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눈물만 나”…이태원 트라우마 다독이는 손길들

최모란, 김남영 2022. 11. 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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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친구들과 이태원에 있었던 A씨(20대 중반)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가족에게 “괜찮냐?”는 안부 전화를 받고 뒤늦게 참사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A씨는 “처음엔 ‘나도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며 “희생자 수가 늘어날수록 ‘참사를 유발한 인파에 나도 가담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면 시간이 크게 줄면서 낮에도 멍한 상태가 계속됐다.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나고, 식욕도 떨어졌다. 고민하던 A씨는 경기도의 한 지자체가 운영하는 심리상담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A씨는 “참사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닌데도 잠을 자려고 할 때마다 뉴스와 SNS에서 본 참사 현장이 그대로 떠오른다”고 하소연했다. A씨를 상담한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참사 관련 뉴스나 영상 등과 멀리하고 산책 같은 가벼운 운동이나 좋아하는 일 등을 하며 참사를 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가 번지고 있다. 참사를 직접 겪었거나 목격한 이들은 물론, 언론과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간접 경험한 이들도 고통을 호소한다. 그러자 ‘집단 트라우마'(collective trauma)’를 우려한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그리고 전문가 집단이 도움의 손길을 뻗고 있다. 김은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아동청소년위원장은 “접근이 제한된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달리 이태원 참사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드나들었던 익숙한 서울 골목에서 발생한 사고라 충격이 더 클 것”이라며 “여기에 참사 현장을 담은 영상과 사진이 SNS 등에 무분별하게 확산하면서 간접 경험에 따른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지자체·민간단체, 일반 시민들 트라우마도 치유


각 지자체, 민간단체 등은 참사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에 돌입하는 등 ‘마음 다독이기’에 나섰다. 각 지자체는 정신건강 위기상담 전화(1577-0199)를 통한 상담에 나서고 있다. 전국 공통번호라 전화를 걸면 거주지와 연계해 각 광역·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정신건강전문요원 등 전문가가 365일 24시간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원효로다목적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유실물 보관소에 유실물들이 놓여 있다. 뉴스1

경기도의 경우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로 도민 141명이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은 141명 중 69명이 참사 목격자였다. 부상자(9명), 부상자 가족(4명)과 현장에서 구조활동에 나선 대응인력(4명)도 포함됐다. 나머지 55명은 참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었다. 이들 중 18명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경기도는 이들에게 정신의료기관 이용과 치료비 지원 등을 안내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지속상담·관리하고 있다. 경기지역 한 정신건강센터 관계자는 “초반엔 사건 현장을 목격하거나 그 가족 등 참사 관련인들의 상담이 많았는데 요즘은 간접 경험에 따른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상담인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은 불안감과 우울감이라고 한다. ‘나한테도 일어났을 수 있는 사고’라는 불안감에 사람들이 밀집한 출·퇴근 대중교통 등도 이용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고 했다. “희생자들의 사연에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계속 난다”는 하소연도 많다고 했다. 다른 정신건강센터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과 동년배인 20~30대의 상담이 많은 편”이라며 “이태원 참사를 직접 겪진 않았어도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사고로 가족을 잃는 등 힘든 일을 겪었던 분들이 간접 트라우마를 많이 호소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정신복지센터 관계자는 “생존자와 목격자에겐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으니 대화에 주의해야 한다”며 “간접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들 중에는 ‘애도는 당연한 일이지만 계속 참사 관련 뉴스만 나오니 마음을 가다듬기 어렵다’고 토로했다”고 말했다.

민간단체들도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심리 상담에 나섰다. 한국심리학회는 지난달 31일 성명을 내고 “각 분과학회 소속 심리상담 관련 전공 교수 또는 학회 공인 최상위 자격증 소지자로 구성된 심리전문가의 자원봉사로 무료 재난 심리상담 전화 지원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진행심리상담 전문가 단체인 한국상담심리학회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국가트라우마센터와 협업해 전화상담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번주 내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채팅상담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옆 재난 심리지원 상담소를 찾은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일상생활 어렵다면 꼭 상담받아야”


전문가들은 트라우마를 숨기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주위에 감정을 털어놓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불안과 우울감 등으로 과거 트라우마가 재현되고,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전문가와의 상담 등을 통해 꼭 심리 진단을 받으라고 강조했다. 이동귀 한국상담심리학회장(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의 괴로웠던 경험이 반복해서 머리에 떠오를 때,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거나 집중력이 떨어져 일상생활조차 하기 어려울 때는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 상담해야 한다”며 “상담을 통해 감정이 지나칠 때(과각성)는 정서적 안정을, 외부 자극에 둔해진다거나 상황을 회피하고 있을 때(무반응)는 원래의 정서로 돌아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진용 울산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재 SNS 등에서 여과 없이 공유되고 있는 영상들을 보거나 뉴스를 많이 보면서 과몰입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 차단하라”며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 것처럼 전문가를 통해 심리상담을 받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모란·김남영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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