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가 이재명입니까" "네"…대장동 재판서 또 거명된 이재명 [法ON]

하준호 2022. 11. 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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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중앙지법 523호 법정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여기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이준철) 심리로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사건 공판이 매주 열리는 곳입니다. 최근엔 이 사건 불구속 피고인 중 한 명인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소유주)에 대한 다른 피고인 측의 반대신문이 한창입니다.


남욱 측, 정영학 측 자필메모 내밀며 이재명 거론


지난 4일 속행된 공판에서도 이 사건 구속 피고인이자 대장동 민간사업자 측인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소유주)의 변호인이 정 회계사 측의 자필 메모를 제시하면서 이재명 대표의 이름이 여러 차례 거론됐습니다. 남 변호사 측은 정 회계사가 2013년 7월 2일 남 변호사와 나눈 대화 녹취록 내용을 지난해 5~7월께 요약한 메모에 대해 추궁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화면에 ‘LEE’ ‘캠프’라는 단어가 나오자 이를 캐물은 겁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평화·안보 대책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이 대표의 이름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특혜 사건 61차 공판에서도 수차례 언급됐다. 뉴스1

방청석에 앉은 취재진의 노트북 타자 소리가 빨라졌고, 남 변호사의 변호인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Q : 변호인=“엘이이(LEE)는 누굽니까.”
A : 정영학=“시장님….”

Q : 변호인=“이재명 (성남)시장을 엘이이(LEE)로 기재한 겁니까.”
A : 정영학=“네.”

Q : 변호인=“그 밑에 ‘캠프’는 뭡니까.”
A : 정영학=“정진상(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씨나 김용(민주연구원 부원장)씨….”

Q : 변호인=“지난해 5~7월경의 캠프를 말합니까, 아니면 저 당시(2013년 7월)의 캠프를 말합니까.”
A : 정영학=“이재명 시장의 사람들이란 내용으로 작성했습니다.”


정영학 “유동규, 이재명에 ‘대장동 베벌리힐스 안된다’ 보고”


정 회계사 측이 작성한 메모에는 직접 그린 관계도도 포함돼 있었는데요. ‘유동규→캠프(정진상, 김용)→LEE’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정 회계사는 “저때(2013년 7월 2일)가 베벌리힐스가 발표됐을 때”라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김용, 정진상과 다 상의해서 (대장동이) 베벌리힐스가 안 되도록, 저층 연립이 안 되도록 다 보고했다. 시장님한테도 이야기했다’고 말했단 의미”라고 증언했습니다.

‘베벌리힐스’란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2013년 7월 1일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대장동을 한국판 베벌리힐스로 조성하겠다”고 말한 것을 뜻합니다. 기존 아파트 중심 개발 방식 대신 타운하우스 위주의 고급 주택단지를 짓겠다는 구상이었어요. 고층 아파트를 올려 수익을 극대화하려던 민간사업자 측에겐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죠. 이 때문에 유 전 본부장이 이 대표에게 ‘한국판 베벌리힐스’ 개발 방식은 안 된다는 의견을 곧장 전달했다는 게 정 회계사의 말뜻입니다.

실제 앞선 공판에서 공개된 해당 녹취록의 음성 파일에는 남 변호사가 정 회계사에게 “(유 전 본부장이) 오늘 아침에 시장님을 만나 ‘시장님, 왜 베벌리힐스 얘기를 꺼내셨습니까’ 했더니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욕 바가지로 먹고 있다’고 그러더라”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남욱 변호사(左), 정영학 회계사(右). 두 사람은 2013년 위례신도시, 2015년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 민간사업자 측으로 참여한 두 사업 비리 의혹의 핵심 인물이다. 연합뉴스·뉴스1


재판에서 계속 거명되는 이재명과 측근들


이처럼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그의 최측근인 김용 부원장, 정진상 실장 등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기 시작한 건 지난달 24일부터입니다. 김 부원장이 지난해 4~8월 이 대표의 대선 경선자금 명목으로 6억원(공모액 8억47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22일 구속된 뒤 처음으로 열린 속행 공판이었습니다.

그날은 유동규 전 본부장 측이 정 회계사를 신문하는 날이었는데요. 유 전 본부장의 변호인은 “(대장동 사업 컨소시엄에서) 건설사를 배제하는 결정은 성남시장(이 대표)의 지시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것 아니냐”고 물었고, 정 회계사는 “위(성남시장)에서 내려온 지침이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민간사업자 측 아파트 단지 용적률이 올라간 것에 대해서도 “용적률 최종 결정권자는 성남시인 걸 아느냐”고 몰아세우기도 했죠.

유 전 본부장 측은 이어 “성남시가 (민간사업자 측이 당초 선호하던) 혼용 방식이 아닌 수용 방식으로 대장동 개발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사업자 선정 기회가 있다고 믿은 건 막연히 유 전 본부장이 도와줄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냐”고 물었고, 정 회계사는 “유 전 본부장에 더해 정 실장, 김용 (성남시)의원 등과도 협의해 왔다고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특혜 사건 오전 공판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남 변호사는 지난달 28일 공판에서 이 대표를 거명하면서 직접 정 회계사와 공방을 벌이기도 했어요.

Q : 남욱=“2014년 12월에 김만배씨(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가 내게 사업에서 빠지라고 하면서 ‘이재명이 네가 있으면 사업권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고 얘기한 걸 들었습니까.”
A : 정영학=“그 자리에서 이재명 얘기를 들은 적은 없습니다.”

Q : 남욱=“2015년 2월 내지 4월께 강남 술집에서 셋이 만난 자리에서 김만배씨가 내게 ‘25%만 받고 빠져라. 나도 지분이 12.5%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이재명 시장 측 지분’이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기억하십니까.”
A : 정영학=“전혀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식 배분은 김만배 씨가 50%, 남욱 25%, 제가 16% 이렇게 만들라고 지시한 것만 기억납니다.”
같은 날 유 전 본부장은 재판이 끝난 뒤 ‘이 대표 측 지분이 있다는 게 맞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죄를 지었으면 흔적이 남는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지난달 초 검찰 조사에서 김 부원장의 혐의 대부분을 폭로한 유동규 전 본부장은 지난달 20일 구속 기간 만료로 풀려난 뒤 공판에 출석할 때마다 이 대표, 정 실장, 김 부원장 등에 대해 “형제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배신감을 느낀다. 그분들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제가 안고 가겠다는 생각도 없다. 있는 그대로 사실만 갖고 얘기할 것”이라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사건 피고인들이 최근 법정에서 이 대표와 그의 측근의 이름, 성남시의 책임을 자주 언급하는 건 민간사업자 측이 성남도시개발공사에 대한 배임을 사전에 적극 공모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깨뜨리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배임 기소 명단에서 빠진 이 대표와 그의 측근들의 혐의가 드러날 수도 있는 점은 아이러니죠. 김 부원장의 이 대표 대선 경선자금 수수 의혹은 물론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도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엄희준)·반부패수사3부(부장 강백신)에서도 이 사건 공판을 예의주시하는 이유입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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