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축구에만 집중” 참가국에 서한 … 인권 문제에 눈 감나

황수미 2022. 11. 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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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앞으로 다가온 카타르 월드컵, 인권 논란으로 시끌
외국인 노동자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사망 … “월드컵이 피로 얼룩졌다” 비판
3일(현지시간) 카타르 수도 도하의 주요 관광 명소 중 하나인 미쉐립 다운타운 도하에 있는 개최국 미디어 센터(HCMC)에서 청소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황수미 기자] 인권 침해 의혹에 휩싸인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보름가량 앞두고 국제축구연맹(FIFA)이 참가국에 "축구에만 집중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다.

4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잔니 인판티노 회장과 파트마 사무라 사무총장이 포함된 FIFA 수뇌부는 최근 카타르 월드컵에 참가하는 32개국에 편지를 보내 "축구는 이념적·정치적 싸움에 휘말려선 안 된다"며 이같이 권고했다.

FIFA는 "우리는 모든 의견과 신념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며 "세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사람이나 문화, 국가가 다른 이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볼 순 없다"며 "이러한 원칙은 상호존중과 차별 없는 문화의 초석이며 축구의 핵심 가치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는 월드컵 개최지인 카타르에서 인권 문제가 커지고 있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2010년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카타르는 경기장과 호텔, 도로망 등 건설 공사에 투입된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해 11월17일(현지시간) 2022 카타르 월드컵 개최를 1년가량 앞두고 도하의 축구 경기장 '스타디움 974'에 서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이들 노동자는 하루 8.3파운드(약 1만3000원)밖에 받지 못하는 데다 적절한 보호 없이 극심한 더위와 습도를 견디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지난 1월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 공사에 투입된 이주 노동자 6500명 이상이 이같이 열악한 작업 환경에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매체는 "월드컵이 피로 얼룩졌다"며 이같은 상황이 반복됨에도 카타르 정부와 FIFA는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에는 월드컵 관광객 숙박 지역 인근에서 머물던 노동자 수천명을 강제로 쫓아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카타르 정부는 당시 수도 도하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던 외국인 노동자 1200여명을 사전 통보 없이 강제 퇴거시켰다.

이로 인해 아파트 10여동이 폐쇄됐고, 갑작스레 쫓겨난 노동자들은 머무를 곳을 찾아 나서야 했다. 하지만 여의찮아 주변 도로에서 노숙해야 할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당국이 월드컵 관광객들에게 숙소를 임대하기로 한 지역에 인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인권 단체는 FIFA가 이같은 논란에 눈을 감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스티브 콕번 국제앰네스티 경제사회부 대표는 "세계가 축구에 집중하도록 하고 싶다면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며 "인권 문제를 카펫 아래로 숨기지 않고 이에 대해 제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FIFA가) 아직도 이런 일들을 하지 않은 게 놀라울 정도"라며 "수십만명의 노동자들이 월드컵을 위해 학대를 당했다. 그들의 권리가 잊히거나 묵살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외국인 노동자 보상 기금 조성을 위해 일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3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웨스트베이의 한 건물 LED 벽에 2022 카타르 월드컵 참가국의 이름이 적혀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비판의 목소리는 인권단체를 넘어 국제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참가국 중 가장 먼저 카타르 인권 문제 개선을 촉구한 호주의 경우 선수들이 직접 카타르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 유럽 8개국 대표팀은 각국 주장이 경기 중 하트 모양 완장을 차는 방식으로 네덜란드가 주도하는 차별 금지 캠페인에 힘을 실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에선 파리와 스트라스부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카타르 월드컵 거리 중계 보이콧을 선언하고 나섰다. AP 통신에 따르면 피에르 라바당 파리시 스포츠 담당 부시장은 지난달 4일 기자들을 만나 '이번 월드컵 조직 과정에서의 환경·사회적 여건' 때문에 대형 스크린을 이용한 거리 중계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술집에서 여러 명이 축구 중계방송을 함께 즐기는 문화가 발달한 독일에서도 일부 주점이 카타르 월드컵 경기를 틀지 않기로 했다. 지난 1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본에서 한 스포츠바를 운영하는 파니 델라우네씨는 "카타르에서 너무도 많은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며 "윤리적 관점에서 (주점에서 중계방송을 트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주요 외신에 전했다. 같은 지역의 다른 펍을 운영하는 점주도 "월드컵 경기를 펍에서 틀지 않기로 한 것이 경제적으로는 바보 같은 일일 수 있으나 적어도 양심을 지킬 수는 있다"고 했다.

한편 카타르는 이같은 인권 침해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이주 노동자 수천명의 생명과 건강을 위태롭게 했다는 비판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노동자 퇴거 요구 의혹에 대해선 적절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월드컵과는 관련이 없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황수미 기자 choko21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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