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오른 공원 걷고, 호날두 식당서 하몽 먹고…
스페인을 한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미국 같은 연방제는 아니지만, 스페인의 17개 자치주는 문화도 풍경도 딴 나라처럼 각기 다르다. 국토 정중앙에 마드리드주가 있다. 수도 마드리드시를 품은 가장 작은 주다. 461년간 스페인의 수도였던 마드리드도 코로나 사태 이후 많이 달라졌다. 도심 공원과 거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고, 구도심 한복판에 녹지를 확 넓힌 광장을 재개장했다. 코로나 사태 전보다 걷기 편하고 청정한 환경이 조성됐다. 스페인까지 갔는데 대도시에만 머물긴 아쉽다고? 굳이 멀리 안 가도 된다. 도시 외곽에 매력 넘치는 소도시가 수두룩하다.
녹지도시로 거듭나다
마드리드를 방문한 한국인이라면 프라도 미술관을 꼭 찾는다. 이제는 미술관 옆 거리와 공원을 주목할 때다. 지난해 7월 ‘프라도 거리’와 ‘레티로 공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마드리드시는 두 유산을 합쳐서 ‘빛의 풍경’이라 한다. 프라도 거리와 레티로 공원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했고, 과학·예술·문학이 두루 융성했기 때문이다. 시벨레스 광장부터 아토차 역까지 약 1.4㎞ 이어진 프라도 거리는 16세기에 만든 세계 최초의 가로수길이다.
레티로 공원은 면적(1.4㎢)이 서울숲 공원과 비슷한데 역사는 500년을 헤아린다. 유서 깊은 건물과 조각, 분수가 역사를 보여준다. 귀족만 이용하던 공원을 시민에게 개방한 건 약 150년 전으로, 지금은 누구나 산책과 피크닉을 즐긴다. 2만 종에 달하는 나무가 우거져서인지 숨을 들이켤 때마다 맑고 건강한 기운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뉴욕 센트럴파크의 다섯 배 크기(17.23㎢)라는 공원 ‘카사 데 캄포’를 자전거 타고 가봤다. 2018년 말 차로를 줄이고 보행로를 넓힌 ‘그란 비아’ 거리를 지나자 ‘스페인 광장’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2년 남짓 걸린 보수를 거쳐 재개장했다. 큼직한 나무를 많이 심어 공원처럼 단장했고, 자동차는 지하 도로로 다니도록 했다. 스페인 광장을 거닐수록 광화문광장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카사 데 캄포 언덕에 올라 일출을 감상했다. 왕궁과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 위로 해가 쏟아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공원 지척에 있는 ‘데보드 신전’은 일몰 명소이니 해질 무렵 가보길 권한다.
4년 숙성한 하몽의 맛
식도락 체험은 마드리드 여행의 핵심이다. 추천 식당 세 곳만 추린다. 살라망카 지구에 자리한 ‘타텔’은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과 포르투갈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투자해 유명해진 식당이다. 1920년대 분위기로 꾸민 식당에서 공연을 감상하며 음식을 먹는다. 15~30유로짜리 전채 요리도 맛이 출중하다. 송로버섯 넣은 토르티야, 저민 새우 등이 맛있었다. 압권은 4년 숙성한 이베리코산 하몽이었다. 군내가 전혀 없었고 고소한 풍미만 감돌았다.
플라멩코 공연을 보는 식당 ‘코랄 데 라 모레리아’는 올해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전채로 나온 토마토 수박 수프는 상큼했고, 주식인 돼지 목살구이는 입에서 녹을 듯 부드러웠다. 음식 맛이 대체로 정갈했다. 플라멩코 공연은 몰입감이 대단했다. 집시의 설움을 담은 가락이 한국의 판소리를 연상시켰다. 3코스 음식과 공연 감상을 포함한 가격은 98유로(약 13만7000원).
맥주나 와인에 한입 크기 음식을 곁들여 먹는 ‘타파스’ 문화를 느끼고 싶다면 ‘산 미겔 시장’이 제격이다. 1916년 문 연 전통 시장인데, 2018년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푸드마켓으로 재탄생했다. 해산물 볶음밥 ‘빠에야’, 스페인식 만두 ‘엠파나다’ 뿐 아니라 아시아 요리까지 두루 맛볼 수 있다.
