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1호, 장준하ㆍ백기완 변론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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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체제의 정치적 공포분위기에도 이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긴급조치가 발표된 지 5일 만인 1974년 1월 15일, 비상보통군재 검찰부가 전 <사상계> 사장 장준하와 백범사상연구소 대표 백기완을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첫 구속하고, 21일 도시산업선교회 김경락 목사 등 종교인 11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하는 등, 종교인ㆍ학생들을 다수 구속했다. 사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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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기자]
▲ 1974년, 마흔두 살. 박정희 정권 아래 긴급조치1호 위반으로 의형제를 맺고 박정희 타도 싸움을 명세하였던 독립군 출신 장준하(1918-1975)와 군법재판을 받는 장면 |
ⓒ 통일문제연구소 |
유신체제의 정치적 공포분위기에도 이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장준하와 백기완 등 인권운동가들이다. 이들은 1973년 12월 24일 '헌법개정청원운동본부'를 결성하고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함석헌ㆍ김재준ㆍ김수환ㆍ백낙준ㆍ안병무ㆍ홍남순ㆍ계훈제ㆍ김찬국ㆍ법정 등 각계 지도급 인사 3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곧 많은 국민의 지지가 따랐다. 어떤 의미에서 긴급조치 제1, 2호는 이 운동을 막고자 취한 조치였다.
긴급조치가 발표된 지 5일 만인 1974년 1월 15일, 비상보통군재 검찰부가 전 <사상계> 사장 장준하와 백범사상연구소 대표 백기완을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첫 구속하고, 21일 도시산업선교회 김경락 목사 등 종교인 11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하는 등, 종교인ㆍ학생들을 다수 구속했다.
한승헌은 장ㆍ백 두 사람의 변론을 맡았다. 긴급조치의 발령으로 모두가 몸을 사릴 때이다.
비상보통군법회의 제1심 심판부에는 별 셋짜리 재판장을 비롯한 현역장교 몇 사람이 구색 양념처럼 차출되어온 판사, 검사 각 한 명씩이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1월 31일 결심공판에서 징역 15년을 구형하자 바로 다음날인 2월 1일에 떨어진 판결이라는 것도 징역 15년, 단 하룻밤 사이의 일이었다. 구형량에서 한푼도 깎아주지 않은 '정찰제 판결'이었다.
나는 그때 말했다.
"대한민국의 '정찰제'는 백화점의 상관행이 아닌 군법회의 판결에서 최초로 확립되었다"라고. (주석 5)
'정찰제 판결'이라는 용어는 유신ㆍ5공시대 한국 사법부의 치부를 가장 절묘하게 지적한 '논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준하와 백기완은 군사법정에서도 당당하게 굽힘없이 유신헌법의 개정으로 민주헌정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진술하였다. 백기완의 증언이다.
그때 체포된 지 두 달도 채 못 되어 벌어지는 육군본부 뒤쪽의 군사법정은 자못 으스스했다. 법정에는 헌병들이 총을 메고 섰고 방청석에는 나의 아내와 꼬마들, 그리고 장준하 선생의 직계가족만이 지켜보는 사실상의 비밀재판, 거기서 깡마른 한 변호사는 마치 등불처럼 나타나 나한테 묻는 것이었다.
"백기완 씨는 이번에 중앙정보부에 잡혀가서 조사를 받았지요?"
"네"
"그때 백기완 씨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고는 단돈 5000원 뿐이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네, 딱 5000원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잡혀오기 직전까지 개헌청원운동을 주도하면서 자금도 상당히 필요했을 터인데…"
"네, 민주주의와 통일을 바라는 엄청난 민심이 바로 우리들의 자금이요 힘이니까요."
"알겠습니다."
나는 어찌해서 그 많은 변호사 반대신문과 변론요지를 빼고 굳이 이 대목을 상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 한승헌 변호사의 날카롭고 당당한 백기완 변론의 알짜가 살아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주석 6)
주석
5> <실록(2)>, 64쪽.
6> 백기완, <박정희 유신독재와의 정면대결>, <분대시대의 피고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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