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5억 달러 조기상환 실패...해외 투자 심리 얼어붙나

조선혜 2022. 11. 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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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신인도 지표 6년 9개월 만 최악...13년 전 시장경색 재현 우려

[조선혜 기자]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객장에서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이날 뉴욕 증시는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유턴'을 기대하는 시장 심리가 강해지면서 큰 폭의 반등세를 보였다.
ⓒ 연합뉴스
 
흥국생명보험이 글로벌 시장에서 발행했던 채권을 조기상환하는 데 실패하면서 한국물 전체에 대한 해외 투자 심리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를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 3일(뉴욕 현지시각 기준) 6년 9개월 만에 최악 수준을 기록했다. 13년 전인 2009년 우리은행의 후순위채권 조기상환청구권(콜옵션) 미행사 이후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우려가 확산하는 모양새다. 

지난 2일 싱가포르거래소 공시 현황을 보면, 흥국생명은 오는 9일 예정돼 있던 5억 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청구권(콜옵션) 행사를 연기한다고 1일(현지시각) 밝혔다. 흥국생명은 "전 세계와 한국의 금융시장 여건이 극심히 불안해졌으며, 갑작스러운 금리 변화도 있었다"며 "조기상환을 실현할 수 없어졌다"고 했다. 국내 금융회사가 외화채권 조기상환에 실패한 사례는 지난 2009년 우리은행 후순위채 이후 처음이다.

신종자본증권은 주식과 채권의 중간적 성격을 가지는 혼성증권으로, 금융회사의 기본 자본으로 인정되는 증권이다. 주로 금융회사들이 자본 확충을 위해 발행해왔다. 30년으로 설정된 만기가 돌아오면 자동 연장된다는 점에서 영구채와 비슷하지만, 5년마다 새로 채권을 발행해 기존 채권을 조기상환한다는 차이가 있다. 명목상으론 발행사가 조기상환 여부를 임의로 결정할 수 있지만, 투자자 대부분은 최초 조기상환 도래 시점을 실질 만기로 인식한다. 

'5년'이 실질 만기로 통용되기 때문에, 투자자와의 신뢰 관계를 고려하면 기업 입장에선 조기상환하는 게 유리하다. 또 조기상환하지 않으면 발행기업이 정기적으로 채권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금리가 더 높아진다는 문제도 있다. 이번 조기상환 행사 연기로 흥국생명의 해당 신종자본증권 금리는 연 4.475%에서 6.7%대로 오르게 됐다. 

6년 9개월 만에 최악 기록한 대외신인도 지표...2009년 재현?
  
시장에선 흥국생명의 조기상환 실패를 위기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기상환 실패는 투자자와의 신뢰관계 악화와 금리 상승을 감수할 만큼 상환이 어려웠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추후 연쇄적으로 한국 채권에 대한 해외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한국 CDS 프리미엄은 75bp를 넘어서면서 6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4일 연합인포맥스 국가별 CDS 프리미엄에 따르면, 지난 3일(현지시간) 뉴욕시장에서 거래된 5년물 한국 CDS 프리미엄은 75.61bp로 전날보다 5.28bp 올랐다. 이는 지난 2016년 2월 12일 78.70bp 이후 6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CDS 프리미엄은 국제금융시장에서 대외신인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이 지표가 높을수록 채권을 발행한 국가나 기관의 신용위험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CDS 프리미엄 급등의 핵심 요인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 긴축에 따른 강달러 지속이 지목되지만, 국내 자금시장 경색 등 요인도 주요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이런 현상은 지난 2009년 2월 우리은행의 후순위채권 콜옵션 미행사 직후에도 나타났었다. NICE신용평가는 지난 2일 보고서에서 "2009년 금융시장이 경색됨에 따라 우리은행이 외화 후순위채에 대한 조기상환을 시행하지 않아 국제 금융시장의 CDS 프리미엄이 급격히 상승하는 등 자본시장 내 평판이 악화됐었다"며 "나아가 한국 채권에 대한 해외 투자 심리가 저하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또 2009년 11월 한국은행의 '우리나라의 국가신용위험지표에 관한 분석'을 보면, 지난 2008년 11월 중 큰 폭의 등락을 보였던 5년물 한국 CDS 프리미엄은 점차 하락하면서 2009년 1월 초에는 270bp대까지 낮아졌었다. 하지만 2월 중순 들어 다시 급등했고, 3월 초까지 400bp를 넘어서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었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자금 경색 심각해져...정부, 적극 개입해야"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에서 촉발된 채권시장 자금경색 상황을 타개하고자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의 모습.
ⓒ 연합뉴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당국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일 금융위원회는 '흥국생명 조기상환권 미행사 관련' 보도참고자료에서 "그간 금융위·기획재정부·금융감독원 등은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 행사와 관련한 일정·계획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지속해서 소통해왔다"며 "흥국생명의 수익성 등 경영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사"라고 밝혔다. 

이어 "흥국생명 자체의 채무불이행은 문제 되지 않는 상황이며 기관투자자들과 지속 소통 중"이라며 "금융위는 기재부, 금감원, 흥국생명과 소통하고 있으며, 조기상환권 미행사에 따른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흥국생명에 이어 지난 3일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 행사를 연기한 DB생명에 대해서도 같은 날 금융위는 "DB생명과 투자자 간 쌍방 사전협의를 통해 조기상환권 행사 기일 자체를 연기한 것으로 조기상환권을 미이행한 것이 아니다. DB생명의 신종자본증권은 해외 발행이 아닌 국내 발행 건으로서 해외 투자자와 관련이 없다"며 "해당 신종자본증권 투자자는 소수이며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아니므로 채권 유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없다"고 했다. 

전문가는 금융사들의 조기상환권 행사 연기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태도를 지적하면서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흥국생명 조기상환권 미행사는 채권시장이 굉장히 경색돼 있고,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레고랜드 사태 이후 계속해서 자금 경색 문제가 심각해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권시장 경색에 대해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가 지금 당장은 문제없다 판단할 수 있지만, 앞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의 부실은 얼마나 될지, 여기에 물려 있는 금융회사들에 위험이 어떻게 전이될지 살펴봐야 한다"며 "컨틴전시 플랜을 세우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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