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韓전기차 차별 통상규범 위반, 3년 유예해야” 정부 美에 요구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공식 의견서를 4일(현지시간) 미 재무부에 보냈다. 한국 전기차를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는 건 “국제 통상 규범 위반”이라며 차별 조항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IRA는 미 의회를 통과해 지난 8월 16일 시행에 들어갔다. ‘인플레이션 감축’이란 이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미국 내 친환경 제조 산업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미 지역에서 만들어진 전기차에 대해서만 대당 최대 7500달러 세액공제(보조금)를 해주는 내용이 핵심이다. 한국산 전기차에 적용되던 세액공제 혜택이 사라지면서 국내 완성차ㆍ부품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미 재무부는 IRA 이행에 필요한 하위 규정을 제정 중이다. 지난달부터 각국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하위 규정에 대한 의견을 받고 있는데 4일이 ‘마감일’이다. 정부는 한국 전기차에 대한 차별이 완화돼야 한다는 의견서를 이날 제출하고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IRA는 지난 8월 이미 발효됐지만 시행령 격인 하위 규정은 내년 1월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라며 “세액공제 범위와 관련해 차별적이거나 불명확한 요소에 대한 사전 수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을 의견서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의견서에서 IRA 내 친환경차 세액공제 조항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 통상 규범에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현대자동차가 미국 조지아에 짓고 있는 전기차 공장이 완공되는 2025년까지 3년간 세액공제 요건을 유예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기업에 대해선 혜택을 줘야한다는 주장이다. 전체가 아닌 일부 공정을 북미 지역에서 진행해도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조립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배터리 부품ㆍ광물 요건도 문제다. 현행 IRA 조항에 따라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북미 지역에서 최종적으로 제조ㆍ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50% 이상(단계적으로 올라 2029년은 100%) 써야 한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도 40% 이상(2027년 80%)이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ㆍ가공한 것이어야 한다. 중국ㆍ인도ㆍ인도네시아 등 미국과 FTA를 맺지 않은 국가로부터 소재ㆍ광물을 주로 수입해 쓰는 한국 전기차 업계로선 치명적인 조항이다.
정부는 한국 전기차가 부품ㆍ광물 요건으로 인해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FTA 체결국 범위, 조달 비율 계산 등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미 재무부에 전달했다. 이같은 조건을 적용받지 않는 ‘산업용 친환경차’ 범위를 렌터카, 단기 리스 차량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또 IRA 규정으로 인해 미국 내에 전기차 제조 공장을 짓는 한국 기업이 6~30% 투자세액공제 혜택을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투자 범위, 지급 관련 조항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한국 정부의 제안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대란을 겪은 미국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자국 제조업체 중심으로 대대적 투자,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IRA와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IIJA)이 양대 축이다. 재정ㆍ세제 지원 규정을 바꿔 북미 제조 공급망을 잠식한 중국 등 해외 업체 등을 몰아내는 게 주목적인데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한국무역협회(KITA)는 지난달 발간한 ‘미국의 신(新) 공급망 재편 전략과 IRA 전기동력차 보조금 규정’ 보고서에서 “IRA 전기차 보조금 규정은 WTO 제소를 통해 그 위법성을 확인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적절한 형태의 이행을 촉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미국이 패소 판정을 받더라도) 이행을 기대하기가 어렵고 분쟁 해결에도 장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한 IRA에 한국이 제동을 걸만한 효과적 수단이 현재는 마땅히 없다는 의미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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