절대군주가 사랑한 왕궁수도원
이제 외곽으로 나가볼까. 마드리드 구도심에서 북동쪽 50㎞ 거리에 스페인 제국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왕궁 ‘산 로렌조 데 엘 에스코리알’이 있다. 세계사 시간에 한 번은 들어봤던 이름, 펠리페 2세(1527~98)가 1556년 스페인 왕위에 오른 뒤 만든 초대형 왕궁이다. 열혈 가톨릭 신자였던 국왕은 로렌조 성인에게 봉헌하는 건물을 짓고 은신처이자 집무실로 삼았다. 왕궁은 수도원·대학·도서관·병원·무덤 등 다목적 건물로 쓰였는데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멋진 그림도 많다. 엘 그레코, 티치아노 베첼리오 같은 당대 최고 화가의 성화가 전시돼 있고, 건물 곳곳에 웅장한 프레스코화도 잘 보존돼 있다.
남부 마드리드의 소도시 ‘아란후에스’에도 왕궁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아란후에스 왕궁은 조경이 빼어나 ‘스페인의 베르사유’로 불린다. 펠리페 2세는 여기서 세계 각지의 식물 종자를 수집해 실험했다. 카를로스 3세(1716~88)도 궁전 일대를 농축산과 원예 연구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 전통과 자부심을 지역 식당 ‘카사 델라피오’에서 확인했다. 신선한 채소 맛이 도드라졌는데, 오너 셰프 ‘로베르토 나비다데스’가 “아란후에스는 예부터 왕실 식재료를 책임진 동네”라며 “가까운 곳에서 생산한 제철 음식을 잘 먹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궁전 인근에는 옛 왕실 소유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레알 코르티호’가 있다. 길이 250m짜리 와인 저장고가 압도적이다.
명품 마늘과 와인 나는 마을
‘친촌’은 마드리드 시민이 주말에 즐겨 찾는 동네다. 이름처럼 친근한 촌 동네다. 중세풍 주택이 옹기종기 들어앉은 모습이 그림 같다. 마을 중앙 ‘마요르 광장’도 독특하다. 테라스를 초록색으로 칠한 3층 건물이 광장 주변을 두르고 있다. 봄·가을이면 광장에서 투우 경기가 열리는데 주택 테라스를 관중석으로 쓴다. 친촌은 스페인에서 가장 맛있는 마늘이 나는 동네다. 올리브와 포도 맛도 정평이 나 있다. 광장 한편 잡화점에서 마늘과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마리아 펠리시아나(66)는 “여섯 살 때부터 부모님의 마늘 농사를 도왔으니 평생 마늘과 함께 한 셈”이라고 말했다.
마드리드 동쪽의 소도시 ‘알칼라 데 에나라스’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1500년, 세계 최초로 계획된 대학 도시다. 전 세계의 수많은 대학 도시가 알칼라를 모델 삼았다. 대학 안에는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다. 고대 로마 유적, 건축미 빼어난 예배당도 있다. 스페인의 자랑인 『돈키호테』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작가의 생가와 관련 유적지가 곳곳에 있다. 대학 인근에는 한국인이 유독 좋아하는 스페인 전통 숙소 ‘파라도르’가 있다. 파라도르는 수도원이나 고성을 활용한 숙소인데, 알칼라 파라도르는 현대적인 디자인을 접목했다. 2009년 유네스코로부터 건축 복원 관련 상을 받았다.
☞여행정보=스페인에 입국할 때는 코로나19 관련 어떤 증명도 필요 없다. 스페인에서는 비행기를 제외하고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현재 마드리드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대한항공 인천~바르셀로나 노선을 이용해 국내선을 타거나 다른 유럽 항공사를 이용해야 한다. 요즘 유럽행 비행기는 러시아 항로를 우회해 비행시간이 길다. 인천~바르셀로나 14시간, 바르셀로나~인천 12시간 걸린다. 바르셀로나~마드리드 국내선은 1시간 20분 소요. 자세한 정보는 스페인관광청 홈페이지 참조.
마드리드(스페인)=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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