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빨아들이는 美국채ㆍ한전채 '블랙홀'…한계기업, 벼랑 끝 몰린다

김도년 2022. 11. 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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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금리 인상이 한국 국채는 물론 회사채 금리까지 끌어올려 기업 자금 경색을 심화시키고 있다. 셔터스톡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의 '매파 발언'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시장은 Fed가 이달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을 밟을 것이란 건 이미 예상했다. 그러나 "물가 안정을 위해 더 높은 금리가 필요하다"며 금리 인상 목표치를 높일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시장의 조바심에 인상 속도는 조절하겠지만 더 높은 금리를, 더 오랜 기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가뜩이나 불안한 국내 자금 조달시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미 연준의 지속적 금리 인상 기조에 당장 국내 기업들의 자금 경색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국채, 공사채 등 우량채권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며 채권 시장의 불안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다.


파월 매파 발언에 韓 채권 금리 상승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국 국채(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0.063%포인트 오른 4.158%에 거래됐다. 정부의 채권시장 안정대책 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금리가 다시 반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Fed의 금리 인상 이후 미국 국채 금리 상승에 따른 연쇄 효과다. 2일(현지시간) 미국 국채(3년물) 금리는 0.069%포인트 오른 4.573%에 달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신용등급 Aaa급)가 높은 금리 수익까지 보장하면, 국내·외 자금은 자연히 미국 국채로 쏠릴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한국 국채나 회사채는 기존보다 더 많은 이자를 줘야만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특히 신용도가 어중간한 기업들이 당장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 국채가 전 세계 자금을 끌어들이는 상황에서 국내에선 한국전력공사 등 신용도가 높은 공기업들이 높은 금리를 내걸고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이른바 '더블 블랙홀'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지난 9월 말부터 한전채가 회사채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고 있는데도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유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장 금리의 지속적인 상승은 한계 선상에 있는 기업들을 낭떠러지로 몰아붙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민스러운 제롬 파월 Fed 의장. 블룸버그


신용 스프레드, 금융위기 후 최고치


채권업계 일각에선 최근 정부의 유동성 지원 대책에도 채권시장의 자금조달 기능은 여전히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초우량 신용등급(AAA)인 한전도 투자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판국에 일반 회사채와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는 발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란 전언이다.

이 같은 상황은 회사채와 국고채(3년물)와의 금리 격차인 신용 스프레드로 확인할 수 있다. 한전채 스프레드는 지난 1일 1.5583%포인트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2월 12일(1.73%포인트) 이후 최고치에 달했다. 같은 날 회사채와 여전채 스프레드도 각각 1.448%포인트, 2.086%포인트에 이르는 등 모두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신용도가 높든 낮든 국내 기업 전반의 신용 위험이 커지면서 고금리 보장 없이는 자금을 조달하기 힘든 상황이란 의미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벼랑 끝 몰리는 한계기업…"채권시장 불안 재발 우려"


파월의 발언에 시장에선 내년도 미국 기준금리 전망치를 기존 4.6% 수준에서 5%로 올려 잡고 있다. 이미 미국과의 기준 금리 격차가 1%포인트로 벌어진 상황에서 해외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경우 한계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채권시장의 불안도 재발할 우려가 있다.

시장에서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상만 하나증권 채권파트장은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자금 경색이 풀리지 않는다면, 한국은행의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가동 등의 대책이 동원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유동성지원기구는 한국은행·산업은행 등 정책자금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까지 사들여 유동성을 지원하는 제도로 2020년 코로나19 위기 당시 가동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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