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많고 적음
경제 부처를 담당하고 있지만 드물게나마 경찰 관련 기사를 다룰 일이 있다. 지난해 11월 취재·보도했던 경찰 공무원 인력 논란도 그중 하나다. 계기는 일선 경찰들의 하소연이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야근을 밥 먹듯 한다는 한숨 섞인 말이 나왔다. 그런데 자료를 입수해 확인해 보니 경찰 공무원 수는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2017년만 해도 11만8069명이었던 정원은 2020년 기준 12만8295명으로 3년 사이 1만226명이나 증가했다. 경찰청이 발표했던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채용계획을 참조하면 기사 보도 이후로도 총인원은 7000명가량 더 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4년6개월 사이 1만7000명 정도의 인원이 증가한 것이다. 5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 경찰 공무원 수는 분명히 많다.
사회 안전망을 지키는 경찰 인력을 늘린 점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인력들이 효율적으로 운용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2017~2020년 자료이기는 하지만 신규 경찰 공무원 중 상당수가 기동대가 포함된 경비 인력으로 편성됐다. 경비 인력 증가율은 3년 사이 29.9%에 달했다. 같은 기간 수사 인력 증가율(10.1%)의 3배 수준이다. 이렇게 기동대 인력이 늘었는데도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인력 부족’을 현장 통제 부재의 이유로 꼽았다. 기동대 출동을 요청했다 안 했다 갑론을박도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인력 부족 탓을 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
특히 4시간 전부터 위급 상황을 알리는 112 신고 전화가 빗발쳤다는 사실 앞에서는 말문마저 막힌다. 경비 인력만큼은 아니지만 치안을 담당하는 생활안정 담당 인력도 2017년 이후 3년간 9.7%가 늘었다. 지난해 기사 보도 이후 경찰청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인원 운용을 더 잘 하겠다”고 해명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해명을 믿었던 입장에서는 허탈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인원이 많이 늘었는데도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경찰과는 반대로 되레 적어서 아쉬운 사회 안전망도 있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료 인력이다. 처참했던 이태원 현장을 증언하는 이들 중에는 의사들도 있다. 우연찮게 같은 장소에 있다가 갑작스러운 상황과 마주한 의사들은 응급환자를 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현장에 우연히 있던 의사들이 좀 더 많았으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유가 있다. 심폐소생술(CPR)과 관련된 오해가 사람들을 주춤하게 만들고 있어서다. 온라인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CPR을 시행했다가 성추행 등으로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뜬소문이 떠돌아 다닌다. 모두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뜬소문은 민간인이 사고와 마주쳤을 때 주저하게 만드는 무형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반면 국가 면허를 지닌 의사는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국민들 사이에 많은 의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비상 상황에 큰 힘이 되는 요소다. 2005년의 일이다. 남미에 위치한 칠레 산티아고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항공편을 이용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안데스 산맥을 넘는 중에 이상기후와 맞닥뜨리며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었다. 안전벨트 착용등이 켜지고 기내 방송까지 있었지만 여객기에 동승했던 수학여행 인파 중 일부는 이를 무시하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다 보니 상황을 가볍게 여겼던 거 같다. 흔들리던 기체는 잠시 평정을 되찾는 듯하더니, 놀이기구인 자이로 드롭마냥 5초 이상 수직강하했다. 안전벨트를 맨 허리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눈에 들어온 것은 여객기 천장에 매달린 3명의 청소년이었다. 낙하가 멈추자 천장에서 여객기 바닥으로 떨어진 이들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의사를 찾는 승무원과 일반인의 절규가 뒤섞였다.
이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성이 스페인어로 “침착하라(Tranquillo)”며 일어섰다. 의사였던 그는 낙하한 이들을 살펴보며 임시 부목을 대 주고 다른 다친 이들을 돌봤다. 착륙 후에도 환자 이송 과정을 끝까지 지키던 그 의사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태원 참사 현장은 이보다 더욱더 참혹했을 것이다. 의사 부족이 아쉽다고 푸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20년 기준 2.5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에 속한다. 아직 한국 사회는 채워야 할 것이 많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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