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는 그 골목 못지나가 매일 외박"…일상이 버거운 이태원
이태원 참사 발생 7일째인 4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파출소 직원들은 한 남성의 난동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지하철에서 난동을 피워 파출소로 오게 된 남성은 거듭 경찰관들의 팔을 뿌리치고 “영장 가져오라”고 소리치며 차도에 드러누웠다.
지난 29일 이태원에서 156명이 사망한 현장에 투입됐던 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은 곧바로 일상 치안업무에 복귀했다. 이태원 일대 상점들 다수가 문을 닫았지만 순찰을 돌고 난동과 시비, 성추행 신고를 처리하는 파출소의 일상은 멈추지 않았다.
이태원파출소에 근무하는 직원 A씨는 “아무것도 안 하면 계속 (참사 당일을) 생각하게 된다.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는다든지 대화를 한다든지 해서 계속 채워야지만 잠시라도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파출소 벽면에는 핼러윈 치안 업무에 대비해 파출소장이 주요 클럽 위치를 표시해 손수 만든 지도가 여전히 붙어 있었다.
참사 슬픔 속에도 월급날 맞은 사장님
인근 주민들은 매일 출·퇴근길 지나던 거리에서 참사가 벌어졌다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태원에 10년 넘게 살아온 주민 이모(35)씨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호텔과 친정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한 다리 건너면 죽은 사람들이 있다. 맨날 가던 길인데 계속 생각나고 너무 우울해서 못 지나가겠더라”고 말했다.
주말이면 인파로 가득하던 이태원 퀴논길 일대는 주민들과 하교하는 아이들이 오갈 뿐 오후가 되도록 썰렁한 분위기였다. 이태원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서모(37)는 참사 당일 마감 청소를 하다 창문 너머로 앰뷸런스가 줄지어 들어오는 걸 목격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고 한다. 서씨는 매일 이태원역 1번 출구에 가서 국화를 1송이씩 헌화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고민이 마음을 짓누른다. 참사 이후 매출의 2/3가 줄었기 때문이다. 서씨는 “오늘이 월급날이었다. 앞으로 월세는 어떡하나 싶다”며 “이렇게 참담한 와중에도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게 잔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파출소엔 “드시고 힘내세요” 꽃집 사장님은 “국화 가져가세요”
이태원의 생존자들을 견디게 하는 건 서로를 보듬는 손길들이다. 김태훈(37)씨는 이날 따뜻한 커피를 들고 이태원파출소를 찾았다. 김씨는 “시신을 임시 안치했던 체육관 바로 앞에 살고 있다. 집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너무 힘들지만, 그날 현장에서 안간힘을 썼던 경찰 분들이 더 힘들지 싶어서 커피라도 드리고 싶었다”는 말은 남긴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날부터 이태원파출소에는 피자나 샌드위치를 배달하는 배달원들과, 음료수 박스나 귤, 화분을 들고 찾아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인근에 있는 회사를 잠시 빠져나와 음료 한 박스를 들고 파출소를 찾은 김용범(56)씨는 “결과가 안 좋아서 그렇지 누구보다 열심히 한 분들인데, 꼭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꽃이 산더미처럼 쌓여 뒤엉키고 시들어가는 추모공간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자원봉사자들이 관리하고 있다. 현장 자원봉사자 박선길(67)씨는 “식당을 오래 했고, 코로나19로 폐업했다.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와봤는데 도저히 떠날 수가 없어서 밤새 현장에서 정리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서준(35)씨는 국화를 한가득 가져와 추모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김씨는 “손님들이 울면서 국화를 사는데 돈을 받고 꽃을 해드리기가 너무 죄송했다. 300송이 무료 제공을 준비하던 중 제 친구도 희생자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됐다”며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김씨는 사흘간 총 2800송이의 국화를 추모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최서인·채혜선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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