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조항을 바꾸면 노동자 건강도 살릴 수 있습니다
[유청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하며, 교섭이 결렬되면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누구든 노동자라면 노동 3권이 부여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아래 노조법)에서 정의하는 '근로자'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자가 있고,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며 사용자가 교섭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쟁의'의 목적 또한 노동조건에 한정해 그 외의 사안으로 단체행동에 나서는 노동자들을 '불법'이라 몰아세우는 경우도 많다. 이때 노동자들이 맞닥뜨리는 것은 수십수백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와 징계다.
이렇게 노동 3권을 제한하는 노조법을 바꾸기 위해 9월 14일, 민주노총과 여러 노
동시민사회단체가 '원청 책임/손해배상 금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를 결성, 자체 개정 법안을 발표하며 법 개정을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박석운 공동대표와 이용우 공동집행위원장, 권두섭 정책법률팀 변호사 등 관계자들이 지난 10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법 2·3조 개정은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법안이라며 경총과 사용자 단체, 국민의힘에게 법 개정을 위해 토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노동 3권을 보장하지 않고 오히려 제한하는 노조법
택배 배송기사, 화물운송기사,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와 같은 특수고용형태 노동자, 한 명의 사용자에게 소속되지 않고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 등은 실질적으로 특정 업체에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고, 업무지시 역시 받는데도 독립사업자로 구분되고 있다.
이는 단결권의 제한으로 이어진다. 많은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해도 설립 신고가 받아들여지는데 1년 이상 걸리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소송이란 긴 과정을 거쳐 설립신고필증을 받기도 한다.
어렵게 노동조합을 설립하더라도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이것이 다시 소송의 대상이 돼, 단체협약이 체결되는 데 수년이 걸리고 있다. 노조법 제2조 제1호 '근로자' 정의(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가 이들을 포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비준해 올해 4월 발효된 ILO 핵심 협약 제87조는 노동자에게 자발적인 단체 설립 및 가입을 규정하고, 고용관계에 제한되지 않는 모든 노동자에게 결사의 자유를 부여한다. 그러나 여전히 노조법은 이 핵심 협약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용자' 규정도 마찬가지다. 현재 노조법 제2조 제2호의 '사용자'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및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기에, 하청노동조합은 원청과 단체교섭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병원이나 대학의 청소노동자 역시 용역업체가 아닌 병원장이나 대학 총장에 의해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결정되지만, 이들은 본인들이 근로계약을 맺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회피하는 데만 몰두한다. 지금의 규정으로는 원청 회사들이 파견·도급 등의 관계에 있는 하청 노동자들로부터 이윤을 얻으면서도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또, 노조법 제2조 제5호는 '노동쟁의'에 대해 '임금·근로시간·후생·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에 대해 불일치가 있는 경우'로 정의하고 있어 그 범위가 매우 좁다. 정리해고 반대 파업, 노동조건과 직결된 노동법 개정을 요구하는 파업은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임에도, 법상 노동쟁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로 파업을 하면 모두 불법 파업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노동조합의 설립 및 활동에 제약을 너무나 많이 걸고 있는 노조법 2조를 개정해, 헌법상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 추석을 사흘 앞둔 지난 9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 국회의원들 앞으로 도착한 추석 선물 택배들이 쌓여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노동조건을 비롯한 여러 의제를 사용자와 교섭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 중 하나다. 또한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중요한 사안을 논의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같은 기구 역시 노동조합이 있을 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 특수고용형태 노동자 등 노동조합 결성에서부터 제한받는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단결권을 제한받고 방해받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고군분투해온 노동조합들이 있다. 장시간 노동, 과로로 노동자 사망이 속출해 계속해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있는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은 2017년 1월 창립 후 노동조합 설립신고필증을 받는 데만 10개월이 걸렸던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다. 택배 기사들은 대리점주와 직접 계약하지만, 원청이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권한을 가진 간접고용 노동자이기도 하다.
코로나 확산으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택배 배송 물량이 급속도로 늘었고, 2019년부터 2020년 사이 22명이 과로 등으로 사망했다. 당시 이들의 심각한 과로를 막기 위해 국회, 정부, 화주, 소비자, 택배사,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모여 사회적 합의 기구를 꾸렸다.
심각한 과로에 대해 사측을 논의의 장으로 끌고 온 것은 큰 성과였다. 이 기구를 통해 당시 주 70~72시간까지 일하던 택배 기사들의 노동시간을 주 60시간으로 단축했고, 분류 작업에 인력을 추가해 택배 기사들의 과로를 낮출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을 막았고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싸움을 이어갔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건강권 확보 역시 어느 정도 이뤘으나, 여전히 CJ대한통운 원청은 직접적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다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중노위에서 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지만, CJ대한통운은 여기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택배노조 한선범 정책국장은 "지금 교섭 요구 사안 중 주5일제, 작업환경 개선, 터미널 하차 작업시간 단축 등은 원청이 나서야 해결되는 부분이라 이를 택배사와 풀어보려 한다"라고 말했다. 노조법 2조가 개정되면 "진짜 사장과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해 그 이행을 강제할 수 있게 되어 사측도 성실 교섭에 나오게 될 것이고, 노동시간 단축 등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노조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인 화물운송기사들이 결성했으나 노조법상 노동조합이 아니다. 조합원들이 파업하면 법적 파업이 아니므로 회사에서는 대체 운송을 얼마든지 시키는 등 제한이 있어 제대로 된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화물연대는 오랫동안 과적, 장시간 노동, 심야 운전 등 건강권 침해 문제를 개선하고자 노력해왔다. 2003년 설립 당시부터 안전운임제 적용을 요구했다. 시간당 임금이나 월급이 아니라 운행 건당 운임을 받는 이들은, 한 번 실을 때 많이 싣고, 빨리 다녀오기 위해 과속하고 수면 시간까지 아껴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다. 교통사고로 치명적인 재해를 입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았다. 이에 적정 운임을 만들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안전운임제를 추진했다. 하지만 올해 말로 종료될 위기에 처해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며 투쟁 중이다.
박귀란 화물연대 전략조직국장은 "화물운송 노동자들에게 안전운임제는 중요한 권리이고 국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요구해왔다"라고 안전운임제 적용 투쟁의 의미를 밝혔다.
▲ 민주노총 특수고용, 간접고용 단위노조 대표자 및 조합원들이 지난 4월 20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노동기본권 쟁취, 노조법 2조 개정 결의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오늘부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이 발효되어, 국내법적 효력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국내법이 개정되지 않고 있다’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당사까지 행진을 벌였다. |
ⓒ 권우성 |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단결권이 보장될 때 생길 변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 국회와 정부는 이들 노동자, 노동조합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가 갈수록 다양해지는 가운데, 모든 노동자의 단결권을 비롯한 노동 3권을 보장해,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건강권 보장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이미 한국 정부가 비준한 ILO 핵심 협약 87조 취지에 맞는 방향이고, 노조법 2·3조 개정에 국회와 정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이유다. '노동자' 정의 확대로 모든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자의 삶을 결정하는 많은 사안에 대해 실질적 결정권이 있는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할 권리를 보장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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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청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11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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