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다크 넛지’는 상술이 아니라 갈취다
지난달 27일 카카오톡에 결제 알림톡이 왔다. 구매처 애플 서비스, 상품명 앱스토어 어쩌고, 결제금액 6500원이었다. 그동안 여러 애플 구독 서비스를 이용했고 지금도 몇 개를 유지하고 있어 이들 중 하나가 갱신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조금 잦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폰 구독 내역에 들어가 봤다. 구독 중인 항목이 3개. ‘에버노트’와 ‘구글포토’, 그리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앱이 있었다. ‘dizzi’라는 사진 및 동영상 편집 앱인데 유료 구독 중이었다. 모르는 사이 카카오페이로 매주 6500원씩 지출했다. 총 7번, 4만5500원이 계좌에서 빠져나갔고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다. 통장에 구멍이 난 격이었다. 지금 알았으니 망정이지, 지금이라도 몰랐다면 언제까지 얼마나 빠져나갔을지 알 수 없었다. 소름이 끼쳤다. 한번 빠져나간 돈을 되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착오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거나 유료 구독할 리 없었다. 유튜브와 관련 있는 업무를 하다 보니 영상 편집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 앱을 설치한 기억이 없었다. 알고 보니 무료 체험 후 자동 결제된 거였다. 이 앱은 스마트폰 바탕화면에서 이미 지웠기 때문에 찾는데도 쉽지 않았다. 겨우 찾아 들어가 보니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지만 취소할 때까지 요금제가 자동 갱신된다’는 안내가 있었다. 아마 무료로 써보고 취소할 생각이었으리라.
무료 체험 후 유료로 자동 갱신되는 앱을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바로 알고 취소하거나 소액이어서 구독만 취소하고 말았다. 보통 주기가 한 달인데 이번 앱은 매주였다. 금액도 6500원이면 구독료치고 상당했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더한 경우다. 통장에서 버젓이, 주기적으로, 주인이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주장하에 합법적으로 돈을 빼가고 있었다. 누구든지 당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것을 ‘다크 넛지’라고 부른다. 다크 넛지는 온라인시장의 구독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선택을 번복하기 귀찮아하는 성향을 노린 상술이다. 팔꿈치로 툭툭 옆을 찔러 소비자의 비합리적 구매를 유도한다는 의미다. 영상 및 음원 스트리밍, 앱 등 온라인 정기결제 서비스 플랫폼에서 많이 발생한다. 2020년부터 다크 넛지가 문제되면서 3년간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가 기사화되기도 했는데 모바일인증 서비스 가입 후 해지 복잡 등 ‘해지 방해’ 유형이 제일 많았고, 무료체험 후 알림 없이 결제하는 ‘자동결제’ 유형이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에는 소비자정책위원회가 ‘소비자 지향적 제도 개선 권고’를 의결하면서 무료체험 기간 후 유료로 전환하기에 앞서 알리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관련 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사례를 찾다 보니 일본의 온라인 게임업체가 이런 상술을 사용하자 영국 정부 차원에서 실태조사에 나섰고 그 결과 게임업체가 굴복, 구독 서비스를 계약할 때 자동 갱신을 기본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다크 넛지는 사업자 관점에서 엄청 매력적이다. 아이폰 사용자 15억명 가운데 필자 같은 경우가 1만명 중 1명이라고 하자. 그러면 다크 넛지에 당하는 소비자는 15만명. 이들이 1주일에 지출하는 돈은 9억여원이다. 앱 사업자 몫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큰돈을 번다. 반면 이 앱을 모아서 서비스하는 플랫폼, 애플로서는 1주일에 15만명씩 고객을 잃게 될 것이다. 특정 앱이 아니라 애플에서 제공하는 모든 앱에 대해 꺼리게 된다. 전적인 애플의 손해다.
이런 피해 사례가 많아지면 어떤 식으로든 개선될 것이다. 법 개정도 기대된다. 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플랫폼 사업자에 있다. 기본값으로 무료 체험 후 자동 결제를 못하게 하거나, 사용 지속 여부를 묻게 하면 된다. 이는 곧 플랫폼 사업자를 위한 일이다. 필자는 애플 서비스센터에 전화해 7건 중 4건을 환불받았다. 결국 1만9500원은 갈취당했다.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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