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태원 참사 키운 ‘불법증축’… 다른 골목길도 위험하다

류태민 2022. 11. 4.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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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부스·테라스 등 무단증축으로 거리 좁아져
참사 현장 외에도 곳곳서 위반건축물이 안전 위협
적발해도 일시 철거 후 재설치… 단속 어려워
핼러윈 데이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에 불법증축된 주점 테라스 모습(사진=류태민 기자)

[아시아경제 류태민 기자, 황서율 기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 일대 건물 대부분이 무단 증축 등 위반건축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더 비좁아진 골목길에 병목현상이 생기면서 피해가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사고 현장뿐만 아니라 이태원 일대 곳곳에서도 대규모 인파가 통행하기 어려운 골목이 많아 여전히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해밀톤 호텔 옆 골목길을 방문해보니 일대에는 다수의 위반건축물이 눈에 띄었다. 일대 14개 건물의 건축물대장을 확인해보니 이 중 10개 건물이 불법으로 무단증축한 사실이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7곳은 여전히 증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예 신고조차 되지 않은 ‘무허가 건축물’도 1곳 있었다.

특히 사고 현장 한복판에 위치한 식당이나 술집들은 핼러윈 당시 설치했던 임시 부스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 부스는 영업 공간을 넓혀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상가들의 ‘꼼수’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통행하는 골목길이 더 비좁아지면서 참사 당시 병목현상을 가속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래 세계음식문화거리는 폭이 5m가 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들 불법 테라스 등으로 폭이 3~4m가량으로 좁아졌던 것으로 분석됐다.

참사가 난 골목 하단부에 있는 10m가량의 분홍 철제 가벽도 통행을 어렵게 만든 원인으로 지목된다. 해밀톤 호텔 실외기 주변을 감싸기 위해 만들어진 이 가벽으로 인해 최대 5m 폭의 골목길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3.2m까지 좁아졌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 골목 전경. 곳곳에 에어컨 실외기가 도로변을 차지해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사진=류태민 기자)

다른 골목들도 위반 건축물 ‘한가득’… 여전히 곳곳에 위험 도사려

사고가 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서 몇 걸음도 채 걷지 않은 곳에는 그보다 협소한 골목들이 눈에 띄었다. 가장 가까운 골목은 경사가 가파르고 골목길의 폭이 좁아 참사 현장을 연상케 했다. 건물들 앞에는 테라스 격으로 만들어진 나무판자가 있어 통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가게의 물건을 이곳 외부에 내놓으면서 보행자들이 원활하게 돌아다녀야 할 도로 폭을 더욱 좁게 만든 것이다.

바로 옆 골목은 상태가 더욱 심각했다. 해당 골목은 기존에 3m가 넘는 폭으로 설계됐지만, 불법 증축된 건물과 에어컨 실외기가 도로를 가로막고 있어 사람이 설 수 있는 공간은 2.5m에 불과했다. 성인 여성이 팔을 양옆으로 펼치면 약간의 공간밖에 남지 않을 정도였다. 그마저도 에어컨 실외기 설비가 칼날처럼 튀어나와 있어 언제 상처를 입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전경. 사고지역과 달리 보행을 가로막는 위반건축물이 없어 시민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다. (사진=류태민 기자)
여유공간 가득한 ‘위반건축물 청정골목’… 사고 현장과 정반대

반면 불법증축 건축물이나 적치물이 없어 비교적 공간이 넓은 골목의 모습도 보였다. 사고가 난 해밀톤 호텔 동측 T자 골목 일대에는 10개 건물 중 1곳만이 위반건축물이었다. 임시 테라스 등이 통행을 가로막고 있던 사고 현장과 달리 도로변에 아무런 방해물이 없어 시민들이 편하게 이곳을 오가는 모습이었다. 같은 세계음식문화거리인 이곳의 도로 폭은 5~6m씩 충분히 확보돼있어 상대적으로 훨씬 여유롭게 느껴졌다.

이들 건물 중 대부분은 과거 위반건축물로 적발된 적이 있지만, 수개월 내에 원상복구를 통해 위반사항을 바로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에서 상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과거 불법으로 증축해 적발된 이후 잘못임을 깨닫고 황급히 시정했다”라며 “쉽진 않겠지만 장사하시는 분들이 조금씩만 양보하면 거리가 더욱 쾌적해지지 않을까 싶다”라고 전했다.

적발돼도 잠깐 철거하고 무단증축 반복… 지자체 “완전한 단속 어려워”

지자체에서는 이들 위반건축물을 모두 단속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입장이다. 상가 입장에서는 이행강제금을 물더라도 불법 증축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이득인 경우가 많아 이러한 사례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탓이다. 여기에 불법증축 건축물에 대해 행정조치를 강력하게 할 수 없는 제도적 어려움이 있는 데다, 적발되면 잠시 철거했다 다시 증축하기를 반복하는 상가가 많아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용산구청 주택과 관계자는 "불법증축이 적발되는 경우 이전 방식이었던 강제적 철거 집행이 문제가 생기면서 건축법 80조에 따라 시정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있다"며 "구청이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어 "법에 따라 행정처분을 하기 때문에 구청 차원에서도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며 "안전이 점점 중요해지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러 차례 이행 강제금 부과에도 시정조치를 안 하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는 등 제도적인 문제를 좀 더 개선하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고가 일어난 곳 인근 불법증축 건축물에 대한 추후 조치 역시 제도가 가지는 형평성 때문에 강력히 밀고 나가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게 용산구청의 입장이다. 주택과 관계자는 "행정조치를 취하기보다는 건축주를 설득하고 자발적으로 시정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며 "새롭게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다른 지역에 비슷한 건축물의 경우에도 사고가 터졌으니까 대집행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며 "형평성을 다 맞출 수 있다면 법률 검토를 통한 새로운 조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골목 전경. 10m가량의 분홍 철제 가벽(우측)이 통행을 어렵게 만들어 피해를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황서율 기자)
법의 미비점 파고든 장애물… 전문가들 “문제 바로잡아야 재발 안 해”

실외기 등 도로 폭을 줄일 수 있는 장애물의 경우 건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건축물 자체로 취급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용산구청에 따르면 예컨대 이러한 문제 시설이 해당 건축물의 대지 안으로 포함될 경우 제재 사항에서 빠지게 된다.

실제로 사고가 발생했던 해밀톤 호텔 옆 설치된 분홍색 철제 가벽이 도로를 가로막으며 골목길 폭이 기존 4m에서 3.2m가량으로 좁아졌지만, 지자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용산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이는 에어컨 실외기의 소음과 열기를 차단하는 시설로 간주해 건축물로 취급되지 않는다"며 "이 시설물이 도로를 침범한 것이 아니라 호텔 대지 안에 있어 제재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논리대로라면 사고 발생 지역 인근 골목에서 도로 폭을 축소하고 보행자들을 위협하는 실외기도 건축물 대지 안에 시설물이 설치된 거라면 제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 때 문제시됐던 에어컨 실외기처럼 설비들이 도로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통행을 방해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이러한 문제점들을 바로잡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비슷한 사고가 또다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류태민 기자 right@asiae.co.kr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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