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영화 뷰] '이상적인 가족' 편견 뒤집은 신예 감독들의 집요한 관찰
회사나 단체에서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자랑하기 위해 내세우는 말이 있다. 바로 '가족 같은 관계"라는 문장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헌신도 마다하지 않는 가족이 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말일 테다. 하지만 모든 가정에 행복만 깃들어 있지는 않다. 최근 신예 이상문 감독과 김세인 감독은 보통의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을 뒤집는 작품들로 관객들과 만난다.
'고속도로 가족'은 인생은 놀이, 삶은 여행처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이 우연히 한 부부를 만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게 되는 이야기다. '어른들은 몰라요', '죽여주는 여자'의 조감독으로 경력을 쌓은 이상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텐트 치고, 사람들에게 "지갑을 잃어버렸다. 2만 원만 빌려달라"라고 구걸하는 가족을 보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들까. "참 불쌍하고 안됐다"라는 시선으로 보겠지만, 기우(정일우 분)의 가족은 만족스럽다. 사람들이 지폐를 더 꺼내도 마다한다. 이 가족에게는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점점 자라는 첫째 딸 은이는 왜 자신은 다른 아이들처럼 살 수 없을까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기우는 학교에 가고 싶다는 은이의 말을 가슴 아프지만 외면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가족은 휴게소에서 돈을 빌리려 마주친 여자 영선(라미란 분)을 만나면서 균열이 생긴다.
영선은 첫 번째 거짓말에는 속아넘어갔지만 다른 휴게소에서 만난 기우 가족을 본 후 아이들의 안전에 걱정돼 경찰에 신고한다. 그렇게 기우는 구치소에, 아내 지숙(김슬기 분)와 아이들은 영선의 집으로 향한다.
한 번도 안락한 공간에서 편하게 잠든 적 없는 지숙과 아이들은 영선과 함께 미래를 그리고 싶다. 영선 역시 아이를 잃은 아픔 때문에 지숙과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이상문 감독은 '고속도로 가족'을 통해 여러 가지 질문을 건넨다. 타인의 가족을 자신의 시각대로 불행하다고 판단할 자격은 누구에게 주어지는지, 영선이 기우 가족을 구원한 것인지, 오히려 해체를 시킨 것은 아닌지 등이다. 혹은 반대의 시점에서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아도 각자의 결핍을 서로의 온기로 채우며 또 하나의 가족의 형태를 제시할 수도 있다.
김세인 감독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가족 중 모녀의 관계를 지독하게 파고든다. 수경과 딸은 모녀 가정으로 성향이 너무 달라 사이가 좋지만은 않다. 수경은 외향적이고 지나칠 정도로 다혈질이며 딸 이정은 모든 일에 소극적이고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런 딸을 답답하게 여기고, 딸은 엄마의 성격이 부담스럽고 날카로운 표현에 상처를 입는다.
여느 날과 같이 마찰이 있던 보통의 날, 수경이 운전한 차가 이정을 덮친다. 수경은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하지만 딸 이정은 엄마가 고의로 낸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사건 이후로 모녀의 갈등은 더욱 본격화 된다.
이정은 언제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딱 한 번의 사과를 바란다. 수경은 딸을 키우기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고 고의로 사고를 냈다고 주장하는 딸이 서운하기만 하다. 이들은 가장 가까운 관계지만, 가깝기에 생채기를 더욱 깊고 날카롭게 새길 수 있다.
김세인 감독은 "속옷을 같이 입는 행위가 두 인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설정이라 생각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속옷 사이즈는 같지만 사랑과 이해를 요구하는 마음의 사이즈는 다른 모녀의 관계가 섬세하게 담겼다. 김 감독은 일방적인 모성애, 건강한 모녀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모녀 관계는 복잡한 감정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고속도로 가족'은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26회 부산국제영화제 5관왕(뉴커런츠상, 넷팩상, KB 뉴커런츠 관객상, 왓챠상, 올해의 배우상), 47회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 - 배우부문, 10회 무주산골영화제 대상, 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발견 부문 - 대상을 수상하며 국내 주요 영화제 8관왕에 등극했으며, 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24회 우디네극동영화제 경쟁 섹션에 초대되는 등 개봉 전부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두 감독 모두 첫 장편 데뷔작에서 남다른 내러티브로 가족의 퍼즐을 해체하고 다시 끼워 맞추는 등 탁월한 연출력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차기작을 기대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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