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는 최대한의 의사표현... SPC, 문제해결 나서야"
[배시혜 기자]
평범한 대학생인 A씨는 편의점에 있는 '삼립' 빵을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다른 이들이 식후 간식으로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갈 때도 A는 간단한 음료를 사 마시거나 아무것도 먹지 않는 걸 택한다. 빵을 살 때는 '파리바게뜨'나 '던킨도너츠'가 아닌 동네 빵집을 이용하고, 음료를 마실 때는 '파스쿠찌' 말고 다른 카페를 찾고자 한다.
A가 이렇게 특정 가게에 대한 '불매운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이유는 이 가게들이 바로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아래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노조원들을 상대로 갑질을 한 'SPC그룹'(아래 SPC) 계열사들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기업과 그에 맞선 파업 그리고 그런 기업을 응징하는 '불매운동'에 대해 알아봤다.
▲ 6월 13일,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진행된 SPC 불매 청년단체 기자회견 |
ⓒ 청년유니온 |
SPC는 1945년 '상미당'이라는 제과점에서 출발해 ▲배스킨라빈스 ▲파리바게뜨 ▲삼립 ▲쉐이크쉑버거 ▲던킨도너츠 ▲파스쿠찌 등 유명 브랜드들을 운영하는 대기업이다. 거리에 나가면 한번쯤은 마주해봤을 SPC가 최근 화두에 오른 건 계열사인 파리바게뜨의 제빵기사들에 대한 갑질 논란 때문이다.
지난 2017년 9월, 파리바게뜨는 5000명이 넘는 제빵기사를 불법 파견한 후 연장근로수당 총 110억1700만 원을 미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는 제빵기사들의 직접고용과 미지급 수당 지급을 지시했고, 파리바게뜨 측은 과태료를 면제받는 대신 제빵기사를 3년 이내에 본사 소속 노동 조건과 맞추겠다고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그러나 지난해 4월, SPC는 일방적으로 민주노총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합의 이행 완료를 선포했다. 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위원회에서 발표한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 결과에 따르면 SPC 파리바게뜨가 완료했다고 주장한 10항목 중 실제로 이행된 항목은 제1항과 제9항 단 두 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노조에 따르면, 이후 SPC는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을 승진에서 대거 누락하고, 단식을 막 끝낸 노조원이 신청한 연차를 불승인하고 무단결근이라고 협박하는 등 노조 파괴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53일 동안 단식 투쟁을 한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임종린 지회장은 "노조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SPC는 사회적 합의는 다 이행됐고 부당노동행위도 개인의 일탈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며 "현장에서 올해 안에 민주노총을 와해시키려고 탈퇴작업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면, SPC는 사회적 합의는 애초에 지킬 생각도 없었고 시간을 끌며 노조를 와해시키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문제를 외부에 알리고, 불안해하는 조합원들을 지키고자 단식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도 했다.
SPC를 향한 사회적 비판 여론은 지난 10월 더 커졌다. SPC의 계열사인 SPL의 평택공장에서 20대 여성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사망한 산업재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제빵노동자 끼임사... 그렇게 죽은 77명의 사연을 공개합니다 http://omn.kr/218y1 ).
▲ 지난 10월 20일 경기도 평택 SPL 제빵 공장 입구. 지난 15일 이곳에서 일하다 기계에 끼여 숨진 20대 여성 노동자를 기리는 추모 공간이 차려져 있다. |
ⓒ 김성욱 |
SPC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 대기업을 상대로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또 있었다. 바로 하이트진로 운송하청 화물차 기사들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다.
지난해 12월, 하이트진로 운송하청업체 수양물류 소속 화물기사들은 거리당 운송료 30% 인상 등을 요구하며 대화를 시도했으나 수양물류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화물기사들은 지난 3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에 가입했고, 지난 6월 2일 ▲운임 30% 인상 ▲공병 운임 인상 ▲고용 승계 및 고정 차량 인정 ▲공차 회차 시 공병 운임의 70% 공회전 비용 제공 등을 원청인 하이트진로에 요구하면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하이트진로는 ▲파업 참여 화물기사 130여 명 계약해지 통보 ▲업무방해가처분 신청 ▲수양물류 소속 화물기사 등 11명 상대 5억7800여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으로 맞섰고, 7월 29일에는 손해배상 청구액을 27억 8000만 원으로 높였다고 한다. 이에 노동자들이 하이트진로 본사를 점거하자 하이트진로가 손해배상 소송 취하 및 파업 참여 노동자들의 복직을 약속하면서 파업은 일단락됐다.
