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법썰]숙부상을 부친상으로 속여 부의금 챙긴 공무원… 파면 취소소송 승소

최석진 2022. 11. 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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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파면 및 징계부가금 3배 부과처분 취소 판결
2479만원 중 1800만원 반환한 점·파면으로 인한 불이익 등 고려
서울 양재동 서울행정법원./사진=서울행정법원 제공.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부고] 김모 주사보 부친상. 향년 80세. 빈소 충남 부여 A 병원. 상주 연락처 010-XXX-XXXX. 마음 전하실 곳 OO은행 XXX-XXXX-XXXX.

2021년 1월 28일 서울 송파구의 내부 인트라넷 새올행정시스템에 위와 같은 공지가 올라왔다.

당시 57세였던 김씨는 1992년 2월 지방공무원(10급)으로 임용된 뒤 여러 근무지를 거쳐 2017년 1월부터 2020년 6월 30일까지 서울 송파구에서 일했고, 2020년 10월 5일부터는 송파구 한 주민센터에서 지방사무운영주사보(6급 대우)로 근무 중이었다.

김씨는 2021년 1월 28일 오전 자신이 근무 중인 동사무소 서무주임에게 자신의 부친이 만 80세로 사망했다고 알리면서 빈소와 자신의 연락처, 계좌번호를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냈고, 서무주임은 이를 내부 전산망에 올렸다.

김씨는 또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동사무소와 직무관련성이 있는 통장 2명과 새마을부녀회장, 주민자치위원회의 위원장, 간사, 고문에게 부친상을 당했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고, 자신이 과거 근무했던 송파구 직원들이나 관내 주민들에게도 부친의 사망 소식을 알려 부의금을 받았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부의를 알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코로나로 인해 조용히 가족장으로 모신다'는 내용과 함께 '마음 전하실 분들을 위해서'라며 자신의 계좌번호를 기재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김씨는 송파구청에서 근조기 등 장의물품을 챙겨 다시 자신이 근무하는 동사무소를 찾아가 동장과 서무주임을 만난 뒤 빈소가 마련된 충남 부여의 A 병원 장례식장으로 내려가 조문객을 맞았다.

빈소가 서울에서 멀었지만 동장과 서무주임은 물론, 공지를 통해 부고를 확인한 옛 직장 동료 여러명이 직접 빈소를 찾아 김씨를 위로했다.

빈소에 설치된 알림판에는 김씨와 김씨의 남동생, 망인의 딸이 상주로, 김씨의 배우자가 자부(며느리)로, 김씨의 자녀들이 손자녀로 각각 기재돼 있었다. 누가 봐도 김씨의 부친이 사망한 것처럼 보였다.

한편 빈소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김씨에게 부의금을 보내 마음을 전했다.

김씨가 받은 부의금은 총 2479만원이었고, 김씨는 장례비 일체를 부담했다.

문제는 김씨가 장례를 마친 이후에도 문상을 오지 않았거나 부의금을 보내지 않은 전현직 직장 동료들에게 부친상을 당했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면서 발생했다.

김씨의 메시지를 받고 기분이 상한 한 직원이 내부전산망에 김씨를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는데, 해당 글에 '김씨의 모친은 2010년에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장례식장에 망인의 배우자가 있었던 것이 이상하다'는 댓글이 달린 것.

또 송파구 직원들 사이에서 김씨의 부친은 이미 오래전에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송파구 감사담당관실에는 김씨가 부친상을 당했는데도 경조사 특별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이상하다는 등 여러 건의 제보가 접수되기도 했다.

김씨는 서무주임에게 처음 부고 공지를 부탁할 당시 부친상에 주어지는 5일간의 경조사 특별휴가를 신청하지 않고 제설근무 대체휴가를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또 며칠 뒤에는 담당자에게 가사정리를 이유로 장기재직휴가를 사용하겠다고 했지만 담당자가 '장기재직휴가는 사전 허가를 받아야 되니 부친상에 주어지는 특별휴가를 신청하라'고 말하면서 장기재직휴가를 경조사 특별휴가로 변경하는 신청처리를 했다.

결국 송파구에서 김씨에 대한 감사가 개시됐다.

2021년 2월 5일부터 송파구 감사담당관은 김씨가 근무하는 동사무소 직원과 김씨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망인이 김씨의 부친이 아니라 숙부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가짜 부친상'이라는 등 제목으로 여러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송파구청장은 2021년 2월 18일 서울시 제2인사위원회에 김씨에 대한 중징계 의결을 요구하는 한편, 다음날 사기 혐의로 김씨를 서울송파경찰서에 고발했다.

김씨는 2021년 2월 22일 결국 직위해제됐다.

한편 김씨는 감사가 진행 중이던 2021년 2월 9일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믹스커피를 몰래 가져가려다가 발각돼 형사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서울동부지검은 2021년 4월 8일 사안이 비교적 가볍고, 김씨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려고 한 점 등을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김씨의 징계 여부를 심사한 서울시 제2인사위원회는 2021년 6월 28일 김씨에게 파면 및 징계부가금 3배 부과처분을 의결했고, 같은 해 8월 4일 송파구청장은 김씨에게 파면 및 징계부가금 3배 부과처분을 내렸다.

공무원에 대한 징계 유형 중 가장 중한 파면과 함께 김씨가 받은 부의금 2479만원의 3배인 7437만원을 내도록 한 것.

