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괜찮은 학교'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김용만 기자]
지난 2일, 김해 금곡고에선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3박 4일간 전교생 모두가 팀별로 다녀온 여행학교(관련기사 : "수업보다 재밌어요" 수학여행 말고 '여행학교' 어때요 http://omn.kr/21cn4) 발표회가 그것입니다.
김해금곡고등학교는 민간위탁형 공립대안고등학교로서 11월 현재 전교생이 36명인 작은 학교입니다. 대안학교라 그런지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고 활동 후에는 꼭 전교생이 모인 장소에서 개인별 발표를 합니다. 당연히 발표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교생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김해금곡고의 소중한 교육활동입니다.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정리하여 발표하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못해도 괜찮습니다.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꼭 해야 합니다. 다수의 청중 앞에서 직접 자신이 발표함으로써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말하는 법을 익힐 수 있으며 타인의 발표를 잘 경청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 늦은 시간 같이 발표 준비를 하는 학생들 |
ⓒ 김용만 |
여행학교를 떠나기 전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강조 또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행학교는 단순히 놀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들의 귀한 세금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쓰이는 귀한 활동입니다. 놀이공원 가는 프로그램은 안 됩니다. 우리는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배우러 가는 것입니다.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로, 자기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러 가는 것입니다. 여행학교를 떠날 때 자신만의 주제를 정해서 가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탐구하고 오십시오. 발표를 기대합니다."
여행학교 당시에 아이들은 즐겁고 유쾌하게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다녀온 후, 아이들의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여행학교를 다녀온 후 일주일 정도의 발표 준비 시간이 . 김해금곡고는 기숙 학교라 학생들은 모든 일과가 끝난 뒤,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학교 구석구석에서, 기숙사 구석구석에서 팀별로 모여 의논하고 친구들과 상의하며 발표 준비를 했습니다. 발표 자료를 완성한 친구는 친구, 선배들 앞에서 예비 발표를 하며 시간 계산까지 했습니다.
학교에서 요구한 발표 조건은 간단했습니다. 첫째, 일정을 자세히 소개하지 말 것(팀별 일정이 같으니, 개인의 이야기를 주로 다룰 것), 둘째, 자신의 진로와 연관지어 발표할 것. 셋째, 최소 5분은 채울 것(10분이 되어도 됨, 하지만 발표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경우 경고 종을 침). 넷째, 발표 형식은 자유임.
학생들은 3박 4일의 시간을 5분여로 압축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그런 학생들을 지켜봤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은 관찰이었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조용히 응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발표날이 되었고 오전 10시, 1학년부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1학년 첫 번째로 발표한 친구는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2, 3학년들과 모든 선생님, 학부모님들께서 계신 자리에서 첫 번째 발표를 하려니 당연히 떨렸을 겁니다. 1학년 담임인 저도 떨렸지만, 응원하는 마음으로 발표를 지켜봤습니다.
▲ 여행학교 발표회 |
ⓒ 김용만 |
"수경이(가명)는 평소 조용한 학생이었습니다. 해서 여행학교 준비를 할 때 걱정도 약간 했었습니다. 저의 걱정은 말 그대로 걱정이었습니다. 수경이는 검색의 달인이었으며 사진 찍는 것을 임무로 삼았는데 발표자료에 제시된 사진들은 모두 수경이가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비슷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수경이는 구도, 배치, 빛 등을 고려하며 찍었습니다. 이번 여행학교를 통해 수경이의 다른 모습을 봐서 감동이었습니다. 수경이, 정말 수고했습니다."
▲ 학생 발표 후 격려해주시는 선생님들 |
ⓒ 김용만 |
3학년 한 학생은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 나의 진로는 농부 |
ⓒ 김용만 |
오전 10시에 시작된 발표는 오후 4시 30분이 되어서 끝났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쉬는 시간은 오직 점심시간 뿐이었습니다. 즉 쉬는 시간 없이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간간이 화장실 간 사람들은 있었지만 대부분 자리에 앉아 학생들의 발표를 경청했습니다.
부모님들도 많이 오셔서 본인의 자녀발표 외에도 다른 친구, 선배, 후배들의 발표를 들으셨습니다. 저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부모님들의 표정에서 흐뭇함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발표가 끝난 뒤 선생님들이 모여 평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1학년들의 발표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1학기엔 미숙하다고 느꼈는데 그 사이 엄청 성장한 것 같아요."
"역시, 2학년, 3학년들은 관록(?)이 느껴졌어요. 군더더기 없이 자신의 경험,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한 것을 보며 대견했어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님들께서 와 주셔서 감사했어요. 부모님들께서 어떤 것을 느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학교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심에 고마웠어요."
"선생님들 모두 정말 수고많으셨어요. 말이 학생들을 지켜보는 거지 얼마나 애를 많이 쓰셨는지 느껴졌어요. 우리 팀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발표를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각 팀들이 각자의 색깔로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여행학교는 내년에 더 잘 준비하면 좋겠어요."
▲ 여행학교 발표자료를 만드는 학생 |
ⓒ 김용만 |
대안학교는 노는 곳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유로운 곳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께 김해금곡고등학교 재학생들에게 물어보라고 권해드립니다. 김해금곡고 학생들은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과제도 많고 발표준비도 해야 하고, 해야 할 공부도 많고 해낼 것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합니다. 솔직히 외부에서는 김해금곡고를 좋게 보시는 것 같으나 다니는 학생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허나 신기한 것은 아이들은 불만이 많으면서도 그것들을 해냅니다. 그리고 다 하고 난 뒤의 상쾌함과 아쉬움을 배웁니다. 그만큼 본인도 모르는 새 견디며 자랍니다.
저는 올해 여행학교가 처음이었습니다. 어떤 학교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이 오롯이 준비, 진행하며 발표하는 교육과정은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즐기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 끝이 새로운 배움의 시작이 되는 교육과정이 멋지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분명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힘들고 실패한 경험들이 쌓여 자신의 이야기가 되고 내면의 힘이 되며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나간다는 것을. 자신을 믿고, 학교 선생님들을 믿고, 자신을 지지해주시는 부모님들을 믿으면 학생들은 분명, 건강히 자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학교의 남은 행사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소소한 날 발표, 3학년 논문 발표, 축제, 1기 졸업식입니다. 2022년, 두 달이 남은 11월달이지만 학생들은 마음 놓고 쉬지 못합니다. 일반고등학교에 비해 교과서 수업시간이 적을 뿐이지 그 외의 활동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머릿속의 지식보다 경험과 성찰을 통한 배움의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고 김해금곡고가 좋은 학교라고 말씀드리진 못합니다. 다만, 저희는 실패해도 괜찮은 학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학교가 되기 위해 애쓸 뿐입니다.
2022년 여행학교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발표하던 한 학생의 말이 떠오릅니다.
"올해 여행학교는 처음이라 저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내년이 되면 선배가 되고 여행학교의 취지를 충분히 알았기에 내년엔 더 준비 잘하여 더 멋진 여행학교를 갔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을 실패로 내모는 이상한 학교지만 그 실패를 통해 더 건강히 자랄 수 있다고 믿는 더 이상한 학교입니다. 아직 김해금곡고의 교육실험이 '성공이다, 실패다'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저는 이런 시도를 하는 학교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모든 학교의 교육목적이 더 좋은 진학, 더 좋은 취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삭막할 것 같습니다. 삶은 좋은 대학, 좋은 직업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김해금곡고등학교는 지금도 이상한 도전을 고민합니다. 저는 이상한 도전을 고민하는 우리학교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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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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