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하고 죄송…책임은 저와 정부" 첫 공개발언 속 尹의 고민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영가 추모 위령법회’ 추도사에서 이같이 밝히며 “슬픔과 아픔이 깊은 만큼 책임 있게 사고를 수습하고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큰 책임이 저와 정부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다시는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공개 석상서 “죄송하다” 말한 尹
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죄송하다”고 직접 말한 것은 처음이다. 참사 엿새 만에 사실상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이다. 본인이 공개적으로 직접 정부 책임론을 언급한 것도 처음이었다.
앞서 유가족을 만나 “국가가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해 대통령으로 죄송하다”고 말한 윤 대통령의 발언이 브리핑을 통해 소개되기는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입을 통해 직접 나온 것은 아니었다. 또 한덕수 총리 등이 정부의 무한 책임을 언급했고, 윤 대통령의 관련 언급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소개됐지만 본인이 공개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와 대통령실 참모들과 함께 위령법회에 참석했다.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추도사에서 “우리 기성세대들은 사회적 참사가 있을 때마다 재발 방지를 되뇌어왔지만, 그 약속을 또 지키지 못했다”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이날 “죄송하다” "큰 책임이 저와 정부에 있음" 등의 발언은 국가애도기간(10.30~11.5)의 종료를 앞두고 깊어지는 윤 대통령의 고심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총체적인 부실 대응이 드러나며 윤석열 정부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서다. 이날 오전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 조문에서도 이런 고민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었다. 닷새 연속 분향소를 찾은 윤 대통령 곁에 자리를 지켜왔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없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재난 안전 주무부처’의 장이란 이유로 이 장관을 곁에 뒀는데, 이날만큼은 달랐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 장관에 대한 책임론이 부는 상황에서 “측근 감싸기”란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같은 시각 이 장관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했다. 현장에 있던 한 참석자는 “이 장관의 얼굴이 잿빛이었다”고 했다.
尹, 애도 기간 뒤 대응에 고심
윤 대통령이 추모 행보를 이어가는 동안 대통령실은 이태원 참사를 둘러싸고 펼쳐질 ‘정치의 시간’의 대응책 마련에 분주했다. 야권에선 이미 이상민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경질까지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애도 기간 뒤 다시 한번 대국민 메시지를 내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분노와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국민의 상처를 위로할 메시지를 고민하고 있다”며 “도어스테핑이 아닌 다른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날 중대본 대응 체제를 행정안전부에서 국무조정실 중심으로 변경하고, 장관급인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직접 브리핑에 나서며 ‘전 부처 총력 대응’ 기조를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결국 ‘메시지’보다 ‘인사’가 향후 정국의 방향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윤 대통령의 충암고·서울대 법대 후배이자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상민 장관의 거취가 핵심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중진을 포함한 여러 의원들이 “이 장관을 정리해야 사태가 가라앉을 것”이란 의견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TK(대구·경북) 출신 의원들도 이상민 책임론을 얘기하는 건 핵심 지지층의 이탈도 심각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상민 거취가 핵심, 與내 반발 기류
대통령실 참모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도 최근 “이 장관을 둘러싼 여당 내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장의 인사 조치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는 말이 나온다. 국면 전환만을 위한 보여주기식 인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내부에선 사태 수습을 마친 뒤에 결단해도 늦지 않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야당의 요구에 떠밀려 이 장관을 곧바로 경질해선 안 되며, 만약 그럴 경우 윤 대통령이 야당의 주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 중에도 “경질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은 어렵다. 이 장관이 적당한 시점에 자진 사퇴해야 한다"(여당 재선 의원)는 견해가 많다.
이날 하루 만해도 참사 당일 국가 재난망이 작동하지 않았고, 경찰청장은 사고 당일 본가인 청주를 찾아 참사 발생을 모른 채 잠들어 뒤늦게 보고를 받았다는 악재들이 쏟아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치는 움직이는 생물이지 않나. 아직까진 확정된 것은 없는 상태”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의 영향으로 4일 발표된 갤럽조사(11월 1~3일 성인남녀 1001명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시 20%대로 내려앉았다.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29%, 부정 평가는 63%로 지난주 대비 긍·부정 평가가 각각 1%포인트씩 상승하고 하락했다.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지난주 5주 만에 30%대로 올라섰던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셈이다. 긍·부정평가 이유에서 모두 ‘이태원 참사’ 대응이 거론되며 참사를 둘러싸고 양 진영이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尹 지지도 다시 20%대로, 추가 하락 가능성
조사에선 여당의 텃밭인 대구·경북(긍정 45%·부정 47%)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70대(긍정 55%·부정 30%)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가 더 높았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예상보다 적게 떨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국가 애도 기간의 영향으로 보인다”며 “내주 조사에선 추가 하락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에겐 이태원 참사뿐 아니라 경제와 안보 위기가 한꺼번에 닥쳐오고 있다”며 “애도 기간 뒤 윤석열 정부의 리더십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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