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모두 위로한 상담기
“재난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연결’”
“글에 달린 따스한 댓글들, 저를 빠르게 살려”
“제 글이 이렇게 퍼질지는 몰랐어요. 지인들에게 연락이 와서 글이 공유된 페이지와 댓글들 보고 많이 울었어요. 일면식도 없는데, 댓글로 주고받은 따스한 연결이 저를 빠르게 낫게 했습니다. ”
“재난 상황에서 왜 전문가가 필요하냐고 물으신다면, 나를 이렇게 일상으로 돌려보내 주었기 때문이에요. 뭔지 모를 어려움이 느껴진다면 꼭 연락을 해보세요.”
3일 온라인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이태원 참사로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권하는 글이라며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빠르게 확산했다. 지난달 29일 벌어진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대피한 생존자가 다음날부터 겪은 심리적 어려움과 이를 상담을 통해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글이었다.
그는 “참사 현장 골목 앞 술집에서 문을 열어줘 대피해 살아남았다”고 했다. 자신이 생존자인지 모르겠다던 그는 상담치료를 시작해 마음의 회복을 경험한 과정을 솔직하게, 그러나 담담히 적어 내려갔다.
그는 사건당일 오후 10시40분쯤 현장에서 빠져나온 뒤 참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다른 가게에서 친구를 만나 20여분간 놀았다면서 그 시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자신이 “징그럽게 느껴졌다”고 적었다. 오후 11시가 넘어 경찰관이 사람이 깔려 죽었다면서 통제에 협조해달라고 소리치는 데도 ‘에이, 설마.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으며 CPR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너무 무서워서 도망쳤다고도 털어놨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자신을 위로하는 친구들에게 차마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알아도 친구들이 ‘네 잘못이 아니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두려워서였다.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에게 상담 치료사는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자”며 “다음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무엇이 도움이 될지를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회복은 시작됐다.
“선생님, 아무래도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렇게 무력감과 죄책감에 빠져있던 그가 상담을 거치며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히 돌아오는 게 맞다.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것”이라며 위로를 전하기까지 과정이 담긴 글은 많은 누리꾼에게 공유됐다.
그의 글에 “눈물이 난다” “거기 있지 않았어도 힘들었는데 너무나 위로가 됐다”부터 “공유해줘서 고맙다” “힘들 때 마주 볼 용기가 조금은 생겼다” “꼭 회복하길 바란다” “당신의 잘못은 없다” 등 공감과 위로, 격려의 말들이 오갔다.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장도 자신의 SNS에 그의 글을 공유하며 “한 번쯤 읽어보시면 좋겠다.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다. 눈물이 난다면 눈물을 좀 흘려도, 화내도 좋다. 그게 정상이고, 그럴 수 있기에 당신이 사람이다”고 적었다.
이날 국민일보는 글을 쓴 A씨를 수소문해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30대인 A씨는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해 “너무나 많이 회복됐다”면서 “과연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는 일인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 저와 숨진 분들, 우리 모두가 긍정적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했다. 그는“재난 상황에서 왜 전문가가 필요하냐고 물으신다면, 나를 이렇게 일상으로 돌려보내 주었기 때문”이라면서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잘 모르겠더라도, 뭔지 모를 어려움이 느껴진다면 꼭 연락을 해보시라. 너무나 잘 도와주신다”고 여러 번 말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심리학회는 물론 각 거주지 지자체마다 무료 정신상담센터가 운영되고, 필요하면 무료 상담치료도 연계 운영된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A씨는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건강히 외출해서 건강히 돌아오는, 다행스럽고 당연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면서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했다.
◆아래는 A씨와의 인터뷰 문답.
-참사 후 상담을 받게 된 과정은.
“글에 적은 대로 29일 참사 현장에 있다가 빠져 나와 (30일) 새벽 4시 반쯤 집에 도착했다. 밥을 못 먹거나 그런 건 아닌데, 속이 안 좋고 토할 것 같고, 숙취처럼 그랬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날부터 잠을 못 자기 시작했다. 일요일 온종일 일상생활이 안 됐다. 월요일(31일) 오전이 됐는데도 잠을 못 자고 심장이 빨리 뛰는데, 가까운 언니가 적극적으로 내게 전화 상담이라도 좋으니 받아보라고 얘기해줬다. 난 비교적 나를 잘 아는 편이다. 중학생 때 친구를 떠나보내는 힘들었던 때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게 결국 20대 후반에 다시 터진 걸 경험한 적이 있어서…. (언니 조언대로) 심리학회에서 운영하는 곳에 전화로 첫 상담을 했다. 이것저것 제 상태가 어떤지 질문을 해주셨는데, 내 얘기를 들으시다가 어떤 단어를 듣고는 죄책감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셨다. 그러더니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 강한 사람들이 자신을 잘 안다는 점 때문에 캐치(파악)가 잘 안 될 수 있는데 다행히 몇 가지가 보인다면서 방문 치료를 받아보라고 조언하셨다. 그리고 국가트라우마센터에도 두 번 더 상담했고, 그다음 날 소개받은 센터로 가서 대면 치료를 받았다. 이미 전화 상담만으로도 아주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대면 치료 받는데 확실히 달랐다. (상담선생님이) 번호를 주시면서 언제든, 짧게라도 전화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말 빠르게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온라인에 참사 때 경험한 일부터 상담 과정까지 상세히 적으셨다.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글을 쓰게 됐나.
