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 붕괴⑤] 속도 높이는 보호무역, ‘무역 국가’ 한국 대책은
자유무역 기반 성장한 한국 경제 위협
무역수지 ‘적자’…경제 충격 현실화
수출 다변화 신중한 경제안보 필요
미국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유럽연합(EU) ‘단호한(assertiveness) 통상정책’ 중국 ‘공동부유(common prosperity)’는 결국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 강화의 다른 표현이다.
국제 무역에서 반덤핑과 세이프가드 등 규제 증가 등을 보더라도 세계 주요국들 보호무역 강화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도 국가별 대응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5일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수입규제 대응 성공 사례를 공유하는 ‘글로벌 수입규제 동향 및 대응사례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향후 세계 경제의 보호무역 장벽은 더 견고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회계법인 THE ITC는 국제 수입규제 동향과 전망에 대해 “글로벌 수입규제 조치는 철강, 화학 등 소재 산업에 집중돼 있으며 그간 코로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으로 신규 조사는 감소했다”면서도 “향후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기업 이익 감소가 우려되면서 수입규제 등 보호무역 조치를 통해 자국 기업을 보호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회계법인 DKC는 중국 수입규제 동향에 대해 “2020년 이후로 한국에 신규 조사가 없는 상황으로 상대적으로 수입규제 위험(리스크)은 적다”면서도 “중간 재심을 허용하지 않고 직접 조달하는 원재료 가격 대신 제삼자의 거래가격으로 덤핑 마진율을 판정하는 등 중국의 수입규제 제도를 고려할 때 조사 개시 초기부터 잘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문가 진단이 아니더라도 이미 보호무역 상황에서 우리 기업이 받을 충격은 현실이 되고 있다. 14년 동안 이어온 무역수지 흑자가 올해 끊길 가능성이 크다.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처음이다.
무역수지 적자 원인은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친 것은 주요국 패권 경쟁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발생한 수출 환경 악화다.
이에 전문가들은 다자주의 통상 시스템 붕괴에 적응하기 위한 정부의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더불어 우리 기업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요구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탈세계화 파도가 세고 기존의 규칙 기반 세계 경제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중 갈등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도 세계가 여러 진영으로 분열하여 대립할 것으로 예상했다. 더불어 자원 보유국이 언제든지 안보를 이유로 수출규제를 하고 수입국도 정치·군사적 이유로 보호무역 조치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한국 경제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국가와 기업이 나서서 수입선을 다양화하고 부품과 원자재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며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수출 시장 다변화를 계속 추진해야 하는 등 신중한 경제안보 전략으로 위험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경제안보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몇몇 국회의원과 함께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을 추진 중이다. 산업계가 이차 전지 등 핵심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공급망 안정화 기금’ 설치 등을 골자로 한 법안이다. 범정부 차원 지원 체계를 갖춰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품목과 서비스를 관리하겠다는 의도다.
아울러 산업 공급망 위기경보 시스템과 종합지원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수출통제(대외무역법), 기술 유출방지(산업기술보호법), 외국인투자 안보심사(외국인투자촉진법) 등 3대 기술안보 정책도 재정비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미국뿐 아니라 다자주의 훼손에 따른 각국 통상정책 변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대기업은 발 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세계 통상 환경 변화와 무역·투자 상대국 정책 변화를 미리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각국 경제환경 변화에 대해 중소·중견 수출기업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기업과 소통을 강화하고 여러 건의 사항을 양자 협상에 반영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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