국가공무원법 제78조의2(징계부가금) 1항은 공무원의 징계 의결을 요구하며 공무원이 취득한 금전이나 재산상 이득의 최대 5배 내의 징계부가금 부과를 의결해 징계위원회에 요구하도록 정하고 있다.

김씨의 징계 사유에는 가짜 부고를 통해 부의금을 챙긴 사실 외에도 공무원 행동강령에 반해 직무관련자에게 경조사를 통지하고 금품을 수수한 사실과 절도 미수 혐의, 방역수칙 위반 등 여러 혐의가 더 있었다.

김씨는 이 같은 징계 처분에 불복해 서울시 지방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했지만 2021년 12월 23일 기각 결정을 받자 송파구청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김씨는 비록 자신의 행동이 부적절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받은 부의금 2479만원 중 1800만원을 반환했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과 고인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부의금을 반환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등 경위나 이후의 사정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근무해 곧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 사건 파면처분으로 인해 공무원의 신분을 상실할 뿐 아니라 사망할 때까지 연금수령액이 줄어드는 등 매우 심각한 불이익을 받게 되므로, 이 사건 파면처분은 징계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징계부가금과 관련 부의금 중 상당 액수는 공무원으로서의 직무와 관련성이 없고, 약 1800만원을 반환한 데다가, 관련 형사사건에서 검찰은 1043만원을 편취했다는 사기 혐의로 기소했는데 송파구청장은 자신이 받은 부의금 전액인 2479만원을 기준으로 3배의 징계부가금을 의결했기 때문에 산정기준이 잘못돼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김씨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정희)는 이 같은 김씨의 주장 대부분을 받아들여 지난달 25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먼저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행위가 있더라도, 징계권자가 그에 대해 징계처분을 할 것인지, 징계처분을 하면 어떠한 종류의 징계를 할 것인지는 징계권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그 재량권의 행사가 징계권을 부여한 목적에 반하거나, 징계사유로 삼은 비행의 정도에 비해 균형을 잃은 과중한 징계처분을 선택함으로써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거나 또는 합리적인 사유 없이 같은 정도의 비행에 대해 일반적으로 적용해 온 기준과 어긋나게 공평을 잃은 징계처분을 선택함으로써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 경우에는, 그 징계처분은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례를 원용했다.

이어 "원고의 공무원으로서의 자질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어 원고에게 계속 공직자로서의 신분을 유지시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보이기는 한다"면서도 "그러나 파면처분은 국가공무원법이 규정한 징계처분 중 가장 무거운 것으로서, 해임과 달리 공무원의 신분을 박탈할 뿐만 아니라 5년간의 공무원 임용자격 제한, 나아가 퇴직급여 및 퇴직수당의 감액이라는 중대한 불이익이 함께 주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파면처분은 공무원의 신분을 박탈하는 것을 넘어 추가적으로 경제적, 신분상 불이익 등을 가해야 하는 필요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뤄져야 하고, 징계사유 및 징계와 관련된 여러 사정을 참작해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을 박탈하는 처분만으로도 그 징계가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파면처분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원고가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숙부인 망인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고, 망인의 빈소 알림란에도 원고가 상주로, 원고의 배우자가 자부로, 원고의 자녀들이 손자녀로 돼 있었으며 망인의 장례비도 원고가 부담하는 등 원고와 망인이 일반적인 숙부·조카 사이보다 보통 이상의 친밀한 관계였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로 보이므로, 그 경위에는 주관적으로나마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원고는 1963년생으로 1992년 2월 1일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된 이후 30년 이상 중한 징계처분을 받지 않은 채 공무원으로 생활해 왔고, 곧 정년을 앞두고 있다. 원고는 징계절차 및 이 사건 소송 과정에서 자신의 과오를 대체로 인정했다"며 "이와 같은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에게 공무원의 신분을 박탈하는 것을 넘어 경제적, 신분상 불이익 등을 추가로 가하는 이 사건 파면처분은 지나치게 과중해 비례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결국 재판부는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있다"며 송파구청장의 파면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징계부가금 처분 역시 과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방공무원법 제69조의2 2항은 '인사위원회는 징계부가금 부과 의결을 하기 전에 징계부가금 부과 대상자가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다른 법률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거나 변상책임 등을 이행한 경우 또는 다른 법령에 따른 환수나 가산징수 절차에 따라 환수금이나 가산징수금을 납부한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조정된 범위에서 징계부가금 부과를 의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3항에서는 '인사위원회는 징계부가금 부과 의결을 한 후에 징계부가금 부과 대상자가 형사처벌을 받거나 변상책임 등을 이행한 경우 또는 환수금이나 가산징수금을 납부한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미 의결된 징계부가금의 감면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 각각 규정하여, 징계부가금의 부과대상인 경우에도 대상자가 변상절차를 이행하거나 이를 환수한 경우에는 징계부과금의 액수를 조정하거나 이미 의결된 징계부가금의 액수를 조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위 규정의 문언상 징계부과금의 조정은 인사위원회의 재량이 아니라 의무사항이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서울시 제2인사위원회는 이러한 고려 없이 원고가 받은 부의금 전액을 징계부가금의 기준금액으로 삼아 징계부가금을 의결했으므로, 이 사건 징계부가금 부과처분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결국 재판부는 김씨에게 부과된 징계부가금 3배 부과처분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소송비용도 전부 패소한 피고 송파구청장이 부담할 것을 명했다.

한편 김씨는 가짜 부고로 207명으로부터 1043만원을 편취한 혐의(사기)로 기소돼 서울동부지법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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