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장사’ 최정, 양딩신 꺾었다. 삼성화재배 4강 한국 독식
최정 9단이 중국의 양딩신 9단을 꺾고 삼성화재배 4강에 진출했다. 3일 온라인 대국으로 열린 202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8강 둘째 날 경기에서 여자기사 1위 최정 9단이 2019년 LG배 우승자인 강호 양딩신 9단을 201수 만에 흑 불계승했다.
이날 승리로 최정 9단은 한국 바둑에서 세계 대회 4강에 오른 최초의 여자기사가 됐다. 세계 최초 기록은 중국 루이 9단이 갖고 있다(1992년 응씨배 4강). 최정 9단의 4강 진출은 세계 여자 바둑에서도 30년 만에 나온 두 번째 기록이다.
최정 9단의 승리는 또 다른 기록도 낳았다. 외국 기사 중 유일하게 8강에 남았던 양딩신 9단마저 탈락함으로써 삼성화재배 최초로 한국 선수가 4강 네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삼성화재배 한국 2연패도 동시에 달성됐다. 3일 8강전 이후 진행된 대진 추첨 결과, 4일과 5일 열리는 4강전은 변상일 9단 대 최정 9단, 신진서 9단 대 김명훈 9단의 대결로 결정됐다.
최정 9단이 4강에서 한국 2위 변상일 9단에게도 승리하면, 세계 대회 결승에 진출한 세계 최초의 여자기사에 등극한다. 그러나 전망은 어둡다. 최정 9단은 아직 변상일 9단에게 이겨본 적이 없다. 상대 전적이 5전 전패다. 당대 최강자 신진서 9단과 이번 대회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른 한국 8위 김명훈 9단과의 상대 전적은 5승 3패로 신진서 9단이 앞선다.
최정 9단의 8강전은 작전의 승리이자 투지의 승리였다. ‘중국의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양딩신 9단을 상대로, 여자 랭킹은 1위이나 한국 기사 전체 랭킹은 30위인 최정 9단이 자신이 가장 잘 두는 바둑으로 맞섰다.
흑을 잡은 최정 9단은 초반에 우변과 하변에 거대한 벽을 쌓았다. 인공지능이 바둑을 지배한 이후 거의 사라진 대형 세력 작전이었다. 꼭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 같았다. 전투에 강하고 힘이 좋아 ‘소녀 장사’라는 별명이 있는 최정 9단이 양딩신 9단에게 한번 붙어보자고 손짓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최정 9단의 세력에 부담을 느낀 양딩신 9단이 우하귀에 침투했고, 최정 9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수를 연타하며 백을 몰아붙여 중앙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이 대목에서 깜짝 놀랄 반전이 일어났다. 우하귀에 침투한 백을 추궁하던 최정 9단이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좌상귀 백 대마 공격에 나섰다. 중앙에 쌓은 세력을 집으로 만들지 않고 장점인 공격에 활용한 것이다. 공방전 결과 중앙에서 패가 났고, 양딩신 9단이 패를 해소하는 사이 최정 9단이 우변과 하변의 백 대마를 잡아 50집가량을 확보했다. 이 순간 형세가 흑 쪽으로 확 넘어갔다.
이후 양딩신 9단의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최정 9단은 과연 소녀 장사였다. 돌과 돌이 붙을수록 괴력을 과시했다.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치며 좌변 흑 대마를 살려냈고,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한 양딩신 9단은 괴로워하다 끝내 돌을 던졌다. 2022 삼성화재배에서 가장 극적이자 통쾌한 순간이었다. 최정 9단의 국후 인터뷰를 옮긴다.
“4강 진출은 예상 못했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굉장히 오랜만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결승에 한번 가보고 싶다. 4강 상대인 변상일 9단에게는 이겨본 기억이 없는데, 나보다 변상일 9단의 부담이 더 클 것이다. 오늘처럼 죽어라 들이받아 보겠다.”
202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는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삼성화재해상보험이 후원, 한국기원이 주관한다. 각자 제한시간 2시간, 1분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우승 상금 3억원, 준우승 상금은 1억원이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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