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대상자들에게 조사를 맡겨선 안된다 [소셜 코리아]

주병기 2022. 11. 3. 22: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셜 코리아] 공적 시스템 무너져... 독립 특별조사위 구성하자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주병기]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 이희훈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시민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력, 소방방재 그리고 행정력이 부재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참사 발생 직후부터 이 문제를 지적한 것은 해외 주요 언론과 일부 국내 언론이었고, 대부분의 국내 언론과 매체는 본질을 보지 않고 한숨만 쉬는 보도에 그쳤다.

현재까지 156명이 희생되었다. 대부분 꽃다운 나이의 청년들이다. 이 중에는 한국이 좋아 방문했던 14개국의 외국인 26명도 있었다. 한국과 한류에 열광했던 아들과 딸들이 호감을 가졌던 나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비극이 터져버렸다. 이 참사를 한국 사회가 어떻게 수습할지 전 세계가 지켜볼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 규명은 시민 안전을 지켜야 할 공적 시스템이 어떻게 붕괴했는가를 조사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 과거 핼러윈 축제에서 이루어졌던 안전 조치를 지속하지 않았는가? 왜 시민들의 이동 통제, 폴리스라인 설치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왜 시민 안전을 위해 더 많은 경찰력을 투입하지 않았는가? 왜 충분한 응급의료시스템을 현장에 배치하지 않았는가? 왜 교통 통제를 적절히 하지 않았는가? 신고와 CCTV 영상 등 위험의 징후들이 사고 이전에 나타났음에도 왜 신속한 대응이 없었는가? 행정 말단의 사고 위험성에 대한 자체 보고가 왜 상층부의 의사결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는가? 어떤 단계에서 정보의 흐름이 단절되고 왜 의사결정의 실패가 발생했는지 점검해야 한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며 "이건 그냥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장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조차 상실한 파렴치한 태도다. 용산구는 참사 발생 이틀 전 개최한 회의에서 방역과 청소 대책만 논의했고, 안전사고 예방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참사 이틀 후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한다고 말했다. 안전을 책임질 중앙정부부처 수장이 참사 원인 규명에서 가장 중요한 방향을 불합리하게 배제하는 천박한 인식을 드러냈다. 책임 있는 공복으로서의 도덕성을 의심케 한다.

대통령실은 "현재 경찰은 집회나 시위와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 제도적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34조, "경찰관은 국민의 생명·신체보호 및 공공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한 경찰관직무집행법,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국가의 책무를 명기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반하는 말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 맞나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들이 2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사고 같이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 적용할 인파사고 예방안전 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사 3일 후, 긴급한 사안을 다뤄야 할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는 아직 인파 관리 또는 군중 관리라고 하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개발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기술을 개발하고, 필요한 제도적 보완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 제도, 시스템이 있어도 작동되지 못했던 현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 기술과 시스템 미비 탓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 같은 말이다. 관련 부처와 기관의 무능력과 책임 방기를 정당화하는 태도를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보이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행정의 말단에서 최상위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난국을 짐작하게 하고도 남는 어이없는 말들의 연속이다.

저명한 국제 민주주의 평가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2021년 "한국이 성숙한 민주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그 구성원들이 독립적으로 참여하여 수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스템 붕괴의 위험을 최소화한다.

과거에 축적된 경험, 시민들의 눈과 입, 행정의 각 단위와 최첨단 장비들이 보내는 무수히 많은 보고와 데이터, 참사 이전에 나타났던 신고와 위험 징후들, 이 수많은 안전장치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놓치지 않았다면 이태원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보가 흐르는 모든 경로에서 단절 지점이 있었다. 성숙한 민주주의에서 발생하기 어려운 안전시스템의 붕괴다. 우리는 과연 성숙한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가? 참사의 애통함 속에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시스템 붕괴의 당사자들이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현저히 불합리한 해법이다. 조사받아야 할 당사자들에게 조사를 맡기면 누가 신뢰할 것인가? 또다시 조사와 재조사를 반복하고 10년 가까이 지나도 원인 불명이 되는 미지의 사회적 참사를 만들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해법을 필요로 한다. 입법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진상 규명을 위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행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독립된 민주적 감시시스템이 조사와 재발 방지책 마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주병기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주병기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셜 코리아>의 편집·운영위원과 서울대 경제연구소 분배정의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 캔자스대와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재직했으며 한국응용경제학회장, <Journal of Institutional and Theoretical Economics>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시경제학, 재정학, 정치경제 등이고 분배적 정의, 불평등과 소득분배, 공정한 경제기제 등의 주제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분배적 정의와 한국사회의 통합>,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시간>, <혁신의 시작> 등이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