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당한 세월호 유족 "경찰 문건, 기무사·국정원 했던 짓과 똑같다"

김종훈 2022. 11. 5. 13: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팟인터뷰] 이태원 참사 후 작성 경찰청 비공개 문건에 등장한 '예은아빠' 유경근

[김종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지난달 31일 이후 닷새 연속으로 조문하고 있다.
ⓒ 유성호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엿새째가 된 지난 3일 밤. '예은아빠' 유경근 전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온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기자의 말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유가 하나뿐이라는 걸 알지 않나. 세월호 참사 때 발생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서다."

유 전 위원장은 이태원 압사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SNS에 1989년 4월 15일 영국 힐즈버러 구장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를 언급하며 '이태원 참사, 당신 잘못이 아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글에서 그는 "핼러윈 파티에 간 당신, 당신 자녀의 잘못이 아니다. '죽어도 싼' 일은 더욱더 아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의 책임은 무한대"라며 정부의 신속한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2차 가해를 자행하는 일부 사람들을 향해 "우리 자녀들, 가족들의 희생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들이야말로 정신 나간 것들, 철없는 것들이다.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놈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성토했다. 유 전 위원장이 쓴 글은 1200회 넘게 공유되며 온라인에서 회자됐다.

그런데 경찰청은 지난 10월 31일 '정책 참고 자료'라는 제목의 비공개 문건을 만들었다. 이 문건은 1일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을 불렀다. 경찰청은 문건에서 유 전 위원장이 쓴 글을 두 차례 언급하며 "(전국민중행동 등 정부에 비판적인 진보단체가) 정부 대응상 미비점을 적극 발굴하고 '제2의 세월호 참사'로 규정해 정부를 압박한다는 계획"이라고 적시했다.

유 전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국정원과 기무사가 했던 사찰과 다르지 않다"면서 "경찰이 왜 이러한 일을 했는지, 무슨 목적으로 이러한 문건을 만들었는지,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 등을 규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유 전 위원장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경찰청 비공개 문건, 기무사와 국정원이 했던 짓과 똑같다"
 
 경찰청이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이틀 뒤인 지난 10월 31일 주요 시민단체의 동향과 언론 보도 추이 등의 정보를 수집·분석해 내부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문건은 특별취급으로 분류돼 대통령실 등 상급 관계기관에 배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 경찰청
 
- 경찰청이 만든 비공개 문건에 유 전 위원장이 쓴 글이 두 번 등장한다. 확인했나?

"봤다. 그 글을 올리면서도 당연히 누군가 찾아보고 악용할 것이라 예상했다. 친정부 단체 쪽에 유포해 대응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했다. 전부 예상한 부분인데, 단 하나 이렇게까지 어이없을 정도로 빠르게 밝혀질 것은 상상도 못했다." 

- 경찰청이 비공개 문건을 왜 작성했다고 보나?

"경찰청의 행태는 세월호 참사 당시 기무사나 국정원이 했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도 다음날부터 희생자 가족들 동향 파악을 한다며 사찰했다. 그래서 지금 주목할 것은 경찰이 왜 이러한 동향 파악을 했는지, 이렇게 작성된 문건이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다. 결국 이번 문건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고 참사를 빨리 수습하고 정리할지 따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나하나 규명해야 한다."

- 사찰을 예상하면서도 글을 작성한 이유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그랬지만 장례 마칠 때까지는 사실 어느 누구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장례를 끝내고 삼우제까지는 마쳐야 유가족들도 주변을 보면서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나는 그 과정을 겪었으니 유가족이 좀 덜 고통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일부에서 '영국 사례와 이번 참사가 어떻게 똑같냐'면서 곡해하는데, 사건을 덮기 위한 방식이 똑같다. 당시 영국에서도 참사를 당한 관중들을 폄훼하고 모독하고 조롱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잘못인 것처럼 내세웠다. 지금 이태원 참사도 희생자들이 놀러 가서 사고를 당했다는 식으로 똑같이 말하고 있다. 잘못된 일이다. 이를 짚어주려고 강하게 썼다. 물론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이 보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 유가족들이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유가족들은 희생자를 직접 공격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모든 걸 닫아버린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데, 이미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돼서 차단한다. 시간이 더 지나야 한두 명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잘못됐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질타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트라우마 겪는 국민들... 세월호 참사 오버랩돼서"
  
 유경근 전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 공동취재사진
    
- 10월 31일에는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관리를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글도 올렸다. 유가족뿐 아니라 수습한 사람들 또한 반드시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중에 보니 참사 당시 헌신했던 수많은 분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더라.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정도로 큰 피해를 겪었다. 방치하면 우리 사회가 무너진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세월호 때는 아이들 시신을 껴안고 나온 민간잠수사가 그랬고, 지금은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했던 소방대원과 경찰들이 걱정이다. 현장을 수습해야 하는 일선 공무원들도 굉장히 힘들 거다. 이분들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

- 주변을 보면 상황을 지켜본 일반 국민들도 적잖이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당장 출퇴근길 지하철 풍경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유가 하나뿐이라는 걸 알지 않나. 이태원 압사 참사 문제가 제대로 수습되고, 재발 방지책이 완벽하게 마련된 다음 책임 있는 자들이 적절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한 번은 겪어야 트라우마가 극복된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때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으니 참사가 오버랩되면서 당시 느꼈던 것들이 다시 떠오르는 거다. 이태원 참사는 서울 시내 한복판을 걷다가 참사를 당한 거니까. 특별한 장소에서 참사가 일어난 게 아니지 않나. 누구나 갈 수 있는 길거리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그러니 더 시민들에게 와닿고 있다."

"매뉴얼이 없어서 사고를 막지 못한 게 아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이날 윤 경찰청장은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사고로 인해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애도했다.
ⓒ 유성호
 
- 일부에서는 구체적인 매뉴얼이 부재해 참사를 막지 못했다 말한다.

"시스템과 매뉴얼을 말하는데 한마디만 하겠다. X소리다. 시스템과 매뉴얼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다 마련돼 있다. 신고받으면 출동하고 출동해서 위험요소를 발견했으면 면밀히 살펴보고 대비를 했으면 되는 거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살리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거기에 무슨 시스템이 필요하고 매뉴얼이 필요한가. 시스템과 매뉴얼을 말하기 전에 왜 그날 참사를 막지 못했는지 생명이 죽어갈 때 왜 살리지 못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 경찰에서 특수본을 구성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국회에서는 국정감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월호 때의 경험을 빌려 이야기하면 여야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조사위원회는 정치적인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도 많았다. 정말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고자 한다면 외부의 입김을 받지 않는 상시적이고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핵심은 피해자들의 참여 여부다. 조사와 수사과정에서부터 피해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조사 과제를 정해서 그것이 제대로 규명되고 있는지 피해자들이 감시하고 지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대구지하철 참사 피해자들을 생각해보자. 그분들 덕분에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에도 여러 번 (지하철) 방화 시도가 있었음에도 재발되는 일이 없었다. 그분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감시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조사과정의 중립성 운운하며 피해자 참여를 배제하자 말하는데, 피해자들은 조사과정에서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 또한 정부의 조사 결과에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