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셀프 수사" 비판에도…'이태원 특검' 안꺼내는 한동훈, 왜
이태원 참사에서 경찰의 112 신고 부실 대응에 이어 지휘부에 대한 늑장 보고까지 드러나면서 ‘경찰 셀프 수사’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찰이 이미 강제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검찰이 사건 송치를 요구해 직접 수사에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별검사를 발동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이 경찰청에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선제적으로 수사에 나섰지만 참사 발생 2시간 뒤인 지난달 30일 0시 14분에야 보고를 받은 윤희근 경찰청장 역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당장 법조계에선 “경찰 수뇌부에 대한 조사 필요성이 대두한 만큼 이해관계 충돌이나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져 한동훈 장관이 특검을 발동해야 한다”란 의견이 제기됐다.
한동훈, 이원석 총장 의견 들어 ‘이태원 참사 특검’ 발동 가능
3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 장관은 상설특검법 제2조(특별검사의 수사대상 등) ①항 2호 ‘법무부 장관이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에 근거해 특검을 발동시킬 권한이 있다. 앞선 2일 한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하기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검법 2조 ②항은 법무부 장관이 특검 발동을 결정할 때는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검 수사가 결정되면 대통령은 지체 없이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에 2명의 특검 후보자 추천을 의뢰해야 한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시행 이전이라면 검찰이 대형참사에 대해 수사 개시권을 갖고 경찰 등 유관기관과 전문가들로 합동수사본부(합수본)를 꾸리고 신속한 원인 규명 및 책임자를 가리는 수사를 주도할 수 있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검경 합수본이 꾸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9월 검수완박법이 시행되면서 대형참사에 대한 직접 수사 권한이 없어 중대재해처벌법·형법 과실치사상 등 범죄는 경찰이 먼저 수사한 뒤 사건을 송치하면 보완수사 및 기소만 할 수 있는 상태다.
이번 이태원 참사 수사의 더 큰 문제는 경찰 지휘부가 주요 수사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검법에 명시된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경찰은 참사 발생 4시간여 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 “통제해주세요” 등의 신고를 11건 이상 접수하고도 4건에 대해서만 출동하고 그마저도 적절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태원 파출소 한 경찰관은 내부망에 “사전에 용산경찰서에서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병력 투입을 요청했는데 묵살당했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법조인들은 “직무유기 등의 혐의를 적용할 여지가 있다”라고 본다. 경찰에 셀프 수사를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2일 법원의 영장을 받아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등 8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 수사에 착수한 사건을 검찰이 가져오는 건 불가능하다. 형사소송법 197조의4(수사의 경합)은 검사는 경찰과 동일한 범죄사실을 수사할 때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있지만, 검사의 영장 청구 전에 동일한 범죄사실에 관하여 경찰이 영장을 신청한 경우에는 경찰이 계속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해 검찰이 뒤늦게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순 없다.
지난해 1월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역시 나서기 힘들다.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이 경찰의 경우 경무관 이상 경찰 간부라고 명시적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다른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상당 부분 진행한 뒤에야 얼마만큼 높은 직위의 경찰 간부가 연루됐는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법조계 “당장 특검 도입해야” 한 장관 “당분간 지켜보겠다” 입장
이 때문에 “현 시점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위해선 한 장관과 이원석 검찰총장의 상설특검 발동이 필요해 보인다”고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서경대 교수)은 말했다.
지난해 3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직원 불법 투기 의혹 때 경찰에 수사를 맡겼다가 고위공무원 투기 의혹은 밝히지도 못한 채 실무 직원들만 처벌하는 데 그친 사례 역시 특검 도입 근거다. LH 사태 당시에도 특검 임명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여·야가 합의에 실패해 유야무야됐었다.
한 장관은 이같은 이태원 참사 특검 도입 요구에도 경찰이 자체 수사에 착수한 이상 당분간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현재로선 특검 도입이 오히려 이태원 참사의 신속한 진상 규명을 방해할 수 있는 데다가 검·경 갈등만 부각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을 임명하더라도 수사팀을 꾸리는 등 준비에 20일이 소요된다.
국회에선 수사와 별도로 국정조사도 추진되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이태원 압사 참사의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조속히 제출하겠다”라고 밝혔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은 이태원 압사참사를 경찰 자체 감찰 조사를 통한 징계가 필요한 사고로 봐야 하는 건지, 형사처벌이 필요한 사건으로 봐야 하는지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김철웅 기자 kim.chulwoong@joongang.co.kr,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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