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검사 제출 항소이유 일부 판단 누락은 위법"… 2심 파기환송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검사가 적법하게 제출한 항소이유서에 기재된 항소이유 일부에 대한 판단을 누락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검사가 피고인의 약사 면허 대여 사실을 주장하면서 사기 방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방조 혐의 무죄 부분을 다퉜다면, 면허 대여에 따른 약사법위반 혐의 무죄 부분은 당연히 다투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최근 약사 A씨의 약사법위반, 사기 방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방조 등 혐의 사건 상고심에서 사기 방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방조 혐의 유죄를 인정,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항소심의 심판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고 밝혔다.
약사 A씨는 남편이 원장으로 있는 안과와 같은 건물에 있는 약국에 봉직약사(페이약사)로 등록돼 있었지만 실제 근무는 하지 않으면서 매달 일정한 돈을 지급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해당 약국을 운영하던 B씨는 2015년 2월 4일부터 2017년 8월 17일까지 A씨가 마치 약국의 봉직약사인 것처럼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속여 총 59회에 걸쳐 9400만원의 요양급여를 편취한 혐의(사기, 약사법위반, 국민건강보험법위반)로 기소됐는데, A씨는 약사 면허를 대여한 혐의(약사법위반)와 B씨의 범행을 방조한 혐의(사기 방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방조)로 기소된 것.
보건복지부 고시 '건강보험 행위 급여·비급여 목록 및 급여 상대가치점수'에 따르면 약국은 약사 1인당 1일 조제건수를 기준으로 75건 이하는 100%, 75건을 초과해 100건까지는 90% 등으로 조제료를 차등 지급받게 돼 있다.
검사는 B씨가 이처럼 약사 1명당 받을 수 있는 처방전이 정해져 있고, 그 이상이 되면 보험급여비용이 삭감되기 때문에 A씨를 상근약사로 등록한 뒤 A씨의 조제건수를 허위로 보고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높은 비율의 차등수가를 지급받기 위해 A씨가 약국에서 실제 근무하는 것처럼 이름만 올리고 매달 50만원씩 대가를 지급했고, A씨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범행에 가담했다고 보고 함께 기소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B씨의 사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 B씨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의 약사법위반 혐의와 A씨의 모든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먼저 B씨의 약사법위반 혐의의 경우 약사 면허를 대여받는 자를 처벌하는 약사법 제93조 1항 1의2 조항이 신설돼 시행되기 전에 저지른 범죄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또 검사가 약사 면허를 대여해줬다고 본 A씨의 경우 ▲B씨가 약국을 인수하기 전부터 해당 약국에 고용돼 조제 및 복약지도를 해왔던 점 ▲B씨가 C씨로부터 약국을 인수하면서 근로관계도 그대로 인수돼 종전처럼 약사로서 근무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B씨로부터 봉직약사로 등록하면 월 5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점 ▲약국에서 근무했던 직원 D씨는 B씨가 실제로 약사로서 근무한 사실이 있고, 근무 일수가 많지는 않지만 일이 있을 때 약사 업무를 보게 하기 위해 연락을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A씨가 B씨에게 약사 면허를 대여했거나, B씨의 범행을 알고도 방조했다고 보기에는 검사의 범죄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은 B씨에게 선고된 형이 너무 가볍다는 검사의 항소이유와 A씨에 대한 무죄 선고가 위법하다는 검사의 항소이유를 모두 받아들였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3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B씨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B씨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A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해 "피고인은 피고인 B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피고인을 이 사건 약국의 상근약사로 등록한 후 피고인의 조제건수를 허위로 기재해 요양급여를 청구한 후 높은 비율의 차등수가를 지급받으려는 의사를 알면서도 자신을 이 사건 약국의 상근약사로 등록하게 함으로써 피고인 B의 사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범행을 용이하게 해 이를 방조하였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2심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는 ▲A씨가 2015년 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약 31개월 동안 총 3번 내지 7번 출근했으면서도 경찰 조사에서 "매월 5~6회 출근해 근무했다"고 허위 진술한 점 ▲B씨는 A씨가 정상적으로 근무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해당 기간 동안 매월 400만~460만원을 A씨에게 송금했는데, 이후 A씨로부터 다시 현금으로 돌려받았다는 금액이 A씨는 250만원, B씨는 350만원으로 차이가 있는 점 ▲이 사건 약국은 A씨의 남편이 원장으로 근무하는 안과와 같은 건물에 위치하고 있어 해당 안과에서 이뤄지는 처방 내용에 따라 약국 매출이 크게 영향을 받는 구조여서 A씨가 단순히 피용자의 지위에서 B씨의 요구에 따라 이 같은 돈 거래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이 근거가 됐다.
결국 재판부는 "A씨가 B씨로부터 매월 지급받은 돈 전부 또는 일부는 정상적인 급여라기보다는 A씨가 B씨로 하여금 불법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그에 따라 지급받은 경제적인 대가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1심과 달리 2심에서 A씨의 사기 방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방조 혐의 유죄가 인정됐지만 검사는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다.
A씨가 약사 면허를 대여한 약사법위반 혐의를 2심 재판부가 살피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이유였다.
앞서 2심 재판부는 검사의 항소범위를 A씨의 사기 방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방조 혐의 부분으로 한정하고 약사법위반 혐의 부분은 판단하지 않았다.
