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그룹 계열사 된 우주 스타트업 맏형…세계 톱3가 목표

최준호 2022. 11. 4.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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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34〉 쎄트렉아이


국내 유일 인공위성 시스템 수출기업인 쎄트렉아이의 김이을 대표가 자사의 소형 인공위성 모형을 들고 민간주도 우주시 대인 뉴스페이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R&D(연구·개발) 패러독스’ ‘기술 탈취’.

한국 사회의 국가혁신시스템(NIS· National Innovation System)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얘기할 때 종종 거론되는 문제점들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는 세계 1·2위 수준으로 뛰어난데 이를 통해 새로운 성장엔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과, 중소기업이 애써 기술을 개발해 놓으면 대기업이 제값을 쳐주지 않거나 아예 빼앗아가 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둘 다 대기업 중심,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형의 한계에 봉착한 대한민국이 신기술을 바탕으로 선도형 국가(first mover)로 변신하는데 장애물이 되는 요소다.

거꾸로 말해보자. 최근 들어 대표적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사이언스 등에 수시로 등장하고 있는 국내 대학·출연연의 연구성과가 창업이나 기술이전 등으로 이어지고, 삼성·현대와 같은 대기업들이 이런 스타트업들을 경쟁적으로 인수한다면 어떨까. 대기업은 새로운 성장엔진을 확보하고, 스타트업 생태계는 대기업 덕분에 ‘연구개발-투자-자금회수(상장 또는 M&A)-재창업’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쎄트렉아이는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의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과 스타트업 생태계 선순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사례다. 국내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만든 KAIST 인공위성연구소 연구원들이 1999년 창업했다. 2008년 코스닥에 상장됐고, 지난해 1월 대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투자하면서 한화그룹 계열사가 됐다. 인공위성 체계 개발능력을 보유한 국내 유일의 민간기업이다. 지난해 자회사를 포함한 매출이 730억원, 이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중앙일보가 대전 대덕특구 내에 있는 쎄트렉아이를 찾아 김이을(53)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쎄트렉아이 창업 때부터 함께한 원년 멤버다.

Q : 한국 스타트업계의 대선배다. 대학의 R&D 기술사업화(창업 또는 기술이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 “단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기 조심스럽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쎄트렉아이도 KAIST 인공위성연구소에서 우리별 위성을 개발하며 체득한 기술과 경험이 창업 후 회사의 기반을 다지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합 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팀과 다년간 협력을 통해 다져진 문화는 여러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딥테크 기반의 창업이 성공 확률을 상당히 높일 수 있다고 본다.”

Q : 1999년 창업 때와 지금의 창업 환경이 많이 바뀌었을 텐데.
A : “창업을 하고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고 느꼈다. 사실 뭘 모르는지,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고 상황이 이런 준비를 허락하지도 않았다. 돌아보면 창업 당시인 1999년은 우리나라 닷컴 열풍의 후반부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때에도 적극적으로 찾았다면 유용한 조언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스타트업의 중요성, 창업을 위한 준비, 투자유치 등에 대한 사회 저변의 인식과 이해가 넓어졌고, 과거에 비해 더 많은 기회가 있고 조언이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상당히 많다. 창업을 할 때, 우주는 시장에서 아주 생소한 산업 분야였다. 최근 우주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뉴스페이스(New Space)라 칭하는 비즈니스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다수의 스타트업이 생겼고 성공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다시 창업을 한다면 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 여전히 문제라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A :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가 많이 넓어지고 성숙했지만 아직도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자체가 목적인 창업을 종종 보게 된다. 고객과 시장을 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창업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결과적으로 사회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고 본다. 과거에 비해 높아지기는 했지만, 우주에 대한 투자자의 이해도 보다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Q : 미국 실리콘밸리나 이스라엘의 창업환경과 비교할 수 있나.
A : “우주산업을 보면 20여 년 전과 비교해 창업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나 이스라엘에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고 본다. 선진국에서 창업 실패를 또 다른 도전의 계기로 삼는다는 점과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점은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미국 CIA가 설립한 벤처캐피털 인큐텔(In-Q-Tel)은 혁신기업 발굴과 초기 투자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미 공군과 우주군도 스타트업 발굴과 지원에 아주 적극적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Q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인수에서 보듯, 스타트업과 대기업 관계를 얘기하자면.
A : “상생 또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2년간 쎄트렉아이는 성장하며 상장사로 시장과 사회가 요구하는 내부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이 과정에서 내부 혁신의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데 일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돌아보면 이런 경험이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일례가 아닐까 싶다. 스타트업이 도전적으로 혁신을 주도하면, 대기업이 이를 받아 규모를 키우고 시장과 연결해 고객을 확대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한화에서 투자를 받은 것은 그간 축적한 역량을 바탕으로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한화가 보여준 우주산업에 대한 진정성 때문이었다.”

