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尹정부 출구 찾을까

문동성,이상헌 2022. 11. 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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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정부 성적 가른 ‘역대 대형 재난사고’
사진=이한결 기자


156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는 단일 사고 인명 피해로는 2014년 세월호 참사(304명 사망) 이후 최대 규모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태원 참사 이후 불어닥칠 정치적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형 인명 사고는 정부·여당에 당장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지만, 정권이 얼마나 기민하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성적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영삼정부 땐 ‘사고 공화국’ 오명 얻기도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대형 재난 사고는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타격을 줬다”며 “실제 지지율이 뚝 떨어질뿐더러 정권의 큰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최 원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대형 사고가 줄을 이었던 김영삼정부 시기를 들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취임 직후부터 대형 참사와 맞닥뜨렸다. 1993년 3월 28일 부산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78명 사망·198명 부상)를 시작으로 그해 10월 10일 서해훼리호 침몰(292명 사망·70명 부상),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32명 사망·17명 부상), 1995년 4월 28일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101명 사망·202명 부상), 그해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502명 사망·937명 부상) 등 대형 인명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붙었고,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했다. 큰 사고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은 우연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잇단 악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 전 대통령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 수습 과정에서 “(성수대교 붕괴는 마치) 부실기업을 인수받은 것과 같다”면서 사고가 현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비판을 받았다. 결국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김영삼정부 중간 평가 성격이 짙었던 1995년 6월 제1회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과 자민련이 각각 4곳씩 가져갔고, 민자당은 5곳에서만 이겼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외과 교수는 “대형 참사는 대통령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수습과 대응에 주의하라는 얘기는 그간 정치학자들이 많이 해 왔다”며 “김영삼정부 때처럼 부적절한 대응이 이뤄지면 지지율에 더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태원 참사 국면도 대통령과 정부·여당 입장에서 보면 좋은 상황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빠른 수습과 올바른 대응이 중요

전문가들은 대형 참사 발생 이후 성난 민심을 어떻게 다독이느냐에 따라 정국의 흐름이 출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박근혜정부의 세월호 참사 대응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2년차인 2014년 4월 16일 발생했다. 사고 직후 당국의 구조 실패와 수습 과정의 난맥상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면서 대통령 지지율은 급락했다.

박 전 대통령은 민심 이반이 심화하자 참사 한 달 후인 5월 19일 뒤늦게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지방선거를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사고 희생자들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박근혜 눈물 효과’로 보수 진영이 결집했다.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은 광역단체장 8곳, 새정치민주연합은 9곳에서 승리했다.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경기·인천 두 곳을 가져가면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진 7월 30일 재보궐 선거에선 새누리당이 국회의원 선거구 15곳 중 11곳을 가져가는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후속 조치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정부·여당은 갈등을 빚었다. 제대로 된 대응과 진상 규명,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부는 ‘세월호 7시간 의혹’ 등 사건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이는 2016년 총선과 탄핵 정국까지 두고두고 박 전 대통령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중대한 모멘텀 맞은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하루 만인 지난달 30일 용산구를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하고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했다. 아울러 대국민 담화를 통해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는 한편,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를 국정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두고 조 교수는 “적어도 대통령이 발 빠르게 사고 당일과 다음 날 새벽에 대처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 인력 배치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은 상당한 역풍을 불렀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이 장관 발언이 윤 대통령이 신속하게 대응하려던 모습을 완전히 빛바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경찰 도움을 요청하는 112 신고가 빗발쳤지만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난 1일 녹취록을 통해 드러나면서 ‘정부가 충분히 사태를 막을 수 있었는데 못 막았다’는 책임론이 부각됐다. 같은 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외신 기자회견에서 농담성 발언을 한 것까지 더해져 정치권의 ‘정쟁 자제’ 기조는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강공 모드로 전환해 이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 책임자들의 파면을 요구했다. 국가애도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추모 정국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최 원장은 “윤 대통령은 지금 중대한 모멘텀을 맞이하고 있다”며 “몸으로 뛰면서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사고를 잘 수습해 나가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외과 교수는 “발 빠르게 사고 수습과 진상 규명을 하고 국민의 아픔을 보듬어줄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동성 이상헌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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