노동 환경의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 6~7월에 걸쳐 51일 동안 진행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은 지난 7월 22일 ▲업체별 평균 4.5% 임금 인상 ▲내년부터 명절과 여름 휴가비 총 140만 원 지급 ▲고용계약 최소 1년 단위 체결 ▲재하도급 금지 ▲폐업한 하청업체 노동자 최우선 고용 노력 등의 합의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폐업한 하청업체 노동자 42명을 고용하지 않았고, 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8천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결국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의 단식 농성이 시작된 후에야, 지난 9월 7일 대우조선 측은 복직하지 못한 조합원을 2차례에 걸쳐 고용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3일 노사간의 합의가 완료된 파리바게뜨까지 포함하면, 많은 노조가 합의를 통해 파업을 끝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생존을 위한 노동자의 파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기업에 책임을 묻는 '불매운동'... "불매, 가장 직접적 영향 줄 수 있어"
노동자보다 기업 이익을 우선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탓하고만 있을 수 없어 행동으로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선택한 건 바로 '불매운동'이다. 불매운동은 특정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행위를 의미한다. 불매운동의 대상이 된 대표적인 기업에는 노동자에 대한 갑질로 논란이 됐던 남양유업이 있다.
사회적 합의를 외면한 SPC도 현재 불매운동의 대상이다. SPC의 화섬식품노조에 대한 갑질이 알려지면서 지난 5월 9일 SNS에서 한 시민이 '#동네빵집_챌린지'를 제안한 것이 SPC 불매운동의 시작이 됐다. 이후 많은 사람이 SPC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현재 SPC 등 비윤리적인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김아무개씨(서울 거주, 21세, 아래 '김')씨와 충북대학교 서지우(충북대 정치외교학과, 21, 아래 '서') 학생을 만나 이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 '불매운동'을 어떻게 처음 접했나요?
김: "SNS에서 떠돌아다니던 기사를 읽고 알게 됐습니다."
서: "남양 유업의 각종 논란이 한창일 때 SNS를 통해 불매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어요."
- 비윤리적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에 참여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김: "원래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남양유업의 '임신포기각서'를 보고 어머니의 임신 및 출산 후 경력 단절이 떠올랐고, 이에 큰 충격을 받아 시작했어요."
서: "SPC가 노동자의 기본권리마저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임종린 지회장의 단식 투쟁을 통해 알게 됐어요. SPC 상품의 대체품이 많아 불매해도 일상생활에 큰 영향이 없었고, 조금만 신경 쓰면 충분히 지속적인 불매가 가능할 것 같아 시작했어요."
- 특정 기업의 상품을 불매하면 아무래도 불편함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불매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 "우리가 사회의 일원으로 사는 한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는 결코 없기 때문이에요. 누군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외면하면 그 어려움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 "소비자의 불매운동이 기업에 가장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식이라 생각하기에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비윤리적인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김: "'이게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각기 다른 분야에서 겪은 불의에 대한 공감이 알음알음 퍼져나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가 당했던 불의와 바라봤던 불편한 일들을 떠올리면서 함께 분노한 게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서: "시대가 발전하면서 생긴 인식의 변화가 소비자들의 연대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개개인으로는 무의미하더라도 집단으로 모이면 큰 힘이 된다고 인식한 사람들이 불매운동을 주도하게 된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불매운동이 가진 장단점에 대해 편하게 얘기해주세요.
김: "장점은 수도 없이 많다고 봅니다. 다만 선의에 뿌리를 두면 '강박'이 되기 쉽다는 게 단점이자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불매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기보다는, 잘하고 있는 사람을 추켜세우고 그럴 수 없는 이들은 다독이며 함께 가면 좋겠습니다."
서: "손익에 민감한 기업에게 본인들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만드는 장점이 있어요. 불매하는 제품의 대체품을 찾다가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을 발견하는 등의 이점도 있고요. 반면 사람들의 관심이 없으면 금방 끝난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라 봐요. 또한 불매와 관련해 타인에게 본인의 잣대를 들이밀고, 불매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행위는 오히려 불매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해요."
- 불매운동의 대상이 된 기업이 어떻게 대처하길 원하시나요?
김: "사과문 발표보다는 빠른 조치가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피해보상금 지급 등과 같은 조치 없이, 그저 사과문만 발표하면 기업의 피해를 줄이려고 입에 발린 말만 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서: "불매운동이 발생한 원인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다시 문제를 일으켜 불매운동이 또 일어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본인이 생각하는 불매운동의 의의를 말씀해주세요.
김: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거요. 자본주의는 어쨌든, 서로 경쟁해야 그나마 제 모습을 갖추지 않나 싶어요. 아니면 소상공인을 돕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요. 단순히 안 사는 게 아니라, 다른 걸로 사보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독점을 막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서: "불매운동은 소비자로서 법적인 절차 등을 통하지 않는 최대한의 의사 표현입니다. 기업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인식시키고,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작은 것부터 천천히 변화시키는 것. 손익을 중시하는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것이 불매운동이라는 연대가 가진 힘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이에게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을 모아 우리가 되면 세상은 언젠가 바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소비자의 힘은 강해졌고, 그런 소비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역시 달라졌다. 이제는 사회와 나라를 탓하며 움츠리기보다는 불의와 불합리에 맞서 행동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니 작은 움직임이라도 우선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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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충북대신문 제968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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