겼을 때, 꼭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친구, 반려동물, 식물 같은 존재가 생기면 세상과의 소통 창구가 하나 더 늘어났다는 느낌이 든다.

Q : 창작 과정의 동반자는

A : 현대인의 필수템인 스마트폰과 메모장. 생각나는 것들을 빠르게 기록하는 게 최고다. 운전하다가, 설거지하다가도 생각나는 걸 빠르게 기록해야 휘발되지 않는다.

Q : 가사 작업을 통해 어떤 희열을 느끼나

A : 사실 조금만 체면을 차리고 보면 작사는 낯부끄러운 일이다. 속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보기 좋게 만드는 작업이니까. 내 안에 존재할 때는 썩은 내가 나던 구질구질한 응어리이자 덩어리에 불과한 감정을 애써 꺼내 예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불러주는 거다. 다행히 나는 자연스럽게 그 과정에 몰두할 수 있기에 뮤지션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 작업은 결국에는 환기 작용을 동반하기도 한다.

Q : 음악적 고민이 있다면

A : 머릿속에 있는 무형의 것을 유형으로 만들 때, 그것을 물리적으로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세월 다 간다. 애써도 결과물을 내놓고 나면 늘 모자람이 보이는 것 같다.

Q : 당신의 언어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나

A : 내 가사에 공감하는 분들도 있지만 굉장히 낯선 감정을 느끼는 분도 많다. 가사를 전하는 건 마치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는 과정과 비슷하다. 압축된 글이나 한 권의 책처럼 짧고, 쓴 사람의 가치관과 사고가 반영된 하나의 세계이니까. 취향이 다름에도 새로운 재미를 느끼거나, 듣는 이들의 세계를 조금 더 넓게 확장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Q : 선우정아가 생각하는 좋은 가사는

A : 애매하게 숨겨놓은 내면의 어떤 지점을 콕 찔러주는, 허를 찌르는 그런 시원한 지압 같은 가사.

Q : 앞으로 ‘웃프게’ 담아내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면

A :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고, 꽤 슬픈 이야기들을 다룰 예정이다. 슬픔은 비극이지만 판타지로 승화되면 아름다운 법이니까.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어딘가 서늘한, 현실의 슬픔을 판타지로 풀어내고 있다.

2006년 1집 〈Masstige〉로 데뷔한 이후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 불리며 대중음악부터 마이너 신에 이르기까지 독보적 영역을 개척해 온 싱어송라이터. 록, 재즈, 팝, 일렉트로닉 등 장르를 뒤섞으며 ‘봄처녀’ ‘비온다’ ‘도망가자’ 등의 곡을 탄생시켰다. 최근 우원재, 수민 등과 함께한 협업 EP 〈Studio X {1. Phase}〉를 발매했다.

@sunwoojunga_official

Typography by CHOI JAE HOON

나이키 등 글로벌 브랜드가 사랑한 그래픽 디자이너. 볼드하고 강인한 형태의 타이포그래피뿐 아니라 도면, 하드웨어 작업 등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이 작품에 그는 ‘black coffee’ 가사와 자신의 경험을 한데 버무렸다.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모르던 블랙커피를 찾아 마시는 ‘어른’이 되었지만 날마다 밀려오는 일과를 ‘어른’처럼 소화하는 일은 그에게도 쉽지 않다. 커피를 내리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무겁지만 덤덤하고, 또 고소한 마음을 레트로한 컬러감과 레터링 작업으로 구현했다.

@pranky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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