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암환자 보는 한의사…"남은 삶 존엄한 여정을 함께한다" [김은혜의 살아내다]

김은혜 2022. 11. 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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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 따고 대학병원에서 암 환자를 본다. 나는, 한의사다. 안다. 평범한 사람들은 물론 암 환자조차 생소하게 여긴다는 걸. 그래서 지난 7년 동안 '암'과 '한의사'라는 간극을 채우려고 노력해왔다.

여전히 만나는 사람마다 마치 무언가 잘못됐다는 듯 되묻는다. "암 환자를 본다고요? 그런데 한의사라고요? " 때론 나 역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못 한다. 나 혼자서 한의사의 영역만으로는 암 환자를 볼 수 없다는 한계, 그럼에도누군가는 내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확신이 있기에 지금도 이 자리를 지키며 암 환자를 마주한다.

한의대를 졸업하고도, 편한 보통의 한의사 대신 죽음을 목전에 둔 암 환자 보는 한의사가 된 건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어릴 때부터 수많은 암 환자를 지켜봤다. 아버지는 늘 "1000명 중에 999명은 필요 없다고 말해도, 살려달라는 나머지 단 1명의 환자의 부탁을 들어주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지금, 나는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를 찾아왔던 암 환자 대부분 이런 일을 털어놓곤 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배가 콕콕 쑤시면서 아팠다고. ‘어제 술을 먹어서 그런가, 점심을 과하게 먹었나...’하는 걱정이 들면서도 이 정도 아픈 거야 자주 있던 일이고, 어차피 직장 빠지고 병원 갈 여유는 없으니 소화제 하나 입에 털어놓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화제를 먹어도 배 아픈 게 가시지 않아 결국 몇 개월이나 지나 휴가를 내고 병원을 갔다고. 예약 대기가 많아 몇 주나 아픈 배를 부여잡고 버티다 겨우 검사를 받았는데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받아들었다고. "췌장암이다, 간에 전이도 있다, 항암치료를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집에 혼자 남겨져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검색했더니 ‘전이 있는 췌장암 환자가 항암치료를 받으면 평균 1년으로 본다’고 적혀있다. 누군가의 글에 ‘항암치료를 하면서 응급실에 수시로 실려 가고 괴로웠지만 그래도 견뎠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글에는 정반대의 얘기도 있다. 포기할 수 없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항암치료를 시작한다.

그리고 1년 뒤, 환자는 몇 줄의 짧은 의사 소견이 적힌 의무기록지를 품에 안고 나를 찾아와 말한다. “길어야 앞으로 3개월이라는데 가만히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릴 수는 없어서 왔어요.”
건네받은 의무기록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시도 가능한 항암치료 없음, 호스피스 완화 기관 권유, 더 이상의 병원 방문은 의미 없음을 설명함, 기대여명 3개월….

덴마크 화가 카를 블로흐(1834~90) 작품 중

보통 이러한 길을 거쳐 암 환자는 한의사인 나를 찾아온다. 물론 완치를 앞두고 온 환자도, 암 치료를 무던히 받는 중에 온 환자도 있다. 어떤 상황에 놓였든 제대로 된 치료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유독 마음이 가는 건 어느 정도 희망을 잃고 온 환자들이었다. 큰 기대는 없지만 간절한 발걸음을 한 환자를 정말 돕고 싶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의료적 처치는 별로 없다. 대신 잔인하지만 나눠야 하는 죽음과 관련한 대화를 환자·보호자와 나누고 또 나눴다. 그리고 말미엔 항상 이런 다짐을 했다. “적어도 신체적 고통으로 인해 남은 삶의 존엄한 여정이 괴롭게 느껴지는 일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몇십 년의 지나온 세월보다 앞으로의 3개월이 환자가 눈 감는 순간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수없이 지켜봐 왔기에 조심스럽게 전한 다짐이었다. 죽음은 그저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는 끝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남은 자들이 일상에 복귀하여 잘 살아내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걸 난 아버지를 통해 좀 일찍 깨달았다. 이런 경험이 내 환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돕고자 시작한 일이 거꾸로 나를 돕는다는 생각을 한다. 환자복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게 그저 견뎌야 하는 괴로운 일과가 아니라 어디서도 얻기 어려운 가르침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다들 ‘왜 하필 내가’라는 절망감과 ‘얼마나 살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호소하는데, 그때마다 이들의 인생이 통째로 내 삶을 흔들어 놓는다.

내가 들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기 전에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다른 삶은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란다. 내가 그랬듯이.

※한의 의료기관에서 시행하는 모든 암 관련 표준치료는 의사의 처방 및 지시 하에 수행됩니다.

김은혜 경희대 산학협력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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