검사는 A씨에 대한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항소의 범위'란에 '전부'라고 기재했고, '항소이유'란에는 '피고인이 이 사건 약국에 약사로 허위 등록되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약사면허를 대여해 B씨의 사기 및 국민건강보험공단 범행을 방조했다는 점이 인정됨에도 무죄를 선고한 원심에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기재했다.
하지만 검사는 이후 제출한 항소이유서에서 A씨의 사기 방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방조 혐의에 대한 1심의 무죄 판단만을 인용하며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이유로 2심 재판부는 검사가 사기 방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방조 혐의 2개 범죄에 대한 부분으로 항소이유를 특정했기 때문에 약사법위반 혐의 무죄 부분까지 사실오인의 항소이유를 제출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
대법원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이 이중 위험에서 조속히 해방돼야 하며, 검사의 항소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데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검사가 항소장의 '항소의 이유'란에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등으로 기재했더라도 항소이유서 제출기간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 적법한 항소이유의 기재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또 검사가 일부 유죄, 일부 무죄가 선고된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하면서 항소장의 '항소의 범위'란에 '전부(양형부당 및 무죄 부분, 사실오인, 법리오해)'라고 기재했다고 하더라도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면서 무죄 부분에 대한 항소이유만 기재한 경우 유죄 부분에 대해서는 법정기간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종래 대법원의 입장에 비춰 검사가 A씨의 항소이유서에서 약사법위반 혐의 무죄 부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적법한 항소이유 제출이 없었던 것으로 취급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번 사안의 경우 검사가 항소이유서에 약사법위반 부분도 명시적으로 기재했을 뿐만 아니라 설사 항소이유서에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더라도 검사가 당연히 약사법위반 부분을 다투는 것으로 봐야 할 상황이라는 것.
재판부는 "검사가 항소이유서 제출기간 내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에는 '피고인의 출근 횟수, 급여의 액수 및 지급방식 등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B씨가 요양급여를 더 받기 위해 자신을 봉직약사로 등록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약사 면허를 대여하고 B씨의 사기 및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행위를 방조했음이 인정된다'는 취지로 항소이유가 기재돼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피고인의 변호인은 원심 제1회 공판기일 전 제출한 의견서에서, 약사법위반 부분에 관해서도 '피고인이 약사 면허를 대여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구체적인 주장을 했다"고 덧붙였다.
검사가 항소이유서에 약사 면허 대여 사실을 기재했고, 이미 2심 공판 과정에서 약사법위반 혐의에 대해 A씨 측이 무죄 주장을 하며 다퉜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사기 방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방조 부분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약국에서 실제로 근무하지 않았음에도 B씨로 하여금 피고인을 봉직약사로 허위로 등록하게 했다는 것인데, 이는 피고인이 약사 면허를 대여한 행위의 구체적인 사정으로서 논리적인 측면과 행위의 측면에서 모두 약사 면허를 대여한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A씨가 B씨의 사기 및 국민건강보험법 위반죄를 방조했다'는 검사의 기소 내용이나 항소이유에는 'A씨가 B씨에게 약사 면허를 대여했다'는 사실이 당연히 전제돼 있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검사는 항소장에서 1심의 피고인에 대한 무죄판결 전부를 항소 범위로 기재했고, 항소이유서에도 사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방조 행위뿐만 아니라 '약사 면허를 대여한 행위'가 유죄로 인정돼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기재한 다음, 항소이유서에서 제1심판결 무죄 판단의 공통된 주된 근거인 사실인정을 다투는 취지의 주장들을 구체적으로 하면서 사실오인을 항소이유로 하고 있는바, 검사가 전제사실인 약사 면허 대여 사실을 주장하며 사기방조 및 국민건강보험법위반 방조 부분을 다투면서도 약사법위반 부분만을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이례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검사는 항소장 및 항소이유서에 약사법위반 부분에 관한 항소이유를 적법하게 기재했다고 할 것이므로, 원심은 이 부분 검사의 항소이유에 관한 판단을 기재했어야 함에도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는바,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항소심의 심판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약사법위반 부분이 유죄라고 단정적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며, 원심이 아예 판단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므로 약사법위반 혐의의 유무죄 여부를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심리해 판단해 보라는 취지"라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결혼해도 물장사할거야?"…카페하는 여친에 비수꽂은 남친 어머니 - 아시아경제
- "37억 신혼집 해줬는데 불륜에 공금 유용"…트리플스타 전 부인 폭로 - 아시아경제
- 성유리 "억울하다" 했지만…남편 안성현, '코인상장뒷돈' 실형 위기 - 아시아경제
- 방시혁·민희진, 중국 쇼핑몰서 포착…"극적으로 화해한 줄" - 아시아경제
- "전우들 시체 밑에서 살았다"…유일한 생존 北 병사 추정 영상 확산 - 아시아경제
- 연봉 6000만원·주 4일 근무…파격 조건 제시한 '이 회사' - 아시아경제
- "가자, 중국인!"…이강인에 인종차별 PSG팬 '영구 강퇴' - 아시아경제
- "고3 제자와 외도안했다"는 아내…꽁초까지 주워 DNA 검사한 남편 - 아시아경제
- "너희 말대로 왔으니 돈 뽑아줘"…병원침대 누워 은행 간 노인 - 아시아경제
- "빗자루 탄 마녀 정말 하늘 난다"…역대급 핼러윈 분장에 감탄 연발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