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모의 酒저리]노무현 사로잡은 막걸리…4대째 백년 이어온 술도가

구은모 2022. 11. 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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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충북 단양 '대강양조장'①
1918년 문 연 백년 양조장… 4대 걸쳐 105년째 운영
노무현 전 대통령, 2005년 단양 방문서 맛보고 즐겨 마셔
퇴임 때까지 청와대 만찬주로 200여 차례 쓰여
쌀·밀가루로 빚은 ‘소백산 생막걸리’… 90년된 전통 옹기 숙성 고수
충북 단양 '대강양조장'

[아시아경제 구은모 기자] 죽령(竹嶺)은 예로부터 문경의 새재, 영동의 추풍령과 함께 영남대로의 3대 관문으로 일컬어졌다. 영남 내륙의 여러 고을이 서울 왕래를 위해선 모두 이 길을 거쳐야 했고, 나라의 관리는 물론 온갖 보부상들도 등짐을 지고 이 고갯길을 수없이 넘나들었다. 소백산 기슭의 충북 단양군 대강면 장림리는 이 고갯길 어귀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이곳엔 수많은 길손들이 높고 험준한 죽령을 넘기 전에 하룻밤 쉬면서 짚신을 고쳐 신고 말을 갈아타던 마방이 있었고, 객고를 달래주던 주막거리가 번창했다.

어림잡아 이천년 이상 영남 내륙을 잇는 동맥 역할을 하던 길이었지만 이 길도 영원하진 못했다. 일제강점기 국도와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죽령옛길을 이용하는 이들도 점차 줄어들었고, 성시를 이루던 주막들도 하나둘 문을 닫더니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흥했던 주막과 쉬어가던 나그네는 모두 사라졌지만 죽령옛길의 술맛은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다.

대강양조장은 올해로 문을 연 지 105년이 된 백 년 술도가로 현 조재구 대표의 외증조부인 고(故) 김영태 씨가 1918년 양조장 면허를 취득해 충북 충주에 문을 연 수안보양조장이 시초다. 창업주 김 씨와 가족들에 의해 운영되던 양조장은 1969년부터 김씨의 외손자인 조국환 씨가 가업을 이었고, 1979년 단양 대강면으로 터를 옮기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크고 부드러운 언덕’이란 뜻의 대강(大崗)이란 이름은 현재 양조장이 자리 잡고 있는 지명에서 따왔는데, 완만한 산등성이로 유명한 소백산을 뜻한다.

조재구 대강양조장 대표는 “아버지는 양조장을 운영하는 외갓집이 일대에서 알아주는 부자였던 것을 보고 자라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양조장을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며 “사범학교를 나와 교직에 계시다가 양조업에 뛰어든 것도 그런 마음을 어려서부터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수안보 인근에 자신의 양조장을 차려 운영하다가 외가 쪽 양조장을 계승하게 됐고, 이후 단양으로 옮겨오면서 현재까지 4대에 걸쳐 양조장을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강양조장의 대표 제품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수하고 소박한 대강 막걸리에 빠지다

대강양조장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연이 깊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5월 농촌체험 일정으로 단양군 한드미마을에 방문했다가 식사 자리에서 대강양조장의 ‘소백산 생막걸리’를 처음 접했다. 막걸리 맛이 입에 맞았을까, 노 전 대통령은 앉은 자리에서 여섯 잔을 연거푸 마셨다고 한다.

막걸리 맛에 반한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돌아간 이후 대강막걸리를 여러 차례 주문해 귀빈들에게 대접했다. 삼부 요인 만찬에서도, 미국프로풋볼리그(NFL) 스타 하인즈 워드가 MVP로 한국에 방문해 청와대를 찾았을 때도 건배주는 대강막걸리였다. 이후 2008년 퇴임할 때까지 대강양조장의 막걸리는 청와대 만찬주로 지정돼 공식 만찬 등에 200차례 이상 사용됐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내준 인삼으로 담근 인삼주.

조 대표는 “대통령이 방문하기 전날 동네 이장이 찾아와 술을 주문해 받아 갔는데, 당시엔 보안상 이유 때문이었는지 누가 방문하는지도 몰랐다”며 “노 전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사실도 이후 뉴스를 통해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후에 쌀값이 폭락해 농민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니 우리 쌀로 만든 우리 술을 만찬주로 바꾼 것인데 우리 양조장도 그 덕을 많이 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과 대강양조장의 인연은 퇴임식까지 이어져 조 대표는 대통령 퇴임식 날 감사의 뜻으로 봉하마을에 막걸리 2000병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막걸리에 대한 보답으로 인삼을 보내왔고, 조 대표는 그 인삼으로 술을 담갔다. 조 대표는 “그냥 먹어버리기는 너무 아깝고 의미가 깊어서 인삼주를 담갔는데,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며 “아직 한 번도 개봉하지 않았는데 언젠가 양조장에 뜻깊은 날이 오면 열어 마실 생각”이라고 말했다.

쌀·밀가루로 빚은 은은한 생막걸리 …90년 된 항아리 발효 전통 고수
대강양조장의 '소백산 생막걸리'

노 전 대통령이 첫 만남에 빠져든 소백산 생막걸리는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대강양조장의 대표 제품이다. 쌀과 밀가루로 빚어 전반적으로 은은한 단맛을 품고 있는데, 수수하고 소박한 막걸리 본연의 매력이 돋보인다.

쌀이 흔해진 요즘에야 막걸리는 쌀로 빚는 술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쌀이 귀하던 과거에는 밀로 빚은 막걸리가 더 흔하고 자연스러웠다. 백 년 이상 막걸리를 빚어온 대강양조장의 막걸리도 밀로 빚던 막걸리에 세월의 흐르며 쌀 맛이 더해졌다. 조 대표는 “쌀 막걸리는 깔끔하면서 가벼운 맛이 있는 반면 밀 막걸리는 걸쭉하면서 구수하고 묵직한 맛이 있다”며 “두 재료의 장점이 어우러지도록 최적의 비율로 혼합해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백산 생막걸리는 톡 쏘면서 입안에 걸쭉하게 감기는, 전형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편안하게 즐기기 좋은 막걸리다. 양조에는 소백산 기슭의 죽령 아래 지하 180m 석회암의 깊은 암반층에서 나오는 천연탄산수를 사용한다. 탄산기가 돌고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데, 이 지역에선 옛날부터 소백산 산삼이 썩어서 우러나오는 물이라고 했다고 한다.

대강양조장은 여전히 80~90년된 항아리를 막걸리 발효에 사용하고 있다.

조 대표는 항아리 발효를 고집하고 있는 것도 대강양조장의 특징이자 자부심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많은 양조장들이 관리의 장점 등을 이유로 스테인리스 탱크 발효를 선호하고 있는 데 반해 대강양조장은 전통적인 옹기 숙성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양조장의 발효실에는 일본 쇼와(昭和) 원년(1926년)이라는 제작 일시가 찍힌 옹기를 비롯해 80~90년 된 항아리를 40여개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 대표는 “흙으로 만든 옹기는 어머니의 품처럼 술을 품어준다”며 “항아리는 숨을 쉬는 유기체와 같아서 쉽게 차가워지거나 뜨거워지지 않아 온도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지지 않고, 효모가 좋아하는 온도를 유지해 술맛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아리가 스테인리스와 비교해 청소가 쉽지 않고 불편한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양조장만의 정체성이기도 하다”며 “앞으로도 옹기에서 비롯된 깔끔하고 깊은 맛을 계속해서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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