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도로포장 부실도 정부 책임인데
정부 재난 대처의 반면교사로 자주 거론되는 게 2005년 8월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례다. 미국 남동부를 강타하며 뉴올리언스의 80%가 물에 잠겼다. 사망자가 무려 1800명을 넘었고 45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시신이 물에 둥둥 떠다니고 살인과 약탈·방화가 난무하며 도시 일대는 공권력이 포기한 곳이 됐다.
참사 나흘 뒤 현장을 찾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캐슬린 블랑코 루이지애나 주지사와 레이 내긴 뉴올리언스 시장을 만났다.
“뉴올리언스는 누가 책임지냐”고 따져 묻는 대통령 말에 둘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기 급급했다. 오히려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미숙한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며 손가락을 대통령으로 향하기도 했다.
예측 범위를 뛰어넘는 역대급 허리케인이었다고 이들은 항변했다. 그래서 미리 손을 쓸래야 쓸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여론은 전국적으로 급격히 나빠졌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허리케인 규모에 대한 사전 예보는 분명히 있었고, 주정부가 마음만 먹었으면 시민들을 미리 대피시킬 기회도 있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회자됐던 이 사례를 8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미리 경찰을 배치했더라도 소용없었을 거라는 행안부 장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용산구청장. 당국의 미흡한 대응에 격노했다는 대통령. 참사 직후 이들의 반응은 카트리나 사태 당시 미국 모습과 판박이다.
영국의 군중 관리 전문가인 키스 스틸 서퍽대 객원교수와 인터뷰를 하며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물었다. 항상 사고가 잇달았던 이슬람 성지 메카의 순례지 동선 개선 프로젝트를 맡았고,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대형 군중 참사를 연구해 온 이다. 그는 “도시 거리를 걸을 때 포장이 부실해 넘어져 다쳤다면 누가 책임을 지냐”고 반문했다. 특히 밤거리 경제를 통해 지자체와 정부가 관광수입을 얻어왔다면 그 공간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 역시 당연히 그들의 책임이라고 했다.
취임 후 한때 90%까지 올랐던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카트리나 사태 이후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고 내리막을 걸었다. ‘무능’이라는 딱지가 붙은 부시의 공화당은 2006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했고 2008년 11월 대선에서 민주당에 정권을 내줬다.
그때와 지금 정국에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 한국에선 더 떨어질 지지율이 없어 보인다는 정도일 것이다. 며칠 전 블룸버그가 칼럼에서 “한국의 핼러윈 참사는 아주 인기 없는 리더의 시험대가 됐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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