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지평선’ 역주행에 위로받는 청년들 [윤하의 사건]

이은호 2022. 11. 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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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하. ‘사건의 지평선’ 뮤직비디오 캡처

수상할 정도로 천문학에 진심인 가수. 가수 윤하가 최근 새로 얻은 별명이다. 데뷔 초 발표한 ‘혜성’을 비롯해 ‘살별’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등 우주에 관한 노래를 자주 불러 이런 별칭이 붙었다. 이중 ‘사건의 지평선’은 지난 3월 발매 이후 7개월여 만에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 음원차트에서 순위를 역주행하고 있다. 아련하면서도 벅찬 멜로디, ‘모든 끝에 시작이 함께하길 바란다’는 가사 내용이 현실에 갇힌 청춘을 위로한 덕분이다.

MZ세대가 다시 만난 ‘순수의 시대’

시작은 유튜브였다. 윤하는 올 봄과 가을에 열린 ‘썸데이 페스티벌’ 등 음악 축제와 10여개 대학 축제에서 ‘시간의 지평선’을 불렀다. 유튜브에 공개된 당시 라이브 영상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차트 역주행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4일 음원사이트 멜론 실시간 차트에 98위로 등장한 뒤, 꾸준히 순위를 높여 정상을 코앞에 뒀다(4일 오후 6시 기준). 르세라핌‧아이브‧뉴진스 등 대형 아이돌 그룹과 Mnet ‘스트릿 맨 파이터’ 미션곡인 ‘새삥’ 등 인기곡을 모두 제쳤다.

노래 제목인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경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윤하는 소멸로 향하는 이 구간을 이별 뒤 세계에 빗댔다. 블랙홀 안쪽과 이별 이후 모두, 앞날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서다. 4인조 밴드가 빚은 역동적인 사운드와 희망찬 선율, 산뜻하게 이별을 말하는 가사는 현실에 치인 2030세대에게 ‘순수의 시대’를 소환하며 호평 받고 있다. ‘사건의 지평선’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영상엔 “근래 보기 드문, 한국어로만 된 아름다운 가사” “윤하는 몇 년이 지나도 꿈꾸는 소녀처럼 노래한다”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윤하 하면 떠오르는 밝고 드라마틱하지만 애수가 깃든 곡”이라며 “‘사건의 지평선’ 등 윤하의 6집 리패키지 수록곡 모두 완성도가 높다. 좋은 기회로 재조명돼 기쁘다”고 말했다.

데뷔 초 윤하. KBS2 ‘윤도현의 러브레터’ 캡처 

“1990년대생 마음속 어딘가에…” 윤하에게 위로 받는 청년들

2004년 16세에 일본에서 먼저 데뷔해 18년째 활동 중인 윤하는 2030세대의 자화상 같은 가수다. 데뷔 초 뛰어난 가창력으로 주목받으며 ‘비밀번호 486’ ‘기다리다’ 등을 히트시켰다. 부침도 많이 겪었다. 2011년 전 소속사와 분쟁을 겪으며 활동을 쉬었다. 2016년에는 비중격만곡증(코 중앙의 비중격이 휘어지는 증상)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긴 공백을 깨고 발매한 정규 5집 ‘레스큐’(RescuE)와 미니 4집 ‘스테이블 마인드셋’(STABLE MINDSET)은 이전만큼 관심 받지 못했다. 그래도 윤하는 꾸준히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열며 제 자리를 지켰다.

학창 시절 윤하의 음악을 듣고 자란 2030세대는 ‘사건의 지평선’ 역주행에 특히 열광한다. 저성장시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막막한 미래 때문에 한숨짓던 청년들이 “윤하가 예전처럼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위로받는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분석이다. 실제로 온라인에선 “1990년대생 마음속 어딘가에는 반드시 윤하가 있다” “추억 속에 묻을 뻔한 가수가 엄청난 명곡을 내줘 고맙다”는 환호가 쏟아진다. 정덕현 평론가는 “윤하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세대 중에는 윤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팬들도 있을 것”이라면서 “윤하의 성취를 자신의 성장처럼 받아들인 이들이 용기와 위로를 받아 ‘사건의 지평선’ 역주행에 더욱 열광하는 것”이고 짚었다.

윤하는 ‘사건의 지평선’ 흥행을 부스터 삼아 음악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달 29일 JTBC ‘K909’에 출연한 데 이어 다음달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윤하는 소속사 C9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신기하고 감사하다”면서 “동료들과 함께 꾸준히 쌓아온 것이 운을 만나 좋은 성과를 거둔 것 같다. 포기하지 않고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주신 팬 여러분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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