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짝짓기 예능 범람의 시대 [하재근의 이슈분석]
2022년엔 짝짓기 예능이 범람했다. 티빙의 ‘환승연애2’부터 ENA플레이의 ‘나는 솔로’, MBN의 ‘돌싱글즈’, IHQ의 ‘에덴’, 넷플릭스 ‘솔로지옥’ 등 무수히 많은 짝짓기 예능이 쏟아졌다. 바야흐로 대 짝짓기 예능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에게 짝짓기는 음식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욕망의 대상이다. 과거 불교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욕망을 ‘식색’이라고 했었다. 내가 당장 살기 위해선 음식이 필요하고, 내 유전자를 보존하고 인류를 유지하기 위해선 짝짓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음식과 짝짓기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대중문화는 당연히 이런 보편적 선호를 반영한다.
이것이 대부분의 드라마에 남녀 러브라인이 등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예능에서의 짝짓기 코드는 부침을 겪어왔다. 과거 ‘사랑의 스튜디오’ 같은 고전적인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다가 2000년대 이후 ‘강호동의 천생연분’ 같은 연예인 짝짓기 예능이 인기를 끌었다.
대중은 프로그램 속에서 나타나는 연애감정을 진짜라고 믿으며 빠져들었다. 시간이 흐른 후 그것이 모두 쇼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열기가 식었다. 그러자 더욱 진짜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가 대히트를 친 것이다. 기존 버라이어티 쇼프로그램과는 다른 관찰 다큐 느낌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 역시 허위로 꾸며진 쇼라는 인식이 퍼진 후 열기가 식었다. 그러자 업계는 더욱 강한 리얼로 응전했다. SBS ‘짝’의 등장이다. ‘천생연분’, ‘우리 결혼했어요’와 달리 이 프로그램에선 일반인이 출연했다. 시청자들이 연예인의 러브라인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상황에서 일반인의 리얼리티 관찰 예능은 강력한 대안이었다. 신드롬이 터졌다.
하지만 일반인의 이야기도 진짜가 아니라는 의심이 퍼져갔다. 한편으론 시청자들이 과몰입하면서 악플과 신상털기 같은 사회문제도 터졌다. 급기야 한 출연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된서리를 맞고 한동안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채널A '하트시그널‘이 짝짓기 예능의 물꼬를 다시 텄다. 뒤이어 티빙 ’환승연애‘와 넷플릭스 ’솔로지옥‘이 히트하면서 지금과 같은 짝짓기 예능 대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짝짓기는 인간의 본능인데 요즘 젊은 세대는 이에 좌절을 겪어왔다. 직접적인 인간관계에 자신감을 잃은 세대이기도 하고, 경제적 여건 때문에 결혼을 포기했다는 말이 나오는 세대이기도 하다. 와중에 코로나19까지 덮쳐 더욱 이성에 대한 탐색이 힘들어졌다. 이런 배경에서 짝짓기 예능이 연애욕구의 분출구로 작용하게 됐다.
짝짓기 예능의 특징 중의 하나가 과몰입이다. 시청자들이 극중 관계에 과하게 몰입하면서 논란을 벌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실에선 어려운 이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탐색이나 대리만족을 이어나간다.
대중문화 업계 입장에선 가성비 효자 콘텐츠다. 케이블, OTT 등 플랫폼 경쟁이 격화되면서 콘텐츠의 양이 폭증했다. 그 모든 콘텐츠를 톱스타를 앞세운 블록버스터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이럴 때 짝짓기 예능이 비스타 출연진에 저렴한 제작비로도 쏠쏠한 성과를 낼 수 있는 효자 아이템으로 대두한 것이다.
짝짓기 예능은 자극성을 높이는 데도 유리하다. 액션으로 자극성을 높이려면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짝짓기의 자극성은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높일 수 있다.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는 OTT의 등장과 함께 이러한 종류의 자극성이 높아지는 추세다.
막장드라마처럼 시청자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욕받이’ 기능도 한다. 프로그램 속의 비호감 캐릭터나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 시청자들이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다. 댓글로 출연자들의 선택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것이 재미와 후련함을 느끼게 한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부침은 언제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성관계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이고, 플랫폼 경쟁 격화와 사회 개방화로 인해 프로그램의 수위가 점점 올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앞으로도 짝짓기 예능은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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