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 회색 코뿔소? 블랙 스완? 화이트 스완?
‘회색 코뿔소’는 덩치가 커서 달려오면 땅이 흔들립니다. 뛰어오는 코뿔소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챌 수는 있죠. 그러다 드디어 코뿔소가 보입니다. 아~ 저 코뿔소에 받치면 뼈도 추리기 힘들겠구나~ 공포감이 머리를 댕~ 칩니다. 그런데 그건 생각일 뿐, 코뿔소가 너무 빨라 미처 피할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당탕탕탕~~~ 이후의 상황은 상상에 맡깁니다.
1697년 네덜란드 탐험가가 호주 남부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하면서 그때까지 모든 유럽인이 철석같이 믿고 있던 ‘백조는 흰색’이라는 통념이 깨집니다. ‘블랙 스완’은 그렇게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2007년 미국 투자 전문가 나심 탈레브는 저서 ‘블랙 스완’을 통해 증시 대폭락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죠. 이후 예측 불가능에, 무엇을 몰랐는지조차 몰랐던 현상을 통칭해 ‘블랙 스완’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블랙 스완’ 용어가 뜨니 흰색 백조가 배가 아팠나 봅니다. ‘화이트 스완’이 ‘나도 있어’ 하고 나왔죠.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위기임에도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아 발생하는 위험 상황을 ‘화이트 스완’이라 지칭합니다. ‘화이트 스완’ 용어를 세상에 내놓은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모든 경제위기가 양상은 조금씩 달라도 통화 정책의 완화, 금융 시스템에 대한 느슨한 감독, 과도한 차입에 의한 자산 가격 거품, 투자자들의 지나친 탐욕 등 공통적인 요인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며, 이에 따라 예방 역시 가능하다고 주장했죠.
자, 그럼 퀴즈입니다. 작금의 레고랜드발 금융위기는 ‘회색 코뿔소’일까요? ‘블랙 스완’일까요? 아니면 ‘화이트 스완’일까요? 이제 질문을 바꾸어보죠. 카카오 먹통 사태와 SPC 근로자 사망 사고는 ‘회색 코뿔소’일까요? ‘블랙 스완’일까요? ‘화이트 스완’일까요?
은행들은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부동산 PF로 심한 홍역을 치렀고 그래서 이후 타이트하게 관리했습니다. 은행이 안 가져가는 부동산 PF를 신났다고 증권사, 여전사, 저축은행 등이 들고 갔죠. ‘인플레이션 → 금리 인상 → 돈맥경화’ 흐름은 이미 지난해 중반부터 계속 되어온 경고입니다. 미리미리 준비했더라면 지금처럼 허겁지겁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카카오 사태도 10년 전 아주 유사한 경우가 있었고요. 심지어 SPC그룹 계열사 4곳에서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이번 근로자 사망을 불러온 ‘끼임’ 사고는 54건에 달했습니다. 뻔히 보이지만 도저히 피하지 못할 상황이었던 것도, 전혀 예측하지 못할 상황이었던 것도 아니란 거죠. 그저 모두 적절한 대책을 준비하지 않아 발생한 위험 상황일 뿐입니다.
하긴 회색 코뿔소든, 블랙 스완이든, 화이트 스완이든 ‘뭣이 중하겄습니까’. 작금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지를 찾아보는 게 매경이코노미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슈진단-레고랜드, 커버스토리-결국, 금융위기?, 스페셜리포트-카카오·SPC 사건으로 본 위기관리 ABC 등등을요.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2호 (2022.11.02~2022.11.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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