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글로벌 공급망…한국이 서둘러야 할 것
금리 인상 우려에도 미·EU ‘자국 우선주의’ 속도
공급망 안정 힘쓰고 경제 안보 위해 총력 모아야
전세계가 인플레이션과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와중에도 주요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더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을 발효시킨 직후 유럽연합(EU)은 이와 유사한 ‘유럽 원자재법(RMA·Raw Materials Act)’ 초안을 내년 1월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리튬·희토류 등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 3연임이 확정되면서 미·중 갈등 수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등 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커질수록 희토류 수출 통제 등을 통한 중국의 자원 무기화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에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산업 공급망 관리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미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지난해 11월 요소수 품귀 사태를 거치면서 경제 안보를 크게 위협받은 경험이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복원력 있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정부는 경제·기술·안보가 연계된 글로벌 경쟁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대외 경제 안보 전략회의를 신설했다. 소재·부품·장비 특별법, 첨단산업육성 특별법, 자원안보법 등을 통해 경제 안보를 지키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지만, 보다 고도화되고 종합적인 대응 체계는 구축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공급망 해외 의존도 실태 등 기본적인 데이터도 공유되지 못한 상태에서 산업별 ‘중구난방’식 대응으로 위기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도 범정부 차원 공급망 관리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경제 안보를 위한 공급망 관리 기본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제와 안보는 정권 차원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과 관계된 사안이다. 이 문제를 정파적으로 접근하면서 이념적으로 갈라치기해서도 안 된다. 윤석열정부도 경제 안보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점검과 대책 마련을 위한 시스템 확립을 공약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행하는가다. 첫 단추는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경제 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 초안이 마련됐다. 이 법은 민간의 공급망 안정화 노력을 총괄·지원하는 추진 체계를 구축하고, ‘공급망 안정화 기금’을 신설해 분야별 특별법 중심 운영의 한계를 보완함으로써 지원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이 법이 확정되기 전에 공급망 안정화 지원 방안 실효성 등에 대한 추가 검토도 필요하다. 공급망 실태 파악을 위한 통관정보 공유와 함께 수입, 생산, 재고 등 민간 정보 수집이 기업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업계 의견을 더 수렴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이 법안 필요성에 대해 민·관은 물론 여야 정치권도 공감하기 때문에 법안 처리를 마냥 미뤄서는 안 된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서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것을 명심하고 경제 안보 강화를 위해 총력을 모아야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2호 (2022.11.02~2022.11.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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