Q : 쎄트렉아이는 창업을 했다기보다 창업밖에 대안이 없었던 독특한 환경에서 자생했다. 요즘 스타트업이 배울 게 있다면 무엇일까.(창업 전 당시 정부는 중복 연구라는 이유로 KAIST 인공위성연구소를 정부 출연연인 항공우주연구원에 흡수시키려 했다. 하지만 항우연은 연구원의 연구인력을 모두 받아줄 수 없었다.)
A : “과거 인공위성연구소에서 자회사 형식의 민간기업을 만들자는 생각이 있었지 현재와 같은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다른 대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창업밖에 대안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돌아보면 우리별 위성을 개발하며 축적한 기술·인력, 그리고 네트워크가 핵심자산이었지만, 운과 시대가 좋았다고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쎄트렉아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을 굳이 꼽는다면, 고객의 수요에 대한 집중이 아닐까 한다. 뛰어나고 혁신적인 기술이 성공적인 창업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Q : 현재 항공우주연구원, KAIST 인공위성연구소와는 어떤 관계인가.
A : “과거 KAIST 인공위성연구소와 함께 일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국내 공공 소요의 소형위성 개발은 인공위성연구소의 역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초소형위성 군집시스템 사업을 함께 수행하고 있는데, 첫 기는 함께 개발하고 이후 양산은 쎄트렉아이가 담당하는 구조다. 과거 쎄트렉아이의 경쟁사인 영국 SSTL은 서리대학에서 분리된 회사다. 두 기관의 관계는 아주 긴밀하다. 해외 무대에서 활동하면 이런 밀접한 관계가 부러웠는데, 향후 인공위성연구소와 이런 관계를 구축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항공우주연구원과는 차세대 중형위성 4호 탑재체의 경우와 같이 개별 사업 단위로 협력하고 있고, 항공우주연구원이 보유한 시험 시설을 종종 사용하고 있다.”

Q : 한국 인공위성 산업의 경쟁력을 말해달라.
A : “누리호와 다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세계 7대 우주 강국이 되었다고 하지만, 6위인 인도와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면 격차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로 특정 분야에 전략적으로 집중해 왔다. 해당 분야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 확보한 수준이지만 다른 분야의 경쟁력은 낮은 편이다. 우주산업 측면에서 보면 국내 우주산업은 글로벌 시장의 1%가 되지 않는 규모이다. 국내 상황을 보면 정부와 민간의 투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시장의 한계가 있으니 글로벌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Q : 쎄트렉아이가 대기업의 일원이 됐다. 장단점을 말해달라.
A : “대기업 집단에 편입되면 우선 중소기업의 지위를 잃게 되고 추가적인 협의와 조정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해지고 속도가 떨어진다. 현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 집단 유예신청을 해서 2026년 3월까지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장점으로는 안정성, 대규모 투자 가능성, 타 계열사와의 협업 기회 등을 꼽을 수 있겠다.”

Q : 앞으로의 비전은.
A : “쎄트렉아이는 위성시스템 제조사이고 두 자회사인 에스아이아이에스와 에스아이에이는 각각 위성영상을 공급하고 활용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세 회사의 역량을 모아 고해상도 지구관측 시장에서 톱3가 되는 것이 2030년 주요 목표 중 하나다. 위성 제조에서 데이터 판매, 활용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에 기반한 비즈니스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자체 투자로 초고해상도 위성을 개발 중이고 2024년 발사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우선 국방을 포함한 공공 수요에 필요한 위성시스템과 솔루션을 공급하는 핵심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한다. 해외 위성시장에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가성비 높은 고성능 위성시스템 공급을 지속, 확대할 것이다.”

대전=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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