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에 악플 단 당신, 혹시 이런 마음 때문인가요
[송주연 기자]
▲ 10월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 경찰통제선이 설치되어 일반인들의 접근이 통제되고 있다. |
ⓒ 권우성 |
일요일인 지난 달 30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날도 습관처럼 인스타그램 앱을 열었다. 눈에 들어온 첫 사진이 10월 29일 이태원의 밤을 담은 바로 그 모습이었다.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는 장면에 잠이 확 달아나면서 무언가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 들었다.
곧바로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들을 검색했다. 이렇게 많은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가 있다니.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보면 볼수록 짙은 슬픔과 분노, 불안이 감싸왔지만 나는 그날 종일 뉴스를 찾아보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한가닥 희망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다 이런 댓글들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그런 데를 왜 가고 그래?'
'할로윈 축제를 잘못 배워 가지고서는 쯧쯧.'
'밤 늦게 클럽 같은 데나 놀러 다니고 그러더니 안됐네.'
대규모 참사 때마다 나타나곤 하던 희생자를 비난하는 말들이 이번에도 등장하고 있었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그곳에 가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있었다. 그 사고는 거기 간 사람들의 일이라고 분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대규모 참사가 일어나거나 부당한 죽음을 목격할 때마다 희생자와 현장의 문제로 치부하고픈 마음이 드는 걸까. 상담심리사인 나는 이런 반응들이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을 피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국사회
가장 널리 통용되는 미국 심리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매뉴얼인 DSM-5에서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① 외상성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거나 ② 다른 사람에게 발생한 사람들을 직접 목격하는 경우 ③ 외상성 사건들이 가족, 친지, 친구에게서 발생한 것을 알게 될 경우(단, 그 사건이 폭력적이거나 갑작스럽게 발생할 때) ④ 외상성 사건들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세부적인 사항에 반복 노출될 경우
이 정의를 적용하면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그 상황을 목격한 시민들, 희생자들의 가족·친지·친구들은 각각 ①, ②, ③번에 정확하게 해당한다.
▲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올라온 트라우마 관련 질문들 |
ⓒ 네이버 화면 갈무리 |
실제로 포털 사이트와 SNS에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꾸 이태원 사건 영상이 떠올라 집중이 안돼요', '그 사건을 접한 이후 잠을 잘 못 자겠어요', '손이 덜덜 떨리고 토할 것 같아요' 등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다는 호소가 가득하다. 현장에 가지 않은 다수가 간접적으로 접한 영상과 소식만으로도 심리적 외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트라우마를 경험할 때 발생하는 대표적인 인지적 변화 중 하나가 '세상에 대한 믿음'이 깨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속한 사회가 안전하고 믿을만한 곳이라고 가정하며 살아간다. 이 믿음은 인간의 심리적 안정감에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지 사람이 많이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야외에서 죽을 수도 있음이 드러난 한국에서 '안전한 사회'라는 믿음을 유지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안전한 세상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건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는 곳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지각은 극심한 불안을 유발한다.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이 닥칠 때 가장 손쉬운 피난 방법은 불안을 회피하고 기존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한 그 일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곧 다음과 같은 판단으로 이어진다.
'이 세상은 안전한 곳인데,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잘못일 것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멜빈 러너는 이를 '공정한 세상 가설'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러너에 따르면, 사람들은 '세상은 공정하며 스스로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때문에 이런 가정을 손상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이 믿음을 유지할 방법을 찾는다. 부당한 피해자나 희생자를 대면했을 시 당사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게 대표적이다.
회피보다는 연대
▲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 |
ⓒ 권우성 |
그렇지만 불안한 마음을 피한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불안을 다스리는 많은 심리치료의 기법들은 불안한 감정을 수용하고 그 불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라고 말한다.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자극은 되도록 피하되, 내가 불안한 상태임을 인정하고 보살펴줄 수 있을 때 오히려 불안에 사로 잡히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참사를 접하지 않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기치 않은 죽음에 불안을 품고 살아간다. 실존주의 심리학자들은 죽음이 우리가 느끼는 모든 불안의 근원적 원인이라고 본다. 대규모의 갑작스런 죽음은 이런 '실존적 불안'을 자극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존주의 심리학자들은 분명히 말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직면할수록 불안을 다스리는 힘이 생긴다고 말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안을 피하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희생 당사자의 문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불안한 마음 상태를 직면하고 이게 나만의 경우가 아님을, 이 땅이 안전하다고 믿고 살아온 많은 이들이 함께 겪고 있는 감정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픈 마음들을 서로 돌보며 이 불안이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고 새롭게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연대할 때다.
다행인 건 돌봄과 연대를 실천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SNS와 포털 사이트에서는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사진이나 영상 유포를 자제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게시글을 올리지 말라'고 공지하고 있다.
정신건강의사회,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임상심리학회 등 각종 심리전문가 단체에서도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법과 연대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성명서들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한국심리학회에서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직간접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전화상담(1670-5724),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메타버스 상담, 마음의 안정을 위한 체험관(한국심리학회 메타버스)을 운영한다.
불안을 회피하려는 마음은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는 것을 막아서고 마음의 문을 걸어잠그게 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이런 마음이야말로 '안전한 세상에 대한 믿음'에 더욱 생채기를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불안을 인정하고 함께 나누고 보살피는 것만이 마음의 트라우마를 다스리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덧 :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회에서는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메타버스에서 마음안정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희망하시는 분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 참가신청 : 구글폼(http://forms.gle/v9rvY5f838kE83kz5)
- 행사장 주소 : ZEP.US/PLAY/8G1ZVN
▲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회의 마음안정화 프로그램 일정 |
ⓒ 한국심리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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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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