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다 참사를 당한 겁니다" 상담치료 공유하는 생존자
“선생님 아무래도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아니에요. 가지 말았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수 있게 지켜주는 것이 맞아요. 놀다가 참사를 당한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상담치료를 통해 조금씩 회복하는 과정을 기록한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A씨는 지난 2일부터 포털 다음 카페에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을 10편 넘게 올렸고, 이 내용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하고 있다. A씨는 첫 상담에서 “이태원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다”라는 상담사의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며, 상담사의 권유로 연재를 하게됐다고 했다.
A씨는 지난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서로를 치유할 수 있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게시글에서 상담치료를 안내하는 내용을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A씨의 의도가 전해지길 바라며 그가 올린 상담 후기를 갈무리했다.
A씨는 지난달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현장에 있었다. 그는 "압박이 갑자기 심해져 발이 (땅에) 안 닿았던 것도 맞지만, 숨쉬기가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옆 술집 난간에서 끌어주셨고, 술집에서 문을 열어줘 대피해서 잘 살아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직후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순 없었다. A씨는 “(오후) 10시 40분쯤부터는 ‘아 살았다. 이제 그럼 술 먹고 놀 수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던지라 참사 생존자로 분류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자책했다.
A씨는 죄책감이 커 보인다는 상담사의 말에 “죄책감이라기 보다는 제 자신이 좀 징그럽다”고 고백했다. 오후 10시 40분쯤 주변의 도움으로 구출된 후 헤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위험하긴 했는데 지났으니 됐지 뭐” 이런 마음이었다고 했다.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 건 오후 11시 7분 이후였다. “사람이 깔려 죽었어요. 통제에 동참해주세요” 소리치는 경찰관의 목소리를 듣고서다. 오후 11시 30분쯤, 1초에도 몇명씩 사람들이 옮겨지는 걸 보며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다.
그는 “그때는 몰랐다. 신나게 놀던 우리 뒤로 구급요원이 들것으로 사람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는걸.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죄책감이 아니라 제 자신이 징그러운 인간인 것 같았다”고 했다. “CPR 도와달라는 요청에도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던 것 같다”며 현장에서 구조를 돕지 못한데 대한 후회도 털어놨다.
A씨의 상담사는 “큰 사고 현장에서 살아돌아와 다행”이라며 “원래 술 먹고 노는 곳인데 벌어지지 말았어야 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PR 역시 전문인력이 아니고 술을 먹은 상태라 참여했어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돕지 못했다는 무기력함을 느꼈을 수 있다”며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도움이 될 수 있게 CPR배우는 걸 알아보는 식으로 관점을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A씨는 사고 현장 인근의 술집과 식당 직원들도 구조를 도왔는데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왜 음악을 안껐냐, 정신이 있는거냐”며 상인들을 욕하는 것을 보고 무력감을 느꼈고 원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
A씨는 같이 살아남은 친구가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이태원에 가지 않은 척 하고 있다며 “방에 들어가 울고 목욕을 하며 혼자 풀고...꽁꽁 숨어 있는 네가 너무 걱정된다”며 “제발 전화상담이라도, 더 용기내서 대면 심리치료 한번이라도 받아달라”고 적기도 했다.
A씨는 “사과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이태원역 추모공간을 찾은 일화도 전했다. 상담사는 “충분한 애도를 못해서 그럴 수 있다”며 추모를 권했다. 망설임 끝에 용기내어 이태원역을 찾은 A씨는 “국화꽃을 가지고 이태원역 1번출구에 도착해 편지를 쓰고 붙이고 헌화를 하고 절을 두번했다”며 “그리고 속으로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며 누구에게든 베풀게요’ 외쳤고, 마음이 많이 풀렸다”고 전했다.
하지만 추모 현장에선 “놀다가 죽은걸 뭐 어쩌라는 거냐”는 얘기도 들렸다. A씨는 “‘그러니까 이게 어떤 거냐면요. 전국노래자랑 구경갔다가 깔려 죽을 수 있다는 소리예요’라고 대놓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스스로 자아가 강해 난관을 잘 극복해왔다고 생각해왔는데 현재 상황을 이겨내기 어려워 혼란스럽다고도 했다. A씨는 “이겨보려 운동을 갔지만 발이 땅에 닿는 것조차 어려워 운동이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통제가 되지 않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어 좌절감이 크다”고 했다. 상담사는 “자아가 강할수록 견디지 못할 큰 사건이 다가오면 더 크게 무너진다”며 “내가 지금 많이 힘들구나라는 걸 인정해주라”고 했다.
A씨는 이후에도 글을 올리고 있다. 네티즌들은 “글 써주셔서 너무 고맙고 마음 아프다” “죄책감 가지지 말고 모두가 잘 회복했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남겼다.
이태원 참사로 인해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24시간 운영되는 정신건강 위기상담 전화 1577-0199를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한국심리학회(1670-5724)는 평일 오전9시부터 오후9시까지 무료상담을 지원한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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