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런 백신 설명서⑤] "유동성 급한 불 껐지만…여전사 등도 지원해야"

김효숙 2022. 11.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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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징후 다양…레고랜드가 촉매"
"과감 지원" VS "부실기업 솎아야"

금융위기론과 함께 뱅크런이란 유령이 다시 맴돌기 시작했다. 내 돈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은행을 향할 때 자본주의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물리학 운동법칙을 정립한 아이작 뉴턴도 투자 실패를 맛본 뒤 "별들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쌓아 온 아픈 경험은 앞으로의 위기를 이겨낼 원동력이다. 이제는 더 이상 불확실성이 뱅크런으로 번지도록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팬데믹 이후 금융 불안의 현주소를 점검해보고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백신을 찾아본다.<편집자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 뱅커스클럽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금융시장에서 돈줄이 막히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50조+α' 유동성 공급과 금융지주들의 95조원 지원 방안이 급한 불을 끄는 적시 조치였다고 평가하면서도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는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연말까지 95조원 규모의 자금을 시중에 풀기로 했다. 회사채, 기업어음(CP), 자산유동화기업어음 등을 적극 매입해 금융시장에 돈을 돌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당국이 지난달 50조+α 규모의 유동성 지원 방안을 내놓은 후 추가로 금융사들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하면서 나온 조치다. 정부의 유동성 지원방안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규모 확대 ▲회사채·CP 매입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이 핵심이다. 레고랜드 채무불이행으로 채권 시장이 얼어붙자 정부와 금융지주들이 직접 채권을 사주며 자금 경색 국면을 풀겠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터질 게 터졌다고 진단했다. 불안 요소가 쌓여 한 번에 터졌다는 평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신용 리스크가 커지고 있었고 기준금리가 빠르게 상승해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도 커졌다"며 "그런 와중 래고랜드 관련 부도가 촉매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저금리 기조에서 부동산 경기 활황으로 PF가 너무 과도하게 이뤄졌는데 어차피 한번은 (이런 위기가) 터질 것이라고 다들 예측했다"며 "신용 경색은 시장 심리에 기반하는데, 올해 초부터 부동산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나오면서 신용 경색도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 뱅커스클럽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용병(왼쪽부터 ) 신한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김 위원장, 김광수 은행연합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 ⓒ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전문가들은 자금 지원책이 급한 불을 끄는 적시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 실장은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의 지원 방안이 발표되고 나서 채권시장이 빠르게 안정세를 찾았다"며 "원래 우량채 발행도 안 되는 데다 금리도 높았는데, 발행과 수요예측도 잘 되는 등 단기 자금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선제적으로 자금시장에 50조원을 공급하겠다는 방안은 경색된 채권 시장을 푸는 데 적절했다"며 "단기간에 국고채 대비 회사채 금리가 급등하는 것을 막는 게 중요했는데 이번 채안펀드에 20조원 규모로 비중을 키운 게 얼어붙은 시장을 조금이나마 푸는 데 주효했다"고 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자금 사태는 금융기관이 채권을 사주지 않으니 기업들의 자금 조달 창구가 막힌 것이 핵심"이라며 "정부가 채권을 사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니 경색 상황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지원 필요성에 대해서는 각론이 엇갈렸다. 이 실장은 "이번 방안도 우량등급 채권 위주로 지원한다는 내용이라 여신전문금융사, 캐피탈사 등 상대적으로 낮은 신용등급의 기업은 여전히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추가적으로 지원 대상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단기 채권에서 1년 만기로 다가오는 게 560조원 규모인데 이에 비하면 지원 방안은 부족하다고 본다"며 "정부가 좀 더 과감하고 신속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행이 한국전력 등 우량채들을 사주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교수는 "금리가 올라가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사업이 불투명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무책임하게 이자를 벌기 위해 리스크 큰 프로젝트에 돈을 대줘서 문제가 생긴 기업을 살려야 하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 기업, 부실기업을 솎아내야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자정적으로 시장 기능에 의해 돌아간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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