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두 번 이태원 역 찾는 청년, 그는 노래를 불렀다
[선채경 기자]
참사 사흘째이던 11월 2일 오후 네 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에서 한 청년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인근 대학에 다닌다는 이진광 씨는 매일 아침 여덟 시와 네시, 두 차례 이곳에 들러 희생자를 위한 곡을 부른다고 한다.
"지구촌 축제 때 와서 놀기도 했고, 저도 코스프레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라 참사가 더욱 가깝게 느껴져서 마음이 좋지 않아요. 오늘은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내 주를 가까이(Nearer God to Thee)'를 불렀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는 타이타닉 침몰 당시 끝까지 배에 남은 악단이 승객을 위해 연주했다고 알려진 음악이에요.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나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것 같아요."
▲ 참사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헌화와 편지 등이 모인 이태원 역 앞 |
ⓒ 선채경 |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6일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하며 음악을 음소거시켰다. 여러 지역축제와 공연 등이 줄줄이 취소됐고, 가수들은 신곡 발매일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은 당분간 결방한다. 심지어 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애도 기간 음악 송출을 중단한 상태다.
▲ 영화 〈타이타닉〉중 침몰하는 배 위에서 연주를 시작하는 연주자들 |
ⓒ 20세기폭스 |
실제로 1912년, 가라앉는 타이타닉 갑판 위에서 선상 악단이 마지막까지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죽음의 문 앞에 선 순간이 모두에게 외롭지 않게끔 달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 맨체스터 폭탄 테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 집회에서 시민들이 합창하고 있다. |
ⓒ BBC |
2017년 5월 22일,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열린 인기 팝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콘서트가 끝난 직후 폭탄 테러가 일어나 22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중 다수가 아리아나의 팬인 어린이와 청년들이었다.
▲ 1997년 7월 19일 바르샤바에서 열린 홍수 희생자 추모 콘서트 |
ⓒ Pawel Babala |
1997년 56명의 목숨을 앗아간 '브로츠와프 대홍수'는 폴란드에서 2차 세계 대전 이래로 가장 큰 재난이었다. 당시 정부 고위 관료들은 자연재해에 대비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귀담아듣지 않고 안일하게 대처해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
록밴드 '헤이(Hey)'는 자선 싱글 '당신은 나의 희망(Moja I Twoja Nadzieja)'을 발표하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판매 수익은 모두 수재민 구호 기금으로 모였다. 곧이어 7월 19일 바르샤바에서는 '헤이'를 비롯한 30명의 아티스트들이 모인 추모 콘서트가 열렸다.
1912년 타이타닉, 1997년 브로츠와프, 2017년 맨체스터는 깊은 상실에도 불구하고 절대 고요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음악을 통해서 연대를 확인하고 서로의 슬픔을 토닥였다. 아리아나 그란데는 맨체스터 폭탄 테러 이후 성명문을 발표하여 "증오는 사랑을 이길 수 없다. 음악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음악은 우리를 치유하고, 하나로 모으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음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잃은 사람들,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팬들, 그리고 이 비극으로 영향받은 모든 이를 기리기 위해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슬픔, 위로, 희망, 사람들이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음악이 가진 가장 큰 힘 중 하나다. 애도의 방식으로서 외로운 침묵보단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이 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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