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 대한민국은 늘 '참사 공화국'이었다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따르면 1964년부터 2013년까지 10인 이상이 사망한 대형재난은 276건이었다. 50년간 두달에 한 건 빈도로 발생한 셈이다. 피해자 수가 10명이 되지 않는 참사까지 헤아린다면 대한민국이 참사공화국이라는 진단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끔찍하고 슬픈 참사의 시간을 보내왔다. 1970년 세밑에 발생한 남영호 침몰사고부터 1999년 화성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 화재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2011년 춘천봉사활동 산사태참사,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그리고 2022년 이태원 압사참사까지.
책은 국민이 왜 참사라는 익숙한 슬픔을 반복해야 하는지, 안전한 삶을 끊임없이 위협받아야 하는지 묻는다. 저서는 한국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에는 공통점이 있음을 밝혀낸다. 국가의 부재(不在)다. 위기 상황을 미리 방지하고 국민을 신속히 구출해내야 할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2017년 출간된 책은 재난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기록물에 담긴 사고 원인부터 희생자 유가족과 사고 책임자, 정치인, 가까스로 구출된 사람들의 증언을 적었다. 한두 사람이 주도하거나 실수해 만든 인재라거나 안전불감증이 원인이라는 말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단순화하거나 도식화한다’며 경계했다. 잘잘못을 따져 사고 원흉에게 복수하는 책이 아니라, 다시는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책인 셈이다.
책에 담겨있는 수십년전 기록은 놀라울 만큼 현재와 닮아있다. 1970년 남영호 해난사고에서는 최대 337명이 사망했다. 오전 9시 일본의 순시선이 먼저 한국 해경대에 사고소식을 전달했으나 한국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첫 구호정인 206경비정이 도착한 건 오후 4시가 되어서다. 50여년이 지난 이태원 압사참사. 4시간 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신고가 11건 접수됐는데 실제 출동은 4건뿐이었다고 한다.
20년전 참사 때도 "누가 거기 가랬냐"고 내뱉은 한국 사회
사고 책임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비난도 어김없이 나왔다. 이태원 참사 이후 “그러게 누가 놀러 가라고 했느냐”는 식의 말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다. 화성씨랜드에서 불법건축물과 인화성 자재 사용, 인솔교사 보호소홀로 유치원생 등 23명이 사망했다. 화성군 부군수는 “내가 아이들을 죽였냐”고 했다. 경기도 여성국장은 “정부가 거기에 보내라고 했냐?”라는 말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충격과 슬픔에도 ‘남겨진 유족들이 빠르게 요구하고 싸우고 드러누워야만 했다’는 지적도 한다. 2011년 춘천봉사활동 도중 산사태로 인하대 학생 10명을 포함해 13명이 희생됐다. 조사위원회와 춘천시의 갈등으로 사건조사위원회는 별 성과 없이 해체됐다. 유가족들은 춘천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상여를 메고 행진해야 했다. 이후에야 춘천시가 산사태 위험경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대피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족들은 늘 ‘이게 정치 문제냐? 정치화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조해녕 당시 대구시장과 윤진태 전 대구지하철 공사 사장이 증거인멸 혐의와 업무상 중과실치사 혐의로 대구지검에 고발됐다. 자성론을 내세우던 정치권에서는 “대구의 불행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용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희생자대책위에 속한 유가족들은 대부분 보수정당을 찍어왔던 대구·경북 주민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경찰 미리 배치했어도 참사는 못 피한다”는 식의 말은 없어야 한다. 앞으로 비슷한 수준으로 사람이 몰리면 죽는 걸 지켜보겠다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참사는 원인만 밝혀내고 유가족에 돈을 쥐여주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시는 같은 경로의 죽음이 없어야 한다.
재난을 묻다 |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 서해문집 | 311쪽 | 1만3500원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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