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7번째 ICBM…'하루에 1년 쌀값' 도발 지속 속내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남쪽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레드라인’을 넘어선 북한이 3일엔 사실상 미국과 일본을 동시에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했다.
북한의 도발로 전날 울릉도에 이어, 이날은 일본 미야기(宮城)현 등 3곳에 경보시스템인 ‘J얼러트’가 발령됐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즉각 규탄 성명을 냈다. 외교가에선 “이미 수용 한계를 넘어선 북한이 한ㆍ미ㆍ일을 겨냥한 도발을 보다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왔다.
올해만 7번째…무색해진 ‘레드라인’
북한의 ICBM 발사는 올해만 7번째다. 핵탄두와 이를 실어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은 핵기술의 핵심으로, 한ㆍ미는 이를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이를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날 북한이 발사한 ICBM은 2017년 6차 핵실험과 ICBM 발사 성공을 주장하며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을 때 사용했던 구형 ‘화성-15형’이 아닌 미국 전역을 충분히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형 ‘화성-17형’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번엔 일부 기술 진전도 확인됐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40분 평양 순안 일대에서 발사된 ICBM은 최고고도 1920㎞로 760㎞를 날아 동해상에 떨어졌다. 최고 속도는 마하 15였다. 미사일은 고각도로 발사된 이후 1ㆍ2단 추진체 분리에도 성공했다. 다만 미사일은 추진체 분리 이후 정상 비행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3월 발사했던 미사일이 고도 20㎞ 아래서 폭파했던 것이나, 5월 발사 때 기록했던 최고고도(780㎞·540㎞)와 비교해면 큰 차이가 난다.
한ㆍ미 훈련도 아랑곳 않는 北
북한이 특히 한ㆍ미 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한ㆍ미가 가장 경계하는 ICBM을 보란듯이 발사했다. 이러한 맞불대응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스로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핵기술의 고도화를 증명해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ㆍ미가 군사훈련을 하고 있더라도 북한은 ‘핵기술을 보유한 북한을 한ㆍ미가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판단 하에 분명히 제 갈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측면이 있다”며 “북한의 이번 행동은 향후 고각발사가 아닌 미국을 향한 정상각 발사도 가능하다고 위협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러한 무모한 자신감의 배경과 관련해선 미ㆍ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야기된 국제적 역학 구도의 공백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영태 동양대 석좌교수는 “미ㆍ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물리적 상황이 생겼다”며 “북한은 이러한 역학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결국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유리한 협상을 끌고가려는 노골적 시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안보리 이사국인 중·러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관련 “북한의 도발 중단과 대화 복귀를 위해 안보리의 단합된 대응이 긴요하다는 점을 중국을 포함한 모든 안보리 이사국들에게 적극 설득해 나가고자 한다”며 중ㆍ러에 대한 설득 방안을 고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루에 '1년치 쌀값' 날리는 도박
이러한 상황과 관련 북한은 실제 극심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도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2일 발사한 SRBM 등 미사일 25발이 최대 7500만 달러(1067억원)에 달할 거란 주장을 제기했다. 베넷 연구원은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한발에 200만∼300만 달러 정도로, (2일 하루에 쓴 비용은) 5000만 달러에서 7500만 달러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한달간 중국에서 물품을 수입하는데 필요한 돈에 버금가는 액수다. 지난 8월 북한의 대중(對中) 수입액은 7154만 달러였고, 9월엔 9007만 달러였다. 또 북한이 하루에 사용한 7500만 달러는 코로나 발생 전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연간 수입했던 쌀값과 비슷하다. 하루 도발을 위해 1년치 쌀값을 퍼부었다는 의미다.
북한이 이날 발사한 미사일 3발을 추가하면 비용은 더 커진다. 한국국방연구원은 최근 북한이 ICBM을 쏘기 위해 2000만~3000만 달러,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은 1000만~1500만 달러, SRBM과 순항미사일은 300만~5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이날 북한이 ICBM 1발과 SRBM 2발을 발사한 것을 감안하면 추가로 4000만 달러를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틀간 쓴 돈을 단순 더해도 1억 달러(1424억원)를 훨씬 넘는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는 데는 물론이고, 만약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더라도 핵무기 유지를 위해 막대한 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정치ㆍ군사적 리스크는 물론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는 배경은 역학의 공백과 미국 선거 등 정치 일정 등을 면밀히 계산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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