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보다가 극장서 통화까지?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
[김성호 기자]
극장 안에서 휴대폰 불빛이 수시로 어른거렸다. 곁에 앉은 이들은 서로 대화를 멈추지 않았고 뒤에 앉은 누구는 아예 지인과 전화통화까지 했다. 깔깔깔 웃으며 이 장면 좀 보라고, 저 배우 표정이 어떻다고 대화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누구는 슬픈 장면이 끝나고 한참이 되었는데도 소리 내어 울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풍경이 내게 꽤나 괜찮은 기억으로 남았던 건 흥미로운 일이다.
통속적인 작품에 흔히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다. 쉽게 웃기고 쉽게 울리려 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작품이 되지는 않느냐는 비판이다. 이런 영화들엔 최루성 멜로니, 감상적 신파니, 애국심에 호소하는 국뽕영화란 평가가 따라오고는 한다. 우연에 기댄 억지스런 전개나 눈물을 쥐어짜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보게 될 때면 이러한 비판에도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포스터. |
ⓒ 롯데엔터테인먼트 |
2년의 공백 뒤 찾아온 <인생은 아름다워>
2020년 촬영했으나 무려 2년의 기간을 갖고 개봉한 <인생은 아름다워>도 감정에 호소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영화와 관련한 평론이며 리뷰들을 읽다보면 영화의 구성이며 흐름에 비판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란 걸 알 수 있다. 이유는 대동소이한데, 시한부와 이별이란 소재부터 가정주부에게 주어진 짐을 표현하는 방식, 남편과 아내의 관계, 엄마와 자식들의 관계 등의 묘사가 지나치게 전형적이란 점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근거가 없지 않다.
영화는 평범한 어느 가족에게 큰 변화가 닥치며 시작된다. 무뚝뚝한 남편 진봉(류승룡 분)과 아들딸 두 자녀를 둔 가정주부 세연(염정아 분)은 영화의 시작부터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는다. 폐암 말기, 남은 시간이 단 두 달 뿐이란 것이다. 기적이 아니라면 살 수 없는 그녀는 그간 마음에만 묻어뒀던 일을 실행하기로 결심한다. 그건 다름 아닌 버킷리스트, 그중에서도 고교시절 첫사랑을 찾아가겠단 계획이 남편을 당혹하게 한다.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좌충우돌 영화감상, 그래도 '아름답다'
죽음을 앞두고 버킷리스트를 이행한다는 설정이나 옛 사랑을 찾아가는 설정 등은 이미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적지 않게 쓰인 것이기에 <인생은 아름다워>를 참신하다 말하기는 쉽지 않다. 시한부 설정부터 여행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전개, 겉으론 무뚝뚝하지만 속정은 깊은 남편 캐릭터에 더하여 예상을 깨지 않는 결말에 이르는 다분히 전형적 장치들도 영화를 식상하게 하는 요소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나는 이 영화를 지난달 서울 성북구 아리랑시네센터에서 보았다. 성북구 노동권익센터가 진행하는 문화복지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복지 차원의 무료상영인 만큼 지역주민, 그 중에서도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40대 이상의 여성들이 압도적 참여를 보였다. 300여석에 이르는 좌석 중 넉넉잡아도 8할 이상이 40대부터 70대 사이 여성들인 듯했다.
감상은 만만찮았다. 입장 직후 여기저기서 잡담이 끊이지가 않아 영화가 시작할 즈음엔 앞뒤 앉은 이들의 최근 관심사를 속속들이 알 정도가 되었다. 왼편에 나란히 앉은 아주머니 네 분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로운 대목마다 감상을 적극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 |
ⓒ 롯데엔터테인먼트 |
혼잡한 극장서 떠올린 한 장면
영화가 한참 상영되는 즈음에는 반대편에서 실랑이가 인다. 늦게 들어온 이는 자리가 제 것이라 하고 먼저 앉은 이는 그런 게 어디에 있느냐고 맞받는다. 그러다 자리표가 있는 게 확인되자 먼저 있던 이가 자리를 옮긴다. 그러며 한 마디를 붙인다. "그러니까 일찍 좀 다니지 참". 급기야는 영화관 안에 전화벨이 울린다. 화급하게 전화기를 끌 줄 알았다면 오산, 그녀는 아예 전화기를 꺼내어 소리 내 통화를 한다. 여기는 극장이고 어떤 영화를 보고 있다고, 한참 동안을 끊을 줄을 모른다.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이 뮤지컬 영화를 누군가 일어서 힘껏 따라 부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되고 만다.
모두가 하도 당당하여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내가 더 이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시네마 천국> 속 어느 장면이다. 영화 안엔 팝콘이 날아다니고 모두가 소리치고 웃고 떠들고 대화를 한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창녀와 신사가 함께 즐기며 영화를 본다. 엄숙함은 찾아볼 수 없는, 잔칫날에 가까운 극장 풍경은 도리어 정감 가는 무엇처럼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 장면 하나 떠오르니 오늘의 극장 속 소동들도 밉지가 않다. 그 모두가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어떤 관점에선 그런 태도들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런 시대가 있었고 여적 그 시대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으므로.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가 아는 것이 옳다고 확정적으로 믿는다. 또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절대적 옳음처럼 여긴다. 그러나 문화며 인생은 수학과는 달라서 자주 상대적이고 때로 그보다 더 상대적이다. 그러니 키워야 할 것은 내가 아는 옳음이 옳다는 확신이 아니다. 지금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나와 다를 뿐이지는 않은가 돌아볼 수 있는 여유, 또 무엇에든 부닥쳐 이해해보려는 의지가 아닌가 싶다.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 |
ⓒ 롯데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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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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