“사고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가 있다. 직후에 물어보니 친구도 나랑 비슷한 반응이 온다는 걸 알겠더라. 그런데 지금 그 친구는 이 고통을 끌어안고 홀로 틀어박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된다. 가족과 함께 있으니 큰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연락하고 싶을 때 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연락이 오면, 그 친구에게 이렇게 나아질 수 있다고 공유하고 싶어 기록을 남기려 했다. 상담선생님도 트라우마가 심할수록 심한 고립이 올 수 있다고, 혼자 꾹꾹 참는 것보다 나의 슬픔을 타인에게 공유했을 때 그 슬픔으로 타인이 위로받을 수도 있다며 글 쓰는 분이니 온라인에 연재하듯 공유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셨다. 친구만이 아니라 비슷한 괴로움을 겪고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됐다.”
-친구와 현장에서 함께 빠져 나왔나.
“당시 사고가 벌어진 쪽 클럽으로 가던 중에 클럽을 목전에 두고 인파 속에 압박이 너무 심해지면서 서로를 놓쳤다. 그 친구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는 채 발이 바닥에 안 닿고 숨도 안 쉬어지는 상황에서 그 골목 옆쪽 술집 사장님이 거리 상황이 너무 안 좋으니 문을 열고 기어오라고 해서, 나와 함께 다른 어린 애기랑 또래 애들이랑 대여섯 명이 그쪽으로 피했다. 거기서 10분 정도 있다가 10시40분쯤 약간 틈이 보이자 나가라고 해서 빠져나왔다. 이후 옆 다른 가게에서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몸은 다친 데 없이 괜찮나.
“팔이랑 가슴이랑 어깨 쪽에 워낙 멍이랑 타박상은 있다. 반팔을 입고 있어서 긁히고 다치고, 그래도 그렇게 심하진 않다.”
-글에서 이태원에 가지 말 걸 그랬나 후회스러운 감정, 자신이 징그러웠다는 표현도 썼는데.
“상담 치료받기 전에 제일 먼저 올라왔던 감정이 창피함이었다. 작년 코로나 때 이태원에서 난리가 났을 때와 같은 느낌 같았다. 이태원 갔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고, 내가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게 잘못 같이 느껴진 거다. 그날 이태원 가면서 인스타스토리에 핼로윈 분장하고 즐거워하던 모습을 올렸는데, 사고 이후 그것부터 지웠다. 뭔가 내가 잘못을 한 것 같다는 인식이 들었던 거다. (그런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도 겁을 냈을 것 같다.”
-상담을 받으면서 어떻게 생각을 바꾸게 됐나.
“놀러 가서 사고가 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 참사를 당한 거라는 선생님 말처럼 나쁜 건 파티를 간 게 아니라 그런 사고가 벌어진 거, 안전이 지켜지지 않은 거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또한 정상적으로 희생자들을 위해 추모하는 것도 도움이 됐다. 지하철역과 분향소 모두 다녀왔는데, 충분히 애도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오니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힘이 생기고 나니 창피하고 숨고 싶은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희생자들에게 미안했다는 건 어떤 마음인가. A씨 잘못은 아닌데.
“그냥 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미안한 거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그중에 내가 살아남은 건, 더구나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던 난 살고 누구는 죽었다는 것. 그 자체로 미안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먼저 더 말하고 바꾸지 못했던 것도 (세상을 떠난) 어린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상담 선생님께서 재난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결성’이라고 하셨다. 나와 연결된 사람과 지속해서 대화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제 글이 많은 이들에게 공유돼서 수천 명의 사람들과 연결됐는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의 연결이 저를 빠르게 낫게 했다. 댓글로 주고받는 따스한 연결이 사람을 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건 같은 사회적 재난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죽음, 부모님의 병 등 개인적 재난을 겪는 분에게도 이 기사와 글이 연결성으로 도움이 되면 좋겠다.”
한국심리학회에서도 무료 심리상담(1670-5724)을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국 244개 가족센터(1577-9337)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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