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배우려는 사람 느는데... 정작 한글은 푸대접"
[김슬옹 기자]
▲ 한글학회 근처의 주시경 동상 앞에 선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
ⓒ 최준화 |
1932년 서슬 퍼런 일제 강점기에 외솔 최현배 선생이 남긴 '한글이 목숨'이란 글귀처럼, 60년째 한결같이 한글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를 서울시 종로구 한글학회 옆에 있는 주시경 마당에서 만났다. 이 대표에게 최근 부쩍 늘고 있는 공공기관의 영어 남용문제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이대로 대표는 1962년 예산농고 입학이 한글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박정희, 김종필 군사정권이 해방 후 15년 동안 한글로 만들던 교과서를 일본처럼 한자혼용 정책을 추진해 "좋은 사과를 따려면 봄에 거름을 주고, 가지치기를 하고, 꽃따기를 해야 한다"라고 말을 할 때 거름주기는 施肥(시비), 가지치기는, 剪枝(전지), 꽃따기는 摘花(적화)라고 한자말로 가르쳤다고 한다. 이때 왜 쉬운 말을 어려운 말로 바꾸는지 의문을 품었는데 졸업 무렵 김윤경 한글학자의 '잘못된 국어정책'이란 글이 신문에 실려 편지를 주고받으며 격려를 받고 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인 한글운동, 국어운동을 했다고 한다.
역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국어운동대학생회(1967년)를 만들고 대학생 연합회를 조직해 정부에 한글전용을 하라고 건의한 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한글전용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게 됐다. 이밖에도 이 대표는 한글날 국경일과 공휴일 만들기, 서울시 한글마루지 사업, 국립한글박물관 건립 등, 굵직굵직한 한글 업적을 남겼다.
쉬운 말쓰기는 민주주의의 처음이자 끝
- 지난 10월 5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자격으로 우리말 으뜸 헤살꾼(훼방꾼)으로 영어 상용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부산시(박형준 시장과 하윤수 교육감)와 영어를 마구 쓰는 서울시(오세훈 시장), 국어기본법을 무시하는 국회방송국을 뽑았다. 이미 발표는 했지만, 이들 기관의 공공언어 사용이나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들은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하는 정책명이나 보도자료에 극히 일부만 알 수 있는 영어를 마구 섞어 써 문제다. 부산시는 광안대교를 다이아몬드 브릿지로, 달맞이길을 문텐로드로 바꾸는 등 광역 지자체 가운데 영어를 가장 많이 남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예 영어 상용도시를 만들려고 하고 있어 이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던 짓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어 더 심각하다.
서울시는 "서울일자리센터TV <JOB아라>"와 같은 잡탕말 알림글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국회방송도 "NA를 찾아주세요!"와 같은 국어기본법을 앞장서 파괴하고 있다. 쉬운 말쓰기는 민주주의의 처음이고 끝이다. 언어 민주주의가 되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 이런 잡탕말들은 언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말들이다."
- 언론 보도로 이런 사실이 많이 알려졌는데 이들 기관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영어 잡탕말로 모국어 파괴에 앞장서고 있는 부산시와 서울시 모두 아무 반응이 없다. 한글 단체들과 국민을 우습게 보는 태도다."
- 이 대표께서는 한자 섞어 쓰기에 맞서 오랜 세월 싸워왔고 많은 성과도 거뒀다. 이제는 영어 섞어 쓰기와 맞서 싸우고 계시는 데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직도 한자도 우리 글자라면서 한자를 써야 한다는 중국 문화 숭배자들과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자는 이들도 문제지만 그들과 싸움은 우리가 이겼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세상이 되었는데 요즘은 영어 마구 쓰기가 성행하니, 우리 글자가 없어 중국 한자를 쓰고 중국 문화를 섬기면서 뿌리내린 언어 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식민지 근성이 한자 섬기기에서 미국말 섬기기로 바뀐 셈이다."
- 그렇다면 영어 남용의 근본 문제는 무엇이고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언어 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뿌리내린 식민지 근성이 근본 문제이다. '알몸'이란 우리말보다 '나체'라는 한자말을 더 좋은 말로 생각하고, '누드'라는 말이 더 고상한 말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 우리 토박이말을 살릴 때 우리 겨레 얼이 살고 튼튼한 나라가 된다. 쉬운 우리말로 교육하고 말글살이를 할 때 한글 장점과 특징이 살고 우리 겨레와 나라가 더욱 빨리 일어나고 자주 문화가 꽃핀다. 제 겨레말보다 힘센 나라말을 더 섬기는 언어 사대주의와 식민지 근성을 버리는 정신개조 운동을 해야 한다."
정작 우리 말글이 나라 안에서 푸대접 받아서야
정신개조 운동이라는 것이 관념적인 느낌도 들고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다. 그것은 바로 언어 사대주의를 버리고 한글과 우리말의 자중감을 세종과 주시경이 강조한 그대로 바로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고 정부는 그런 운동을 하는 한글학회와 같은 한글운동 단체들을 지원하면 된다고 했다.
나라 밖에서는 우리말과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우리 자주문화인 한류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나라 안에서는 우리 말글이 푸대접을 받고 있으니 70을 훌쩍 넘겨 이제는 편히 쉬어야 하는데 쉬지도 못하고 있다는 이 대표의 표정은 청년 운동가와 같은 결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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