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면 생기는 일
유명한 문구다. 문재인정부 당시 김수현 사회수석의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 등장한다.
노무현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고, 문재인정부에서 다시 중용돼 부동산 정책 총책임을 맡았던 인물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이 빚어진 대표적인 시기다. 책에는 “부동산 정치, 이제 엄연한 현실이자 또한 반길 일이다”라는 표현도 나온다.
김 수석이 이끄는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자와 가난한 자와의 갈라치기에 초점을 맞췄다. 양도세를 올리고, 재건축을 아예 막아버렸다. 재건축 아파트 보유자는 매도가 금지되는 재산권 제한까지 받았다. 강남, 부자, 재건축 등을 괴롭히는 데 집중됐다.
수요와 공급의 경제 원리를 무시하고 자신들 지지층에 어필하는 정치적 선택을 한 결과, 부동산 시장은 완전히 망가졌다.
지난해 국제 금융 시장에서 주목받은 국가는 터키였다. 연초 달러당 7리라였던 리라화 가치가 연말에는 18리라까지 급락했다.
물가 급등을 해결하기 위해 주요국이 금리를 올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반대로 금리 인하를 밀어붙였다. 장기 집권을 위해 경기 부양이 급급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의 무모한 시장 개입 결과는 고스란히 터키 국민의 고통이 됐다. 6개월 연속 20% 안팎 물가 상승률이 이어졌고, 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나자 국가 부도 위험이 2배 이상 높아졌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촉발한 레고랜드 사태도 맥락은 비슷하다.
레고랜드 조성 사업을 담당하는 강원증도개발공사가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이 강원도 지급보증을 바탕으로 2050억원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을 발행해 증권사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 지급보증 덕분에 최고 신용등급을 받았고, 이에 안심하고 돈을 빌려줬는데 강원도가 빚을 못 갚겠다고 내팽개친 것이다.
‘절대 망하지 않는 (혹은 않을 것 같은)’ 지방정부를 믿고 돈을 빌려준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김 지사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그의 이전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다.
“레고랜드와 알펜시아,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와 관련해 이번에 강원도를 바꾸지 않으면 이런 일들이 반복됩니다. 불의와 불공정을 강원도에서 뿌리 뽑겠습니다.” 6월 강원도지사 선거 때 김 지사의 기자회견 내용이다. 그에게 레고랜드는 전임자의 적폐였다. 마침 부도 처리해서 전임자의 실정을 부각시킬 호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가 겹친 복합 불황 위기는 안중에도 없었다. “정부도 믿을 수 없다”는 신뢰의 상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고려 없이 정치적 득실만 좇았다. 다행히 정부의 ‘50조원+α’ 유동성 공급 발표로 급한 불은 끈 듯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정치의 과도한 개입으로 경제를 망친 경우는 시대와 지역, 이념에 상관없이 나타난다. 어찌 보면 윤석열정부에는 좋은 예방 주사가 될 수 있다. 같은 진영의 지방정부에서 큰 홍역을 치른 게 다행일지 모른다.
[주간국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2호 (2022.11.02~2022.11.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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