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인파 대응 매뉴얼 없다”더니…17년 전부터 있었다
경찰이 2005년부터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을 운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3일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이 문건은 2005년 10월 초판이, 2006년 5월 2판이, 2014년 8월 3판이 발행됐다. 발행처는 경찰청 경비과로, 외부 유출이 금지된 문서다.
2014년 판에는 “다수의 인파가 모이는 행사에선 사소한 계기에 의해서도 급박한 혼란 상태가 발생하거나 사망자 발생 등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나온다. 경찰은 매뉴얼에서 ‘다중운집’의 개념을 “미(未)조직된 다수의 군중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는 축제, 공연, 체육경기, 행사 등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정부·민간, 옥내·옥외, 국내·국제, 수익·공익성 여부를 불문한다”는 단서까지 붙였다.
매뉴얼은 이러한 다중운집 행사의 안전관리에 대해 “각종 행사를 위해 일시에 모인 군중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자연적·인위적 혼란 상태를 사전에 예방·경계하고, 위험한 사태가 발생한 경우에는 신속히 조치해서 피해가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경찰 활동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매뉴얼은 다중운집 행사의 위험성을 기준으로 경찰 개입 여부 및 그 수준을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사고 및 범죄·테러·행사 방해·집단 충돌 등 여러 요소와 교통 혼잡·교통안전 위협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경찰 인원 배치 및 행정지도 등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 인파가 운집하거나 극단적으로 혼잡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엔 지하철 입구 등에 경찰 인원을 선점 배치해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인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경찰관이나 시설물로 안전 공간·통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도 매뉴얼에 담겨 있다.
매뉴얼은 법적 근거로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경찰법·경찰관직무집행법·도로교통법 등을 나열했다.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보호와 교통안전 확보 등이 경찰 임무라는 취지다. 그런데도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13만 인파가 이태원 일대로 몰렸지만, 경찰은 137명뿐이었다. 이마저도 마약 단속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찰은 그간 주최자가 있는 행사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행사 관리의 1차 책임이 주최자에 있다며, 이태원 참사의 경우 소상공인과 시민이 ‘자발적으로 연 행사’여서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설 여지가 불분명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브리핑에서 “주최 측이 없는 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매뉴얼은 없다”고 말했다. 정작 매뉴얼은 다중운집 행사의 주최자 유무를 구분하지 않았다. 경찰청은 “매뉴얼은 ‘주최자’가 1차적인 책임을 진다는 ‘행사 주최자 책임’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매뉴얼이 아니다”며 “내부 참고용 문건이라 별 의미가 없고, 지금은 경찰도 행정안전부의 지역축제 매뉴얼에 따른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10월 경찰청의 연구용역으로 대구카톨릭대 산학협력단이 발행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행사 주최가 불분명한 다중운집 상황, 매년 특정 장소에 신년 카운트다운을 위해 젊은이가 자연적으로 운집하는 경우엔 관할 경찰서장이 책임으로사건·사고 방지를 위한 활동계획을 자체적으로 수립하고 있다”며 일본 오사카 사례를 든다. 연구진은 “행사의 유형과 주체에 관계없이 위험성의 판단과 관리 및 감독을 담당하는 것은 안전전문가인 경찰의 임무”라고 제안했다.
나운채·김남영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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